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화의 위기
“새벽 포격 소리에 잠에서 깨었고 아직 피난을 가지는 않았어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키이우에 있는 휴학 중인 제자가 보낸 이메일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도 한달이 지났다. 애초의 예상과 달리 수도는 함락되지 않았고, 러시아군은 고전을 겪고 있는 듯하다. 미국과 유럽은 신속하게 러시아에 대해 금융과 무역 관련 제재를 실시했고,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전쟁은 코로나19로부터 회복 중인 세계 경제에 물가를 높이고 경기를 후퇴시키는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을 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이 전쟁은 곡물과 에너지 가격의 급등, 그리고 국제무역의 단절과 공급망 마비 등을 통해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다. 또한 불확실성을 심화해 투자의 위축과 금융 상황의 악화를 가져올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 에너지 시장, 특히 유럽의 에너지 수입에서 중요한 지위를 지니고 있어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또한 니켈, 코발트, 팔라듐 등 배터리와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금속의 생산에도 러시아의 비중이 커서, 이들의 가격이 급등하고 공급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밀 수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어서 밀 가격이 급등했고, 특히 가난한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이 전쟁으로 2022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약 1%포인트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이 약 2.5%포인트나 더 높아질 전망이다.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화 시대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국제무역과 투자의 확대에 기초하여 발전된 세계화와 함께, 신흥 개발도상국들은 성장이 촉진되었고, 빈곤 인구는 크게 줄었으며, 선진국 소비자들은 값싼 수입품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급속한 금융세계화는 금융불안정과 위기를 낳았고,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하고, 불평등이 심화되어, 시민들의 불만과 포퓰리즘 정치가 나타나기도 했다.
세계화의 흐름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체되기 시작했고, 2016년 트럼프의 당선 이후 미-중 갈등과 보호무역으로 더욱 둔화되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공급망의 마비 앞에서, 각국은 비용 감축보다 안정적인 자국 내 공급망 확보를 위해 탈세계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팬데믹 직후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화의 행진에 또 다른 타격을 미치고 있다. 이제 패권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갈등이 세계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세계화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선은 역시 미국과 유럽 대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 권위주의 국가 사이의 대립이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이후 중국의 제조업 생산과 수출, 그리고 러시아의 에너지와 원자재 수출은 세계화의 중요한 기둥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들 국가는 세계 경제에 깊이 통합되었다.
서구는 세계화와 경제적 상호의존의 확대가 자유주의적 세계 경제질서를 확립하고, 각국의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며, 중국이나 러시아의 변화까지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권위주의 국가들이 더 늘어났고, 경제적으로도 세계화 대신 지역 내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대립하며 전략산업의 국내생산을 촉진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 통화로 원유 거래의 결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제 세계화가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고, 각국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세계 경제의 균열과 국제정치의 갈등 심화는 세계에 커다란 비용을 가져다줄 것으로 우려된다.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번영을 가로막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 군사적 대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마틴 울프는 재앙처럼 보이는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는 것은, 국제정치의 갈등으로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시대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번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세계화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 체제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평화를 추구하고, 개방과 안보를 조화롭게 관리하는 새로운 세계화를 위한 노력일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내 학생은 얼마 전 고향으로 피난을 왔다고 연락해 왔다. 하루빨리 그를 다시 만나서 가르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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