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 민생법안 볼모로 한 ‘필리버스터’ 규탄한다
자유한국당이 29일 ‘유치원 3법’을 비롯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던 199개 안건에 대해 무더기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이른바 ‘민식이법’, 사립유치원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 데이터경제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 중 일부, 대체복무제 관련 법 등 다수의 민생·경제 법안이 처리될 예정이었지만, 급작스러운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회의 자체가 열리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의 이런 행동은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검찰개혁 법안의 본회의 처리를 사전에 봉쇄하려는 초강수로 보인다.
황교안 대표가 8일간 해오던 단식 중단을 공식 발표한 뒤, 투쟁 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육책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선거법과 공수처법 저지를 위해, 199개의 민생·경제 법안까지 싸잡아 필리버스터로 묶어버린 건, 뭐라 강변해도 명분 없는 일이다. 민생을 볼모로 한 극한적인 정치투쟁은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두 개의 독재악법을 강행하려는 입법쿠데타를 막지 않는다면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며 “이번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필리버스터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국회법 규정에 따라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들에 대해 ‘입법 쿠데타’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선 말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국회법을 무시하고 패스트트랙을 저지한 자유한국당 행태가 ‘입법 방해’에 해당한다.
더구나 패스트트랙 법안만이 아니라 199개에 달하는 민생·경제 법안 모두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과거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필리버스터를 한 적이 있지만, 테러방지법 등 정치적 쟁점 법안에 한정했다.
그러나 이번에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만 필리버스터를 할 경우 물리적으로 저지가 어려울 것을 우려해, 모든 법안을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정해버렸다. 아예 정기국회를 마비시키겠다는 심산이다.
이렇게 되면 새달 10일까지로 예정된 정기국회는, 패스트트랙 법안은 물론이고, 내년도 예산안, 민생·경제 법안 등 어느 것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식물국회’로 전락하게 된다.
자유한국당이 국회법에 정한 필리버스터를 하는 것은 자유지만, 여야 이견이 없는 민생법안들까지 그 대상으로 삼는 건 옳지 않은 일이다.
황교안 대표가 단식 중단을 선언하자마자 초강수를 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황 대표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힘들게 단식을 하다가 마지못해 중단한 만큼, 이를 기회 삼아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협상을 벌일 수도 있었다.
국회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제1야당이 민생을 외면한 채 정치투쟁에만 골몰하면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행동이 제 발등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당장 중단하길 바란다.
[ 2019. 11. 30 한겨레 사설 ]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19055.html#csidxb45bc1fa5b9ffef8cf3a8d2090acfc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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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이 건 ‘정치적 도박’…국회, 예측불허 갈등 국면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이미 처리하기로 합의한 199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정치적 도박’을 감행하면서, 20대 국회 남은 임기 전체가 시계 제로 상황에 빠져들게 됐다. 패스트트랙 법안은 물론,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민생법안까지 몽땅 처리 불가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 한국당 ‘무더기 필리버스터’ 도박, 왜?
29일 오후 1시께 한국당이 본회의에 상정될 법안 199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회는 대혼란에 빠졌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이날 신청한 필리버스터가 패스트트랙 저지용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허를 찔렸다. 민주당 관계자는 “자신들이 합의하지 않은 ‘유치원 3법’ 처리를 막겠다며 필리버스터를 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처리에 합의한 법들까지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건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비판했다.
애초 한국당 필리버스터는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이 상정되는 날부터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이 일단 상정되면 필리버스터로 막을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법안의 상정 자체를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
한국당 관계자는 “필리버스터가 일단 시작되면 종결되기 전에는 국회의장이 패스트트랙 안건을 상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본회의부터 12월10일 정기국회 종료일까지 필리버스터를 계속 이어간다면,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 법안을 최소한 정기국회 회기 중에는 상정할 수 없고, 이럴 경우 연내 처리를 무산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199개 법안 모두를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삼은 건 대상 법안이 많을수록 토론을 길게 끌어가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 민주당이 쓸 수 있는 돌파책은?
민주당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 사실이 알려진 직후 비공개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의 등을 잇따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결국 민주당은 ‘본회의 무산’ 전략을 썼다.
국회법에 따르면,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이 출석하면 본회의는 열린다. 하지만 의결정족수(148명)에 미달할 경우 법안 상정을 하지 않던 관례가 있다.
문 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 접견실에서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를 만나 “오늘 안건이 200건 가까이 되는데 의결정족수가 필요한 안건들”이라며 “본회의에서 의결정족수가 되면 언제든 개의하고 사회를 보겠다”고 밝혔다고 한민수 국회 대변인이 전했다.
끝내 이날 본회의는 무산됐다. 필리버스터가 신청된 법안들 중 단 하나도 상정되지 않아 필리버스터도 시작되지 않았다.
한국당의 강공책으로 인해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가 아예 불가능해진 건 아니다. 우선 예산안이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새달 1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면, 국회의장은 예산안 처리를 명분 삼아 본회의를 열 게 확실시된다.
민주당은 이때 선거법-공수처법 등의 순서로 패스트트랙 법안의 일괄 상정을 요청하고, 한국당은 이에 대응해 패스트트랙 법안 전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먼저 상정될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정기국회 마지막날(12월10일)까지 이어지다, 회기가 끝남과 동시에 필리버스터도 자동 종료되는데, 곧이어 임시회를 소집하면 선거법은 ‘지체 없이 표결’에 부쳐진다.
이후 3일짜리 임시회를 잇달아 열면서, 나머지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상정한 뒤, 필리버스터 종료와 함께 다음 임시회를 소집해 표결하는 수순을 밟게될 것으로 보인다.
■ 양당의 고민 또는 아킬레스건
한국당의 초강수로 패스트트랙 법안을 막는 쪽이나 밀어붙이는 쪽이나 모두 부담이 커졌다.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된 건 한국당이다. 한국당은 ‘민생을 볼모 삼았다’는 엄청난 비난에 맞닥뜨리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사립유치원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은 물론,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 중 일부 법안,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 등 주요 민생·경제 법안이 처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줄줄이 무산됐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에 앞서 민식이법 등을 먼저 처리하겠다”고 제안한 것도 격앙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민식이법’ 등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의 처리를, 대놓고 선거법 저지용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피해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을 강력 비판하며 울먹였다.
민주당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 입장에선 199개 민생법안 모두 상정 즉시 필리버스터가 발동된다. 시한폭탄이 달려 있는 셈이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 앞서 민생법안 처리를 시도하기 힘들다. 민주당 관계자는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앞세워 먼저 처리해야 한다. 다만, ‘패스트트랙 법만 중요하고 다른 법은 중요하지 않으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며 “그렇다고 민생법안을 앞서 상정하면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쓸 수 있다. 199개 법안 모두 필리버스터 하면 20대 국회 임기 말까지 필리버스터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정국 경색이다.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은 합의까지 아직 먼 길이 남아 있다. 이날 이후 협상은 매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한국당을 제외한 ‘4+1’ 연대로 급격히 힘이 모이면서 합의에 빠르게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
김원철 김미나 기자 wonchu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19052.html?_fr=mt2#csidxf93f0221c181a8b9055c55bef2527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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