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진이의 37살 생일을 맞아 옛날 일을 돌아보며
지금껏 범진이의 양력 생일은 모르고 지냈다. 평소 음력 생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내가 집에 없었던 날에 태어났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서는 나와 집사람, 그리고 공진이와 소연 엄마(며느리), 범진이까지도 음력을 기준 삼아 생일을 치르니, 양력 일자는 자연스레 잊히게 되었다.
다만 손녀인 소연이와 소은이는 양력으로 치르고 있다.
범진이의 생일은 1985년 4월 3일(음력)이다. 지금 양력으로 변환해보니 5월 22일로 나온다. 그러고 보니 그 때쯤인 것도 같다.
당시는 내가 군대에서 현역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고, 조치원에서 부산으로 전출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라, 우리가 살 집을 구하지 못해 조치원에서 이사도 하지 않은 채, 나는 혼자 여관 생활을 하며 부대 근무를 했다.
그러다가 나는 당시 경기도의 어느 곳에서 1달 기간의 부대 전입기초반 교육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교육을 받던 중 집으로 전화를 해달라는 연락은 받았지만, 이유를 알지를 못했고, 전화 사정도 여의치 않고, 나중에 교육 끝나고 가면 무슨 일인지 자연히 알게 되겠지 생각하고 무심히 넘겼다.
교육기간이 끝나고 나서 서울 큰집에 들렀다가, 그때서야 집사람이 출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집사람은 조치원에서 지내던 중, (시)아버지 생신에 참석하느라 서울 큰집에 왔는데, 아버지 생신날 아침에 산통을 느끼고, 둘째 형수님이 아는 조산원에 가서 그날 바로 범진이를 출산하였다고 한다.
전후사정 얘기를 들은 후에야 비로소 교육 중인 부대로 연락이 온 연유를 알게 되었고, 곧바로 조산원으로 가서 집사람과 아이의 상태를 들었다.
둘째 출산인데도 첫째(공진) 때와 달리 몹시 힘들게 출산한 듯싶었다. 하혈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만 먼저 근무처인 부산으로 내려가고, 집사람은 얼마간 몸조리를 더 한 후에 내려오기로 했다.
집사람은 조산원에서 며칠간 조리한 후, 큰집으로 옮겨 지냈다고 하며, (시)어머니께서 산후 뒷바라지를 해주셨다고 한다.
이렇게 범진이는 할아버지와 생일이 같게 되었고, 우연이지만 공진이의 생일도 나의 큰누나(공진에게는 큰고모)와 생일이 같다. 물론 음력 날짜 기준이다.
그때(공진이 출산)도 어머니께서 집사람의 산후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공진이 출산 때는 예비군 소집훈련을 마치는 날이었기에, 장비 반납 등을 감독한 후 늦게야 병원(산부인과)에 갔는데, 집사람은 이미 퇴원했다고 하기에 황당한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순산이었던 것에 비하면, 범진이 출산 때 고생한 것이 의외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는 첫째 출산 때가 힘들고, 둘째 출산 때는 처음보다 수월한 편이라고 들어왔기에 그런 것이다.
다음 주중에 범진이 생일이다. 이제 37세가 된다.
내 나이 37세 때 나는 한의대 본과 3학년이었다. 임상 각 과목의 공부를 하느라 엄청 바쁠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과 3사관학교 및 군대 시절, 그리고 결혼과 한의대 입학 등, 기억되는 것도, 추억 거리도 많지만, 내 생활의 다양한 삶과 경험은 한의원 개업(39세) 후에 이루어진 것이 더 많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범진아!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못지않게, 아니 너의 앞날에 훨씬 더 좋은 일들이 가득하고, 보람 있고 다양한 경험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나날이 되길 바란다.
2021년 5월 6일에 진료실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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