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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장모, 오스템 직원, 해외 유학생까지…잔고증명 위조 시대

道雨 2022. 1. 17. 09:39

윤석열 장모, 오스템 직원, 해외 유학생까지…잔고증명 위조 시대

 

[뉴스AS] ‘포토샵 복붙’에 전통적 도장파기까지 수법도 다양
 
 
 
2013년 4월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장모 최아무개(75)씨 의뢰를 받은 김아무개씨는,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이용해, 100억18만5470원짜리 은행 잔고(잔액)증명서를 위조했다. 발행 책임자 서명은 은행 감사보고서에 있는 대표이사 서명을 따서 붙였다. 100억원이 넘는 거액을 써넣은 예금잔액란에는 진짜 은행 잔고증명서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복사방지용 투명 테이프까지 부착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최씨의 1심 판결문을 통해 드러난 예금 잔고증명서 위조 수법이다. 김씨는 이후에도 세 차례 더 같은 방식으로 최씨 잔고증명서를 위조했다. 최씨는 총 349억여원이 예치된 것처럼 위조된 증명서를 통해 땅을 사들였다. 최씨는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 등 혐의로 징역 1년, 김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 역시 잔고증명서 위조가 그 출발점이었다. 경찰은 회삿돈 221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이 회사 이아무개(45) 재무팀장이 법인 계좌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무팀 직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이씨 지시로 피디에프(PDF) 편집 프로그램으로 잔액 숫자를 바꿨다. 잔고증명서를 위조했기 때문에 회사가 거액의 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알 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잔고증명서는 은행 계좌에 돈이 얼마 만큼 있는지 증명하는 서류다. 주식회사 설립 및 증자, 해외 유학을 위한 재정증명, 각종 계약·허가 과정에서 잔고증명서를 요구한다.
이를 위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문서위조 범죄가 되지만, 통상 사기·횡령 등 다른 범죄의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16일 대법원 판결문검색시스템으로 검색한 결과, 최근 2년(2020~21) 간 잔고(잔액)증명서 위·변조로 형이 확정된 사건은 85건인데, 이 가운데 51건이 사기 또는 횡령 범죄와 연관됐다.
 
잔고증명서 위조가 흔해진 배경엔, 정교한 위조를 돕는 각종 편집 프로그램의 발달, 여기에 비대면 사회로의 빠른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기본적인 편집 기능만 알아도 굳이 ‘어둠의 전문가’에게 의뢰하지 않고도 위조가 가능하다. 잔고증명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이미지로 전달하는 경우도 많아 계약 상대방을 속이기 쉽다.
 
직장인 ㄱ씨는 2017~19년 지인 14명에게 “2~3배 수익을 내주겠다”며, 투자금 명목으로 10억원을 뜯어냈다. 일부 투자자가 돈을 돌려달라고 독촉했지만, ㄱ씨 통장에는 고작 5만1000원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ㄱ씨는 온라인뱅킹으로 발급받은 5만1000원짜리 잔고증명서를,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1만배 부풀린 5억원으로 둔갑시켰다. ㄱ씨는 위조한 증명서 이미지를 카카오톡으로 보내 사기 행각을 감추려 했다.
 
이윤우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요즘엔 카카오톡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대화를 하다 관련 증명서를 주고받는 경우가 잦다. 그렇다보니 잔고증명서를 캡처한 뒤 숫자를 덧붙이는 위조 방식이 많다”고 말했다.
 
도장을 직접 파는 전통적 위조 방식도 여전하다. 한 조합 이사장이었던 ㄴ씨는 2016~17년 조합비 14억원을 생활비 등 개인용도로 빼돌렸다. 횡령 정황이 포착돼 수사를 받게 되자, ㄴ씨는 직접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예금거래내역서를 위조했다. 은행 로고 이미지를 얹는 것은 물론, 해당 은행이 쓰는 특정 글꼴도 사용했다. 지역은행 지점장 명의 도장까지 파서 날인을 찍었지만, 경찰에게 덜미가 잡혔다.
 
증명서 위조와 같은 효과를 내는 ‘가장납입’도 심심치 않게 쓰인다. 잔고증명서가 필요한 사람의 계좌에 일시적으로 큰돈을 예치해 증명서를 발급한 뒤, 곧바로 돈을 회수하고 수수료를 받는 업체도 있다. 돈이 부족한 유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잔고증명서 위조에 당하지 않으려면, 증명서를 발급한 금융기관에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증명서 발급 지점이나 콜센터 등에 문의하면 된다. 케이비(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제3자가 잔고증명서에 적힌 발급번호 및 증서번호 등을 은행 누리집에 입력하면 곧바로 진위 여부를 알려주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종이 잔고증명서에는 위조 방지 홀로그램이 있다. 온라인 증명서에도 캡처를 막는 방식 등으로 위·변조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해당 금융기관에 증명서의 진위를 확인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법원 역시 위조 잔고증명서 사건에서 당사자의 확인 책임을 강조한다. 앞서 윤석열 후보 장모 최씨의 동업자에게 18억여원을 투자한 사업가 임아무개씨는 “위조된 잔고증명서에 속아 돈을 빌려줬다”며 최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잔고증명서는 발행일 당시 예금주의 예금액을 확인해주는 것이지, 타인에게 어떠한 권한을 부여하는 서류가 아니다. 임씨가 돈을 빌려주기 전에 실제로 최씨에게 이런 예금이 존재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었음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박수지 장예지 기자 suji@hani.co.kr
                  * 누리집에서 은행 예금잔액증명서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화면. 케이비(KB)국민은행 화면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