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제왕적 당선자’의 또 다른 구중궁궐

道雨 2022. 3. 24. 10:05

‘제왕적 당선자’의 또 다른 구중궁궐

 

정권교체기의 정부 인수인계 작업은 힘들 수밖에 없지만, 이번처럼 스스로 문제를 키우는 인수위는 처음 보는 거 같다.

이명박 인수위 때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오륀지’ 발언이 실소를 자아냈지만, 적어도 국정 운영에 대한 기대치까지 낮추지는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인수위’는 어떤가.

지난 21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윤 당선자가 국정 운영을 잘할 것’이란 기대감은 49.2%로, 한주 만에 3.5%포인트 떨어졌다. 출범도 하기 전에 지지율이 50%를 밑도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청와대 이전에 관한 윤 당선자의 고집이 국민 기대감을 낮춘 결정적 요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지난 대선 결과가 말해주듯이 정치적 분열과 갈등이 너무 심해서 이것이 윤 당선자 지지율에 그대로 투영된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윤 당선자 스스로 약속했듯이, 모든 국민을 포용하려 애쓰고 반대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 비리로 구속된 자기편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라고 요구하는 걸 ‘국민 통합’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으로,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윤석열 당선자는 용산으로 급히 대통령실을 이전하려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 ‘제왕적 문화’에 젖어들지 모른다는 두려움, 어찌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구중궁궐’이란 단어에 얽매여, 해방 이후 청와대에 쌓인 전직 대통령들의 유산이 대통령실 기능을 어떻게 확장하고 보완해왔는지 전혀 보지 못하는 듯하다. ‘제왕적 대통령’을 비난하지만, 정작 자신이 ‘제왕적 당선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2003년 문을 연 청와대 상황실이 대표적이다. 이 상황실은 청와대 비서동 부근의 지하벙커에 만들어졌다.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 공격에 대비해 마련한 것이다. 2000파운드 폭탄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었다. 오랫동안 버려졌던 벙커가 있었기에 첨단 상황실을 훨씬 적은 예산으로 만들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실에선 군·경찰·소방본부 등 22개 기관의 주요 정보가 실시간 취합되지만, 곧 문을 닫아야 한다.

용산 국방부 상황실을 새로 활용한다지만, 여기엔 군 관련 정보만 들어올 뿐이다.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순 있겠지만, 그 기간 동안 국가위기 컨트롤타워로서 대통령실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사이에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50일 만에 집무실 책상과 캐비닛은 옮길 수 있을지 모르나, 대통령의 긴박한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수십년간 구축해온 경호·군사·지휘 시설을, 그렇게 단기간에 옮기는 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믿음으로 사안을 판단하려 한다. 권력자의 오만은 여기서 싹튼다. 박근혜 대통령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세월호 7시간 공백’이 그런 경우다. 그날 박 대통령은 본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날뿐 아니라 외부 행사가 없는 1주일에 사나흘은 관저에서 혼자 업무를 봤다. 왜 그랬을까.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 본관엔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함께 있었다. 어린 시절 그걸 보면서 자란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가 곧 집무실이란 인식을 가졌던 게 아닐까.

 

많은 이들이 윤 당선자에게 우려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건, 평생 누군가를 수사하는 검사로만 살아온 경력 때문이다. 가식적이란 비난을 받긴 해도 ‘국민과 여론’을 앞세우는 정치인으로서 경험이 없다. 그런 게 오히려 솔직함으로 어필해서 대선 승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정 운영은 검찰 수사와는 다르다. 일단 목표를 정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범죄 혐의를 입증하려 애쓰는 수사와 달리, 정치는 국민 뜻에 따라 때로 물러서고 때론 멀리 돌아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

‘광화문 집무실’이 어렵다는 걸 깨닫고 주저없이 ‘용산’으로 방향을 튼 것은, 애초 수사에서 진전이 없자 별건 수사로 피의자를 옥죄는 검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청와대를 구중궁궐로 만든 건 바로 사람이다. 지금 인수위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집무실 이전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걱정을 솔직하게 전달하기는커녕, 당선자의 굳은 의지를 칭송하고 “반대는 곧 대선 불복”이라며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윤핵관’들로 넘쳐난다.

이렇게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선 청와대를 용산 아니라 강남 한복판으로 옮겨도 구중궁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제왕의 독선’은 그런 환경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라 결국에는 대통령의 마음을 잠식하고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다.

 

[ 박찬수 기자 ]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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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핵관’ 권성동의 안하무인, 윤 당선자가 제동 걸어야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한명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23일 또 다시 상식 밖의 발언을 늘어놨다. 권 의원은 일주일 전쯤에도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발언을 해 여론의 비판을 받았는데,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권 의원은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청와대 이전 공약은 문재인 대통령이 두 번이나 공약했던 사항인데 실천을 못 했다. 왜 그렇겠냐. 청와대 들어가 보니까 너무 좋은 거다. 권력의 달콤함에 포기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근거도 없이 현직 대통령을 모욕한 것이다. 오만하고 방약무인한 태도다. 원활한 정권 인수인계를 위해 힘써야 할 당선자의 측근이 이처럼 신-구 권력의 갈등을 키우는 언행을 일삼으니, 국정을 제대로 펼치려 하기보다 권력 놀음에 취해 있는 게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윤 당선자가 추진하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불통과 독단으로 대다수 국민의 걱정과 비난을 사고 있다. 그런데도 권 의원은 여권의 비판에 대해 “이 정도 되면 대선 불복 아니겠냐. 결국은 민주당은 이 문제를 갖고 자신들의 지지세를 결집해서 지방선거에 이용하겠다는 뜻 아니겠냐”고 했다. 당선자의 무리수를 감싸기 위해 대선 불복 프레임까지 들고 나오는 건 어불성설이다.

권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도 다시 언급하며 “청와대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은 김경수(전 경남지사)나 기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할 민주당의 중요 인사, 선거법 위반 등으로 제한이 되어 있는 그런 인사에 대한 사면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자의 회동이 무산되는 과정에서도, 권 의원을 비롯한 ‘윤핵관’들이 이 전 대통령 사면을 미리 거론하고, 이를 문 대통령 측근인 김 전 지사 사면과 연계시키는 무례한 태도가 문제가 됐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이런 발언을 되풀이하는 처신이 경박하기 그지 없다.

 

권 의원은 ‘안철수 인수위원장 총리설’에 대해서도 “만약 안 위원장이 국무총리 생각이 있었다면 인수위원장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며 “너무 요직을 연속해서 맡는 것 자체가 너무 과도한 욕심을 부린 것으로 비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인데, 이 또한 주제넘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권 의원은 대선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발언도 한 바 있다.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면서,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중도하차시키려는 초법적인 발상을 드러낸 것이다. 법과 원칙을 무시한 채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퇴행적인 사고 방식이다.

핵심 측근의 이런 모습은 그대로 윤 당선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윤핵관이 윤 당선자의 심중을 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당선자뿐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윤 당선자는 측근들의 언행이 자신의 뜻과 같지 않다면 분명히 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 2022. 3. 24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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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몽진과 파천

 

 

 

 

같은 뜻을 지닌 몽진(蒙塵)과 파천(播遷)은 고귀하면서도 누추한 표현이다. 오직 임금에게만 쓸 수 있지만, 궁을 버리고 몸을 피할 수밖에 없는 딱한 행위를 이른다.

몽진은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의 시성 두보의 ‘춘망’(春望)에 나온다. 제아무리 임금이라도 피난길에는 먼지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몽진에는 시적 파토스가 서려 있다.

 

‘임금이 자리를 옮긴다’는 뜻의 파천은 상대적으로 덤덤하다. 하지만 실상은 한층 누추하다.

1896년 2월11일 이른 아침 궁녀 교자(가마) 두대가 경복궁 영추문을 빠져나갔다. 한대에 둘씩 ‘합승’하고 있었다. 교자는 1㎞ 남짓 떨어진 러시아공사관 앞에 멈춰섰다. 상궁 옷차림의 네 사람이 내렸다. 하지만 그중 둘은 여장 남자. 고종과 세자였다. 한해 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을 겪은 고종은 친러파의 부추김에 ‘아관파천’을 감행했다.

 

고종에 앞서 몽진했던 조선 임금으로 선조와 인조가 있다. 선조는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줄행랑쳤고, 인조는 이괄의 난부터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세차례나 먼짓길로 나섰다.

개중 고종의 파천이 도드라진다. 적군이 눈앞에 닥친 것도 아닌데, 신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궁녀 가마에 올랐다. 일본이 ‘체면’을 강조하며 환궁을 요구했으나, “불안과 공포가 도사린 궁보다 노국공관의 일실(一室 )이 안정하다 ”며 버텼다.

1년하고 9일을 농성하듯 머물던 고종은, 안팎의 압력에 밀려 1897년 2월25일 러시아공사관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향한 곳은 정궁(경복궁)이 아니라 러시아공사관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덕수궁이었다. 당시 이름은 ‘경운궁’. 말이 궁이지, 정치적 위상은 러시아공사관의 부속건물이었던 셈이다. 실제로는 애초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임시로 머문 행궁이었다.

 

윤석열 당선자가 위풍당당하게 대통령실을 국방부로 이전하겠다는데도 몽진과 파천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건, 그에게서 황망히 짐을 꾸리던 조선 임금들의 조바심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레토릭 말고는 눈 씻고 봐도 화급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막무가내 무리수를 두는 데서는 고종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통의동 당선자 집무실은 노국공관의 일실, 청와대 지하벙커는 덕수궁의 환유 같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