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악귀들의 공모 :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죄 뒤집어씌우기. 검찰, 언론, 이명박 정권, 법원

道雨 2020. 5. 19. 11:24






악귀들의 공모
죄수와 검사Ⅱ(한명숙) ③ “나는 검찰의 개였다” 한만호 비망록 단독 입수
강기석 | 2020-05-16 11:09:0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뉴스타파(+MBC)가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명박 정권이 검찰을 시켜 한명숙 전 총리를 옭아맨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핵심 증인, 고 한만호씨 (전 한신건영 사장)가 옥중에서 작성한 1,200쪽에 이르는 비망록을 입수한 것이다.


한만호 사장이 1심 2차 공판에서 “저는 한 전 총리에게 어떠한 정치자금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비겁하고 조악한 저로 인해 누명을 쓰고 계신 것입니다”라고 양심고백을 한 이래, 자신의 검찰조사 과정에서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되살리고, 이후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여러 증거나 증인들에 대한 소회와 평가 등을 소상히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검찰이 그의 감방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해 빼앗아간 후, 일부 발췌한 부분들을 법정에 추가 증거물로 제출하면서 “한만호가 자신의 진술 번복을 정당화하고 검찰을 공격하기 위해 허위 사실과 모순된 논리로 작성한 것” 이라고 폄훼한 바로 그 문건이다.


당시 검찰이 숨기고 내놓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이번에 모두 공개된 것인데, 나는 그의 비망록이 검찰의 주장과 정반대로 거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본다.

한 사장이 비망록을 작성한 것은, 나중에 출감했을 때 증언을 하거나 회고록 같은 것을 낼 경우 오류가 없도록 기억을 적어 둔 것인데, 그것을 일부러 거짓으로 적을 리가 없는 것이다.

1,200쪽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이라면, 어디 한 군데 허위가 있어도 그 즉시 전체의 흐름이 온통 흐트러지지 않겠는가. 더구나 한 사장은 검찰이 자신의 옥중 비망록까지 압수해 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는 허위 비망록을 작성해 무기로 사용할 엄두도 못 낼 사람이고 깜냥도 없는 사람이다.


더구나 검찰은 한 사장의 비망록에 나오는 여러 (검찰에 불리한) 사안들에 대해 전혀 납득할 만한 해명도 없었고, 확인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한 사장은 비망록에서 자신이 돈을 준 것은 한 전 총리가 아니라 한나라당 쪽 정치인에게 6억 원을 줬다고 검찰에 분명히 밝혔는데도 검찰이 이를 덮었다고 했다.


그 뿐 아니다. 한 사장은 재판 과정에서 일산의 한 교회 신축공사를 따내기 위해, 그 교회 한 장로에게 2억2천만 원, 그 사위와 딸에게 1억4천만 원+알파의 인테리어비용, 임대료 등 지원, 장로를 소개해 준 건설브로커에게 최소 1억 원을 줬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이들 장로와 건설브로커는 검찰측 증인으로 나와, 한 전 총리가 한 사장에게 교회 신축공사를 따주기 위해 애썼다는 식의 증언만 했다. 검찰이 과연 이들의 계좌를 슬쩍이라도 들여다 봤을까?


검찰은 처음부터 한 전 총리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음습한 곳에 숨어 음모를 꾸미고, 오로지 한 방향으로 몰아가며 걸치적거리는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한 전 총리를 함정에 빠뜨리는 작업에 협조한 자는 살아남았고, 거부한 자는 죽었다.

한 사장 집안은 거의 멸문지화를 당했다. 한 사장은 위증죄로 곱징역을 살았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공황장애가 있음에도 법정에 끌려나왔던 그 부모도 다 죽었다. 남은 가족들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악귀들만이 할 이런 짓에 법원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2심 재판관 정형식은 핵심증인 한만호를 단 한 번도 부르지 않고 “돈을 줬으니 검찰에서 줬다고 하지 않았겠느냐”는 식의 단순 논리로 1심 무죄를 뒤집고 2심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법농단’ 양승태의 대법원은 2부에서 질질 끌다가, 전원합의체로 돌린 후 8-5로 유죄 확정 판결을 내려, ‘한명숙 유죄’에 대못을 박아 버렸다.

한만호의 ‘양심선언’이 위증죄라는 검찰 주장에 동조해 한만호를 또 한 번 감옥에 가두었을 뿐 아니라, ‘한명숙 유죄’에 이중 자물쇠를 채웠다.


언론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언론은 (지금의 조국 가족에 대한 수사 기소 재판 과정과 마찬가지로) 한 전 총리 사건 내내 검찰 편에 서서 흘리고 부풀리고 뒤틀면서 ‘한명숙 유죄’를 기정사실화했다.

다른 신문 방송들은 더 말하기도 싫다. 내 기억엔 한겨레신문도, 아니 한겨레가 더 얄밉게, 한 전 총리의 유죄에 대한 예단을 갖고 한 전 총리를 공격해댔다.


내가 보기에 한겨레신문의 조국 관련 보도는 몇 년 전 그때 한 전 총리 사건 보도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지난해 검찰 편향적인 칼럼 게재를 만류한 간부들을 성토하는 젊은 기자들의 성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한 바도 있다.


그런 한겨레가 어제 지령 1만호를 맞아 ‘2020 새로운 취재보도준칙’을 만들었다는 사고를 냈다. 그중 한 대목.

이른바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한겨레가 앵무새처럼 검찰 주장만 받아쓴다”는 독자의 비판과 함께 “조국 일가의 불공정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질타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한명숙 전 총리 수사와 재판을 보도한 한겨레가 “검찰의 입장에 서서 검찰 주장만 대변했고, 그래서 한 전 총리의 (있지도 않은) 부패혐의에 너무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것“이 문제라고 보는데, 조국 사건에 대해 도대체 한겨레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조국은 한 전 총리의 경우와 다른가?
한겨레는 잘 하고 있는데 뉴스타파는 잘 못하고 있는가?


죄수와 검사Ⅱ(한명숙) ② 사라진 증인, 빼앗긴 비망록




죄수와 검사Ⅱ(한명숙) ③ “나는 검찰의 개였다” 한만호 비망록 단독 입수
(뉴스타파 / 심인보 / 2020-05-14)


https://www.youtube.com/watch?v=atD5O2XCbLw&feature=youtu.be

이른바 ‘한명숙 2차 뇌물 사건’의 뇌물 공여자이자 핵심 증인인 고(故) 한만호 씨가 옥중에서 남긴 친필 비망록을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한만호 씨는 지난 2010년 4월 죄수 신분인 상태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소환된 뒤 “한명숙에게 9억 원의 정치 자금을 제공했다”고 진술해 한명숙 전 총리가 기소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법정에서 자신의 진술을 번복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공책 29권, 천 2백 쪽 분량인 한만호 비망록에는 한명숙에게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다가 번복한 이유가 자세히 적혀 있다. 비망록에서 한만호는, 자신이 추가 기소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약속 때문에 거짓 진술을 했다며 자신을 검찰의 “강아지”로 표현했다. 또 검찰이 처음 약속과는 달리 언론 플레이를 통해 서울 시장 선거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보고 진술 번복을 결심했다고도 했다.

한만호가 검찰 조사에서 처음에는 한명숙이 아니라 당시 한나라당의 다른 정치인에게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지만 검찰이 이를 묵살하고 한명숙 관련 진술만 요구했다는 주장도 비망록을 통해 처음으로 드러났다.

▲ 뉴스타파가 입수한 고(故) 한만호 씨의 친필 비망록. 노트 29권, 1,200페이지 분량이다.

마침내 공개되는 ‘한만호 비망록’

이른바 한명숙 2차 뇌물 사건의 두 번째 공판기일이었던 2010년 12월 20일, 서울중앙지검 510호 법정에 나온 한만호는 이렇게 말했다. (아래 한만호 비망록에서 발췌해 인용하는 문장들은 최대한 원문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어법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 뉴스타파는 사건 당시 관련자들을 광범위하게 수소문했지만 한만호의 생전 사진을 한 장도 구할 수 없었다. 관련자의 증언을 토대로 몽타쥬 기법으로 복원한 한만호의 생전 모습. (by 아트만두)

통영교도소로 이감된 지 불과 21일 뒤인 2010년 3월 30일, 한만호는 갑자기 서울 구치소로 이감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요구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만호는 자신이 왜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는지 전혀 몰랐다.

● 3월 30일 아침 화장실에서 세면 도중 이송명령 받고 즉시 짐 꾸려서 방 동료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이송 교도관에게 어디로 누가 부른 것이냐, 무슨 자격이냐 (물으니) 검사가 부른 것이란 것 밖에 모른다(고 답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졌다. 추가 사건이 있나, 아마 누가 검찰에 직접 고소했나보다.
- 한만호 비망록 1072쪽 중

서울구치소로 이감된 한만호는 2010년 4월 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출정을 나가 조사를 받게 된다. 2-3시간 조사를 받고 나서야 한명숙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4월 1일. 통영에서 올라온 다음 날 소환되어 부도 경위와 피해자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제가 무슨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이냐 물었다. 아무 신분도 아니고 그냥 조사하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한 총리님 건이라 생각못했다… 2-3시간 지난 후 알고 지내는 정치인 있느냐 물었다. 이때부터 한 총리님 예감이 들었다.
- 한만호 비망록 21쪽 중

그런데, 비망록에 따르면 한만호는 이날 조사에서 한명숙이 아닌 다른 정치인에게 돈을 준 사실을 얘기했다.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이었다.

▲ 한만호는 비망록에, 검찰 조사에서 한명숙이 아니라 당시 한나라당 정치인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진술했다고 적었다. 당사자가 사망해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해당 정치인의 이름은 가렸다. 한만호 비망록 56쪽 중.

한만호는 비망록에 이 주장을 모두 4차례나 반복해서 적었다. 그만큼 이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소환된 첫날, 한나라당 의원에게 정치자금 제공 사실을 진술했다고 주장하는 한만호의 비망록 또 다른 부분.

한만호가 정말로 한명숙이 아닌 한나라당 의원에게 6억 원을 줬는지는 지금에 와서 밝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돈을 줬다는 당사자, 한만호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만호가 비망록을 통해 거듭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다른 의원의 이름을 댔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관심은 오로지 한명숙에게만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뉴스타파는 검찰에 당시 한만호가 한나라당 다른 의원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한 게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왜 그러한 진술을 묵살했는지 질의했으나 보도 시점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검찰은 보도가 나간 뒤인 2020년 5월 14일 오후 1시 경 보내온 답변서에서 “한만호가 한명숙 외 다른 정치인에게 금품을 주었다는 진술은 전혀 없었으며, 비망록에 적힌 내용은 한명숙에게 전달한 금품의 사용처를 허위로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특수부 조사실에 법조 브로커 나타나 검찰 협조 종용”

2010년 4월 1일 중앙지검 특수부에 불려가 첫 조사를 받은 한만호는 다음 날에도 특수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다. 검사와 수사관이 그에게 했다는 말은 협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도 한만호는 버텼다.

● 4월 2일 특수부 다시 소환됩니다. 수사관님과 검사님이 절대 불이익이 되지 않게 하겠다. 한 총리에 대해서 사실대로 답변해달라. 선택해라, 협조해서 도움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힘들게 해서 어려워지시든지. (그래서 저는) 한 총리님에 대한 이야기는 거론조차 하지 말아라.(고 답했고) 이렇게 종결됩니다.
 - 한만호 비망록 21쪽 중

4월 3일, 검찰은 한만호를 또 소환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한만호가 비망록에서 ‘법조 브로커’라고 주장한 남 모 씨였다.

● 오후 끝날 무렵 조사실로 데려가더니 남00이 뛰어들어왔다. 얼굴 보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 한만호 비망록 21쪽 중

남 씨는 한만호가 구속된 이후 회사 정상화를 명분으로 한신건영에 감사로 입사한 인물이다. 감옥에 갇혀 있던 한만호는 수감생활 초기에는 회사에 있는 남 씨를 믿고 의지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남 씨가 사실은 자신의 회사를 빼앗으려 한다고 의심했다.

● 남00에 대하여... (중략) 법정 관리 하겠다 하여 가져간 서류 악용해서 지분, 회사 양도해가고, 아버님께도 경매시 2억인가 준다고 하여 서류 받아가서 회사 강탈한 것임.
 - 한만호 비망록 163쪽 중

그런데 남 씨는 스스로 법조계와 수사기관 인맥을 과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한만호는 법조 브로커로 활동했던 남 씨의 뒤에 법조 권력이 있다 믿었고, 이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인물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조사실에 나타난 것이다. 조사실에 나타난 남 씨는 한만호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 “사장님 협조하시고 도움을 받으시지요. 앞으로 다른 건 추가 기소로 또다시 어려워지실텐데요.”... “서울시장 선거도 있고 이 건은 전체를 직접 계획하고 주도하는 아주 윗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협조 안하시면 무척 힘들어지실 것입니다.”
- 한만호 비망록 21쪽, 61쪽

검사와 수사관들의 종용에도 한명숙에게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버티던 한만호는 남 씨의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비망록에 “하늘이 무너지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썼다.

▲ 한신건영에 관계했던 ‘법조 브로커’ 남 모 씨의 협박을 받고 한만호는 “하늘이 무너지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기록했다. 한만호 비망록 61쪽 중.

그날 밤, 구치소에 돌아온 한만호는 검찰에 협조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 돌아와서 밤을 꼬박 새웠다. 이것이 현실이고 대세며 따라야할 시류라면 따를 수 밖에. 협조해서 회사 찾고 복수하고 피눈물 흘리는 피해자분들 회복시켜드리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제 자신에게 합리화했다.
- 한만호 비망록 21쪽 중

한만호가 검찰에 협조하기로 결심한 첫 번째 동기가 공포였다면, 두 번째 동기는 희망이었다. 한만호는 구속된 이후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복수와 재기를 꿈꿨다. 구속 이후 자신의 회사를 빼앗아간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출소 뒤 회사를 되찾아 재기하는 꿈을 꿨던 것이다. 비망록에 쓰여진 한만호의 주장에 따르면 검찰은 그에게 협조의 대가로 그 꿈이 이뤄지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 검찰과의 ‘진술 거래’를 주장하는 한만호의 기록. 한만호 비망록 61쪽 중.

한만호가 일단 검찰에 협조하기로 결심하고 나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특수부 조사실에서 남 씨의 협박을 받고 난 다음 날부터 한만호는 “스토리를 구상해” 검찰에 진술하기 시작했다. 4월 5일 1차 조서, 4월 8일 2차 조서, 4월 12일 3차 조서, 4월 22일 4차 조서, 5월 11일 5차 조서가 완성된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그에게 식사 등의 편의를 제공하며 칭찬했다고 한다.

● 자필 진술서 작성 이후부터는 한만호는 없어지고 오로지 검찰의 안내대로 따르는 강아지가 되었고 매일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마다 검 수사관들의 립서비스에 마냥 흐뭇해하고 옳고 그른지 판단력은 없어졌거나 마비되어버렸다.
- 한만호 비망록 1086쪽 중

“진술조서 암기시켜 테스트.. 모멸감 잊지 못해”

한만호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처음으로 소환된 2010년 4월부터 그해 12월까지 검찰에 무려 73번이나 출정을 나가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한만호의 진술조서는 딱 5회 분량이다. 나머지 68번은 검찰 조사실에 나가 어떤 조사를 받았던 걸까. 비망록에 그 답이 있었다.

● 출정 전날에 방에서 운동장에서 시험 준비하느라 혼자 중얼중얼대서 다른 수감자들이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봤다. → 실수없이 잘하면 칭찬해주고 저녁(식사). 그 능멸, 모멸감을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다.
- 한만호 비망록 77쪽 중

▲ 검찰이 진술조서를 암기시키고 매주 시험을 보게 했다고 주장하는 한만호의 비망록 내용. “그래도 20년 넘게 CEO한 사람을 마치 저능아 취급했다”는 대목이 그가 느낀 모멸감의 정도를 보여준다. 한만호 비망록 139쪽 중.

검찰이 재판에 대비해 한명숙 측 변호인들의 질의에 대답하는 법을 알려주고 진술조서를 암기하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 과정 중에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한만호가 3차례에 걸쳐 3억 원씩 한명숙에게 가져다 줄 때, 두 사람 사이의 통화 횟수를 임의로 조정했다는 것이다.

● (9억 원을) 3번에 걸쳐 제공했다 허위 진술시 검찰에서 (한 총리와의 통화 횟수가) 매번 3번씩 433으로 스토리 만들었다가 나중에 332로 했다 소동이 되니 그냥 333으로 하자 합의하고 진술과 연습했다...종종 자금제공 순서가 바뀌고 해서 검사님이나 수사관님들이 당황한 적이 몇 번 있었다.
- 한만호 비망록 70쪽 중

한만호의 변호인을 맡았던 김정범 변호사 역시 한만호에게서 같은 얘기를 들었다.

“제가 한만호 씨한테 물어봤어요. 조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에는 뭘 했냐 하니까 음식을 시켜서 먹고 그 다음에 나중에 재판을 하다 보면 변호인이 이러이러한 공격을 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될 것이냐 그래서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습도 하고 그랬다고, 한만호 씨는 그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당시에는. (기자: 만약에 그랬다면 그거 불법 아닌 겁니까?) 그렇죠. 당연히 불법이죠. 있을 수 없는 거죠. 대한민국 검찰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죠.”
 - 김정범 변호사 인터뷰 중

“진술 번복의 동기는 검찰의 언론 플레이와 선거 개입”

이렇게 검찰의 “강아지”가 되어 충실하게 증인의 역할을 수행하던 한만호는 대체 왜 자신의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기로 결심한 걸까? 한만호 비망록에 따르면 검찰의 ‘언론 플레이’와 ‘선거 개입’이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만호는 검찰에 협조를 결심하면서 검찰의 약속을 한 가지 받았다. 자신의 진술을 선거 전에 언론에 유포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한만호가 검찰에 협조를 시작한 게 2010년 4월 초, 서울시장 선거는 6월이었고 이미 한명숙은 야당의 서울시장 후보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한만호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고 한다.

▲ 검찰이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언론플레이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한만호의 자필 기록.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마술사’ 수준이다”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한만호 비망록 142쪽 중

한만호와 검찰 수사관 사이에서는 이런 대화까지 오갔다고 한다.

● 수사 초기에 언론에 악의적 보도 계속 터져나오게 되어 - 수사관에게 노무현 대통령도 저래서 (논바닥에서 시계)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총리님도 이러다 그렇게 되시는 것 아닐까요. 정말 걱정됩니다. - 그런 일 절대 없을 것입니다. 한 사장님은 그런데 신경쓰지 마십시오. 우린 그런 걱정 안 합니다. 정말 걱정이 됐고 꿈도 서너 번 비슷한 내용으로 꾸었다.
- 한만호 비망록 1111쪽 중

한만호는 검찰이 약속을 지켰더라면 법정에서의 진술 번복을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망록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 약속(언론에 안 나오게)대로 언론에 악의적인 이야기 흘리지 않았으면 증인의 심정이 그토록 고통스러움을 느끼지 못할 수 있었다. 총리님을 뵙는 것도 아니고. 증인도 살아야할 생각에 너무나 절박했기에 검찰의 진술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 기사 내용은 그런 증인의 심정이 한층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아득함 뿐이었다. 거짓 진술, 사실이 아닌, 날조였기에
- 한만호 비망록 152쪽 중

한만호 비망록에 따르면 검찰은 한만호의 진술을 언론에 계속 흘리면서 (한만호는 이를 ‘언론질’이라고 표현했다) 서울 시장 선거 지지율을 계속 점검했다.

▲ 검찰이 서울시장 선거 지지율을 계속 점검했다고 주장하는 한만호의 자필 기록. 한만호 비망록 1038쪽 중.

결국 한명숙은 서울 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에게 불과 2만 6천여표, 0.6% 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선거 전 여론 조사에서 20% 포인트가 넘게 벌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차이로 패배한 것이다. 한명숙이 간발의 차이로 패배하자 한만호는 더욱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

● 총리님의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왜곡되고 검찰이 언론을 통해 무차별 이미지 훼손 기사 나올 때마다 죄책감으로 가슴 속에 선혈이 터져나올 듯한 고통을 느꼈다. 부관참시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진술을 바로잡아 진실을 밝힐 것이다.
- 한만호 비망록 7쪽 중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기로 결심한 한만호는, 그러나 검찰에는 이런 결심을 밝히지 않고 숨겼다. 선거는 이미 끝났고, 검찰에서 진술을 번복해봐야 통하지 않거나 겁박을 당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 검찰에서 진술 번복 시도하지 못한 이유는? 처음부터 윗선의 주도 계획하에 방대한 조직이 움직여서 시작된 수사라 법정이 아니고서는 섣불리 시도했다간 어떤 명목으로든 (횡령 불법자금 로비 기타 등등)으로 보복당할 것이란 두려움에 표정 관리하며 법정 증언날만 기다렸다.
- 한만호 비망록 134쪽 중

“검찰 언론플레이는 마술사” “언론은 관변 아첨 기관”

한만호는 비망록 곳곳에서 검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는 듯한 언론의 행태에 분노를 표출했다. 한만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 밖에서 사람들이 조중동이나 일부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라 해서 과장된 말이려니 했는데 제가 직접 당해보니 조금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었어요. 언론의 권력은 견제 감시하는 기관이 아니고 적어도 정치 사건에 관해서는 기관지나 관변 아첨 기관이 되어 있는 것 알 수 있었지요. 조중동과 경제 신문은 충성 다툼이 술집 아가씨 분칠하듯 하구요.
- 한만호 비망록 1163-1164쪽 중

▲ 한만호는 비망록 곳곳에서 이른바 조중동 등 보수 언론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한만호 비망록 1164쪽 중.

사건 당시 한만호의 변호인이었던 최강욱 변호사는, 한만호가 검사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마주친 적이 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검사가 불러서 갔는데 어떤 사람이 앉아있다가 나가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책상에는 동아일보가 펼쳐져 있었고. 그 검사 지금도 현직에 있어요. 젊은 사람이 있다가 나가고 이 사람(한만호)이 이렇게 들어오니까 둘이 스쳤을 거 아닙니까? 이렇게 쳐다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동아일보 기자예요.’ (라고 답하더라는 겁니다.)”
- 최강욱 변호사 인터뷰 중

검찰, 한만호 비망록은 “허위 사실, 모순된 논리”

검찰은 한만호의 비망록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면서 증거 목록에 이런 설명을 달았다. “한만호가 진술 번복 후 허위 사실과 모순된 논리로 검찰을 공격”

▲ 검찰이 한만호 비망록을 법원에 제출하면서 작성한 증거목록

검찰이 이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비망록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한만호의 법정 진술 이후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만호가 어떤 이유로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한 이후 그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비망록을 작성했다는 의미다. 검찰의 이같은 방어논리는 일리가 없지 않다.

뉴스타파는 검찰의 방어논리가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만호가 진술 번복을 하기 전에 적어놓은 기록들을 면밀히 살폈다. 한만호 비망록 가운데는 그가 검찰에 진술 협조를 결심한 시기인 2010년 4월부터 법정에서 진술 번복을 감행한 2010년 12월 사이에 기록해놓은 편지와 메모들이 다수 있다. 물론 그 가운데 한명숙 사건을 직접 언급한 부분은 많지 않다. 언제든지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검찰이 다 확인하지 못했을, 의미심장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2010년 5월, 그러니까 한만호가 본격적으로 검찰에 협조를 하던 시기 한신건영의 부하직원에게 보낸 편지의 초안이다.

▲ 한만호가 2010년 5월 한신건영 직원에게 보낸 편지의 초안. 검찰에 협조를 함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이 풀릴 것이라 기대하는 내용이다. 한만호 비망록 994쪽 중.

한만호가 진술 번복 이후에 주장한 것처럼, 검찰에 협조를 하면 자신의 사건을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함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라는, 즉 진술 협조의 댓가를 기대하며 암시하는 내용이다.

같은 시기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제 검찰은 자신의 편이라는 자신감도 엿보인다. 감옥에 갇혀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을 토로했던 과거의 편지들과 사뭇 달라진 분위기였다.

● 혹시라도 이번 사건 이후에 어느 누구라도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려는 느낌만 들어도 서신하도록 해. 절대 용서하지 않고 뿐만 아니라 그 댓가가 처절함을 반드시 몸서리쳐지게 해줄 것이니까
- 한만호 비망록 989쪽 중

역시 아내에게 보낸 같은 편지 가운데는, 한명숙 총리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일말의 죄책감이 엿보이는 편지 내용도 있다.

● 이번 사건으로 내 운명이 어찌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남은 선택을 하게될 것 같아... 이 사건으로 희생되는 분들이, 어떤 형태로든 희생자가 생길 것이고... 출소 후에 그나마라도 희망을 기대했던 사람들 몰락시키는 것이…
- 한만호 비망록 989쪽 중

“용서받지 못할 일을 내가 저질렀나 보다”

감방에 갇힌 죄수도 신문을 구독할 수 있다. 한만호 비망록 가운데는 그가 신문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해놓은 노트가 있다. 역시 진술 번복 이전에 작성된 것이어서 그가 어떤 심경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기록이다.

2010년 6월과 8월 사이, 한만호가 신문에서 필사해 적어놓은 메모다. 날짜는 적혀 있지 않지만 앞 뒤 메모를 통해 날짜를 추정할 수 있었다. “금수회의가 따로 없습니다. 입만 열면 생고기 뜯고 난 비리칙한 냄새가 납니다. 포식을 끝낸 짐승처럼 저희들끼리 화해롭습니다. 피묻은 발톱을 핥고 고깃점이 묻어있는 털 고르는 일이 남았습니다.” 한만호는 이 메모에 대해서 별도의 설명이나 주석을 달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떤 심정으로 이 부분을 필사해 두었는지는 추측할 수 있다. 자신과 검찰의 행태를 적확하게 묘사했다고 느껴 필사해둔 것은 아닐까.

▲ 한만호가 2010년 6월에서 8월 사이 신문을 보고 필사해놓은 메모. 한만호 비망록 817쪽 중

보다 직접적으로 한만호의 심경을 보여주는 필사 메모도 있다. 2010년 10월과 11월 사이 작성된 메모다. 한만호는 이향아 시인의 <세상의 후미진 곳에서>라는 시를 필사해 두었는데, 시의 내용은 이렇다. “이 세상 후미진 곳에서 / 나를 아직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보다 / (중략) / 용서받지 못할 일을 내가 저질렀나 보다 / 그의 눈물 때문에 온종일 날이 궃고/ 바람은 헝크러진 산발로 우나보다 / 그래서 사시사철 내 마음이 춥고 / 바람결 소식에도 귀가 시린가 보다”

▲ 한만호가 2010년 6월에서 8월 사이 신문을 보고 필사해놓은 메모. 한만호 비망록 823쪽 중

한만호는 자신의 진술 때문에 한명숙 총리가 선거에서 패배했을 뿐 아니라 언론을 통해 여론 재판을 받게 되자 그 괴로운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위에서 인용한 이향아 시인의 시구 마지막 부분과 상당히 유사하게 느껴진다.

● 독거방에 있을 때에도 식사 때 좋아하는 음식이나 간식을 포만하게 먹었을 때도 파렴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선거가 끝난 뒤에 찾아온 한여름 독거방 더위에도 한밤중에 일어나 심정을 추스리느라 한여름이었음에도 귀가 시리고 손발이 저려왔다.
- 한만호 비망록 40-41쪽 중

한만호가 법정에 나와 진술 번복을 한 이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허위 사실과 모순된 논리로 검찰을 공격”하기 위해 비망록을 썼다는 검찰의 방어 논리는, 그가 진술 번복 이전에도 비망록 곳곳에 검찰로부터의 대가를 기대하는 내용이나 양심의 가책을 표현하는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그 근거가 취약하다.

진술 번복 그 후의 기록

한만호가 법정에 나와 진술을 번복하자 검찰은 한만호의 부모를 찾아갔다. 검찰은 “진술 번복의 이유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한만호는 큰 압박감을 느꼈다.

● 증언 이후에 검사님이 부모님 만나고 왔다. 언제 출소할지 모르겠다 하고 오셨다. 기막히는 이야기였다. 번복하지 (용기내지) 못했던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추가기소나 형을 다 살아야) 때문이었는데 그 약점을 노리셨다.
- 한만호 비망록 38쪽

검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만호는 법정에 6차례나 다시 나와 검찰에서의 진술이 허위였다고 재확인했다. 대질 신문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만호가 이렇게 법정에서 분투했던 때는 그가 만기 출소하기 불과 서너달을 앞둔 시점이었다. 검찰에서의 진술을 법정에서도 유지했더라면 그는 2011년 6월 별탈없이 만기출소했을 것이다. 그리고 검찰이 약속한 도움을 받아가며 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집스럽게 진술 번복을 유지했고, 결국 검찰은 그를 위증혐의로 기소하기에 이른다. 2011년 7월 한만호가 출소하고 불과 한 달 뒤의 일이다. 만기 출소 4일 전 감방 압수수색을 당해 비망록 전체를 검찰에 빼앗긴 것도 이 위증혐의와 관련된 수사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위증은, 재판에서 고의로 거짓 증언을 했을 때 적용되는 범죄 혐의다. 한만호의 진술이 위증인지 아닌지는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사건이 결론이 나야 밝혀지는 일이다. 그런데 검찰이 한만호를 위증혐의로 기소한 것은 한 전 총리 사건의 1심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의 일이었다.

“한명숙 총리에 대한 재판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먼저 기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한만호 씨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검사가 기소한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고요. 결국은 한만호 씨의 진술을 다시 번복하도록 하려는 압박용이랄지 아니면 그 재판에 한명숙 총리에 대한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그런 방법으로 서둘러 위증죄로 기소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김정범 변호사 인터뷰 중

1심에서 무죄가 났던 한명숙 사건 판결이 2심에서 정형식 부장판사에 의해 뒤집히고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던 양승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자, 검찰은 이미 기소해뒀던 한만호의 위증혐의를 기어코 다시 수사해 2016년 5월 그를 구속시켰다. 한만호는 출소 5년만에 다시 감방에 가게됐고, 2년 뒤 만기 출소했지만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출소 이후 스트레스와 무리한 음주가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0년 만에 빛을 본 한만호의 비망록, 그것은 검찰의 겁박과 회유를 받아 거짓 진술을 했던 사람의 진실된 자기 고백이었을까, 아니면 법정에서 위증을 한 위증범의 자기 정당화였을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 한만호는 이제 세상에 없다. 뉴스타파는 그의 진실을 밝혀줄 다른 증인을 찾아 나섰다. (4편으로 이어집니다.)

‘한명숙 사건’의 쟁점은?

한명숙 뇌물 사건은 1차 사건과 2차 사건으로 나뉜다. 검찰이 2009년 12월에 기소한 1차 사건은 대한통운 전 사장이었던 곽영욱이 인사 청탁 등의 대가로 한명숙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줬다는 혐의다. 이른바 ‘의자가 뇌물을 받았다’는 것으로 회자되었던 이 1차 사건에 대해서는 1심과 2심, 대법원 상고심에서까지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뉴스타파가 이번에 <죄수와 검사Ⅱ>를 통해 다루고 있는 사건은 2차 사건이다. 한신건영 대표 한만호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 상당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다.

한만호는 법정에 나와 진술을 번복하면서, 9억 원 가운데 6억 원은 H교회 건물 공사 수주를 위한 로비 자금과 성과급 명목으로 한 전 총리 측과 무관한 다른 사람들에게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한만호가 돈을 줬다고 지목한 사람들이 법정에 나와 한만호와의 대질 신문까지 이루어졌으나 양측 주장이 엇갈렸다.

따라서 당시 재판에서는 나머지 3억 원이 주된 쟁점이 됐다. 한만호가 3억 원을 한명숙 전 총리의 비서 김 모 씨에게 빌려준 건 확인된 사실이다. 다만 이 돈의 성격이 사적인 대여금인지, 아니면 정치자금인지, 그리고 한 전 총리가 여기에 개입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3억 원 가운데 2억 원은 검찰 기소 전에 이미 한 전 총리의 비서 김 씨가 한만호에게 갚았다. 그런데 수표로 지급된 나머지 1억 원은 한명숙 전 총리 동생의 전세 자금으로 사용됐음이 드러났다. (이 1억 원 역시 검찰 기소 전에 상환됐다.) 검찰은 비서 김 씨가 3억 원을 받았다가 돌려주는 과정에 한명숙 전 총리가 개입했다고 주장했고, 변호인 측은 한 전 총리와 무관한 한만호 - 김 모 비서 - 한 전 총리 동생 3자 사이의 사적인 금전 대차 거래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23차례 공판 및 현장 검증 끝에 2011년 10월 무죄를 선고했다. 한만호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전달한 일시와 방법, 한만호가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있었는지 여부, 한만호의 장부에 적혀 있는 ‘한’이라는 글자가 한 전 총리를 의미하는지 여부 등이 세부적인 쟁점이었다. 2013년 9월 2심 법원의 정형식 판사는 단 4차례 공판 끝에 1심 판결을 뒤집어 유죄를 선고하면서 9억 원의 정치자금법 위반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은 2015년 8월 상고를 기각하고 최종적으로 유죄를 확정했다.

출처:
https://newstapa.org/article/NGu_1?fbclid=IwAR1fb-mcEunXr5Bm1np406W25-iF8ZxXfk5WzwAoBXRGXMDFrUmCWO-wa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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