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조폭과 5·18단체 회장님

道雨 2021. 7. 14. 11:30

조폭과 5·18단체 회장님

 

 

“아니, 어떻게 5·18 단체 대표가 ‘조폭’ 출신일 수 있어?”

 

광주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져 9명이 목숨을 잃은 뒤, 문흥식 전 5·18구속부상자회 회장이 재개발 사업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터져 나온 질문이다.

1999년 폭력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던 문씨 판결문엔, 한 폭력조직의 행동대장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문씨는 “2심 재판에서 조폭 혐의가 삭제됐다. 절대로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문씨가 5·18을 전후해 폭력조직에서 실제로 활동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전두환씨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 등 평소 5·18 보도엔 무관심했던 보수언론들도 문씨가 5·18유공자가 된 사연에 의혹을 제기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건달’ ‘깡패’도 5·18유공자가 될 수 있다. 5·18 항쟁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도자기공·목공·새시공·석공·양화공·인쇄공 등으로 매우 다양했다. 계엄군의 무차별 학살에 대항해 총기를 들고나와 무장을 시작한 이들은 이들 기층 민중이었다.

대학생과 재야인사, 사회운동가 등이 처음 맞는 사태에 당황해 주춤할 때, 이들은 몸을 움직여 저항에 나섰다. 5·18 기동타격대로 활동하다가 구속된 시민군 30명 중 26명이 도시 빈민 출신인 게 대표적이다.

5·18 이후 이들 중 일부는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가 청송보호감호소에 강제 구금돼 있기도 했다.

 

5·18구속부상자회는 2019년 12월 ‘조폭 논란’에도 문씨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문씨 당선 이후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5·18 당시 연행·구금·체포된 3천여명이 참여하는 구속부상자회는 3단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회원들도 기가 센 편이다. 문씨는 조직 내부를 통합으로 이끄는 대신 독선적으로 운영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올해 5·18 3단체를 공법단체로 설립하는 ‘5·18민주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문씨가 이끄는 집행부에 반대하는 회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이 열리던 날, 광주지법 앞에서 양쪽은 멱살잡이까지 하며 충돌했다.

 

이런 갈등 와중에 건물 붕괴 참사가 터졌고, 재개발 사업에 관여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문씨는 미국으로 도피했다. 그 이후에도 양쪽은 집행부를 따로 꾸려 대립하며, 총회 개최 정당성을 두고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5·18 공법단체 설립은 5·18유공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올해 드디어 부상자회, 유족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3개 단체가 공법단체로 설립된다.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14개 단체처럼 회원 복지와 단체 운영을 위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3단체 모두 설립준비위원회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다. 공법단체 설립준비위원과 임원 선임 등을 상대방 그룹에서 독식하려고 한다는 의심 때문이다. 이번 파워게임에서 밀리면 한동안 단체 운영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절실한 것 같다.

 

5·18 3단체 회원들 스스로 이해관계를 조정해 해법을 찾을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최근 5·18구속부상자회 사무실에 양쪽 집행부 사람들이 충돌해 경찰이 출동했다고 한다. 문씨가 미국으로 도피한 뒤, 5·18 3단체와 5·18기념재단이 사과성명을 냈지만, 이후로도 분열하고 반목하는 행태는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5·18을 팔아 사익을 챙기려 하는 세력’ ‘공법단체를 조직적으로 장악해 노후를 보장받으려는 이들’에겐 죽어도 주도권을 내줄 수 없다는 생각이 양쪽 모두 확고하다.

 

일각에선 5·18 관련 법안을 개정해 3개 공법단체 설립준비위원회 위원들을 당사자들이 아닌 중립적 인사들로 선임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하지만 내부 갈등 조정 능력을 잃은 5·18단체에서 수용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래서 참 걱정스럽다.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나만 옳다고 믿는 ‘조폭적’ 사고 아래서 5·18단체 혁신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대하|호남제주데스크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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