시사, 상식

‘친일 부역’ 이어 ‘반개혁’…그들과의 백년전쟁

道雨 2019. 11. 26. 09:49




‘친일 부역’ 이어 ‘반개혁’…그들과의 백년전쟁

 



판결은 때로 한 사건을 통해 시대의 진면목을 들춰낸다.


최근 대법원이 ‘문제 없다’고 판단한 <백년전쟁>은, 2012년 11월 유튜브로 처음 공개된 이래, 400만뷰 이상 기록한 화제작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 중앙정보국(CIA) 기밀문서 등 국내외 자료까지 찾아내,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저항세력’과 부역했던 ‘협력세력’ 사이엔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이라며, ‘백년전쟁’이라 이름 붙였다.

좀 거칠긴 해도 굴곡진 100년사를 쉽게 이해하는 데는 그런대로 유용한 잣대를 제공한다.




‘백년전쟁’이 법적 심판대에 오르는 과정 자체가 ‘전쟁’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방송 4개월 만에 친일 협력세력 후손인 한국방송 이사장(이인호)이 사회 원로 자격으로 역시 협력세력의 딸인 대통령(박근혜)과 만난 자리에서 “역사 왜곡”이라며 “국가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부추겼다. 이틀 뒤부터는 또 다른 친일 협력세력 후손들이 소유한 언론들이 달려들었다.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처럼 패러디 기법을 활용했다는 작품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지엽적인 표현 하나하나를 따지고 들었다.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징계하고, 검찰이 기소까지 했지만, 소송전은 협력세력의 참패로 끝났다.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이 유일하게 허위라며 기소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조차 인정하지 않고, 지난해 8월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방송통신심의위 제재에 대해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기사 등 자료에 근거해 중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며 취소하는 게 맞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정권 정치기구가 됐다’는 등 억지 주장에도, 작은 전쟁은 ‘사필귀정’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역시 의도치 않게 친일 협력세력의 민낯을 까발렸다.

아무 근거 없이 ‘전략물자가 북한 등으로 흘러갔다’고 보도해, 한-일 갈등 초기 일본에 수출규제의 핑곗거리를 제공한 것도 이들이었다. 그래놓고 아베 정부 대신 우리 정부를 겨냥해 ‘경제 보복을 자초했다’고 비난했다.


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유예로 두 나라가 파국을 피한 뒤에도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일본의 유력 언론(아사히)마저 일본 정부에 ‘이성적 사고로 돌아가 수출규제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판에, 우리 정부의 ‘외교적 완패’ 운운하며 사실상 아베 편을 들었다.


따지고 보면, 80년 전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강제징용·징병에 동참하라고 꼬드겨, 일본 제국주의에 적극 ‘부역’한 것도 이들이다.

민족 앞에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배상’하라고 판결한 대법원과 뒤늦게나마 우리 국민 지키겠다는 정부를 헐뜯었다.

‘일본은 한번 각오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나라’라며, ‘힘이 부족하면 굴욕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라도 있어야 한다’고 조롱했다.

숨어 있던 ‘친일 부역’ 유전자가 되살아난 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망동, 망언이다.


최근에 나온 ‘장자연 사건’ 수사 외압 관련 판결은, 이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우울한 증거다.

‘조선일보를 대표해서 말한다’는 사회부장 한마디에, 경찰의 수사 책임자는 수사기밀도 다 건네줬다. 판결문은 ‘(사회부장의) 협박은 허위가 아니’라며 사실로 인정했다. 한 젊은 여배우를 죽음으로 몰아간 성착취 사건이 왜 묻힐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적반하장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들을 고소했다.


판결에 따르면, 알면서도 거짓 고소를 한 것이니, 똑떨어지는 무고죄에 해당한다. 피고소인 조사까지 마쳤다니, 사건이 곧 검찰로 넘어갈 것이다.

사법농단 사건에서 보듯이 전직 대통령 둘과 직전 대법원장까지 줄줄이 구속한 ‘윤석열 검찰’도 언론 권력 앞에선 꼬리를 감췄다. 이번에야말로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친일 협력 언론은 민족과 국민 앞에 한번도 제대로 과오를 인정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정치·경제·사법 분야까지 아우르는 기득권 동맹을 이끄는 ‘숨은 권력’으로 군림하며, 이제는 ‘반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내년이면 100년을 맞는 이들의 반민족·반민주 과거사를 국민들에게 다시 알리고 청산하기 위해, 지난 9월 ‘조선 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 출범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8443.html?_fr=mt0#csidxfcb4e9c33975b84a6494caf2a430f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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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백년전쟁' 이승만·박정희 명예훼손 아냐"...전합 7-6 팽팽




대법, 방통위 '정치적 편향' 제재 위법...하급심 파기 환송
전원합의체 "역사논쟁은 건전 추진력 돼"...6년만에 결론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 2019.11.21/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제재한 조치는 정당하지 않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소송 제기 6년만의 결론으로, 향후 유사 사례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청자 제작(퍼블릭 액세스) 전문 TV채널 시민방송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제재조치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방송법상 방송의 공정성·공공성 심의대상이 보도프로그램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엔 대법관 전원이 동의했지만, 이 다큐가 공정성·객관성 및 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를 지켰는지에 대해선 7대6으로 의견이 갈렸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7명은 "시청자 제작 방송프로그램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심사할 땐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에 비해 심사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은 특성을 반영해 심사하면, 이 다큐가 지켜야 할 의무를 어겼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다큐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충분히 알려져 사실상 주류적 지위를 점하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의문을 제기해,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라면서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한다"며 편향적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봤다.


이어 "역사적 인물 평가는 각자 가치관·역사관에 따라 때로는 상반되게 나타나고, 역사적 논쟁은 인류의 삶과 문화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끄는 건전한 추진력이 된다"며 "방송내용 중 역사적 평가 대상이 되는 공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사실이 적시됐어도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명예훼손과 모욕적 표현은 구분해 다뤄야 한다"며, 다큐에 나온 일부 표현이 '저속한 표현'을 제재하는 심의규정 위반이 될 여지는 있을지라도, 명예훼손 금지규정 위반이라고 할 순 없다고 밝혔다.


반면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이 다큐가 "제작의도에 부합하는 자료만 취사선택해 내용 자체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 객관성을 상실했고, 제작의도와 상반된 의견은 전혀 소개하지 않아 공정성·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이어 "다수의견을 따를 경우 선별·편향된 일부 자료만을 근거로 특정 역사적 인물을 모욕·조롱하는 방송을 해도 '역사 다큐' 형식만 취하면 아무런 제재조치를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진보성향 역사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은, 이 전 대통령 편 '두 얼굴의 이승만'과 박 전 대통령 편 '프레이저 보고서' 두 가지로, 시민방송에서 2013년 1~3월 총 55차례 방영됐다.

다큐엔 이 전 대통령이 친일파이자 기회주의자로 사적 권력욕을 채우려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 박 전 대통령이 친일·공산주의자로 미국에 굴복하고 한국 경제성장 업적을 가로챘다는 내용이 담겼다.


방통위는 그해 8월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루며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지 못했고, 사자 명예존중 조항을 어겼다"며 프로그램 관계자를 징계·경고하고, 이 사실을 방송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 시민방송은 이에 2013년 11월 소송을 냈다.


1,2심은 "해당 역사적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혹 제기에 그치지 않고,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편집하거나 재구성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정도로까지 나아갔다"며 방통위 손을 들어줬다.


시민방송의 불복으로 2015년 8월 대법원에 상고된 이 사건은, 당초 대법원 1부에 배당됐다가 3년 5개월만에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 심리돼오다 이날 결론이 났다.

대법원 측은 "이번 전합 판결은 하급심에서 명확한 개념이 정리되지 않았던 방송심의기준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 및 사자 명예존중의 의미를 제시하고, 역사에 대한 해석논쟁 자체가 공동체에 주는 긍정적 영향을 고려해, 이 다큐가 관련법령 한계 안에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스1) 서미선 기자 =

smi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