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노동조합, 이로우나 허하지 말라?

道雨 2022. 6. 22. 09:33

노동조합, 이로우나 허하지 말라?

 

자고 일어나면 마법처럼 숫자가 늘어났다. 주식 가격이 아니라 노동조합 얘기다.

1930년대 초 미국, 300만명 남짓했던 노조원 수는 눈부시게 늘어서 10년 만에 두배가 됐다. 1940년대에도 파죽지세는 계속돼 그 수가 1500만명에 이르렀다.

노조 홍보활동도 기세등등했는데, 그때 ‘낙양의 지가’를 올리던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공장에 가서 일한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노조 가입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의 이름은 더 크게 적혀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놓고 노조 가입을 ‘선동’했다.

 

시간이 흐르고 노조에 대한 세상 인심도 바뀌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앞장섰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노조 탓으로 몰아붙였던 그녀는, 노조 얘기만 나오면 말이 거칠어졌다.

“노조만 생각하면 입에 물고 있는 못을 내뱉게 된다”는 말로 유명하다. 못 박기를 빨리하려면 못 여러개를 입에 물었다 하나씩 뽑아서 못질을 해야 하는데, 옆에서 뭐라고 하든 못을 야물딱지게 물고 있어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못을 내뱉는 것은 그만큼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는 뜻이다. 공사장 십장 말투로 무장한 그녀의 ‘선동’ 속에 영국 노조조직률은 20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같은 시기,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비슷한 일을 했다. 말은 점잖았지만 행동은 거칠었다. 취임하자마자 파업을 진압하고 노조 지도자를 구속했다. ‘자유’를 유독 강조했지만, 그 자유에 노조의 ‘자유’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또 내 나라 노조에는 각박했지만 다른 나라 노조에는 각별했다. 당시 폴란드 공산정권이 ‘연대’노조를 잔인하게 진압하자 즉각 반응했다. “노조와 단체협상의 자유가 금지되는 순간, 자유는 소멸한다.” 정치적 편의성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임금과 노동시간을 협상하는 ‘소박한’ 단체 정도로 생각했던 노조가 본의 아니게 경제와 사회를 흔들어대는 ‘무지막지한’ 조직으로 격상되자, 사실관계를 따져보자는 움직임도 커졌다.

우선, 노조로 인한 임금인상 효과는 얼마인가? 연구 결과는 제각각이다. 10%도 안 된다는 연구도, 30%가 넘는다는 연구도 있다. 국가 간 편차도 크다. 하지만 임금인상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는 거의 동의한다. 노조가 당면한 목적은 달성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노조를 둘러싼 논쟁이 포괄적인지라 더 따져야 할 것들이 있다. 예컨대, 노조원 임금 인상은 다른 노동자에게도 좋은 소식일까? 여기서도 연구 결과는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딱히 나쁘진 않다” 정도로 요약된다. 사촌이 논을 사더라도 적어도 내 배는 아프지 않다는 것. 게다가 노조 조직률이 높을수록 임금 및 소득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조에 까칠한 편인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 점은 인정한다.

또 하나 따져볼 것은 기업 비용 측면이다. 먹고살기 위한 돈인 임금을 두고 ‘비용’이라는 딱지를 붙이냐는 항변도 있겠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시장경제의 현실이다. 임금이 늘면, 노동 비용도 그 정도 늘어난다. 하지만 계산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노조 덕분에 노동자가 굳이 좋은 조건을 찾아 일자리를 옮기려 하지 않게 되면, 노동 생산성이 늘어날 수 있다. 또 노조 ‘압력’ 때문에 기업이 생산과정과 제품 혁신을 서두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기업 전체의 생산성이 향상돼 임금인상으로 인해 기업이 감당해야 할 순비용은 적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순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

 

그야말로 ‘핫’한 주제인 만큼 지난 30년 동안 연구가 쏟아졌다. 결과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노조 천국’이라 불리는 노르웨이에서 진행한 방대한 연구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이 10% 늘어나면 기업 생산성도 1% 남짓 증가하고, 여기에 단체협약이 추가되면 기업 생산성은 무려 13.5% 상승한다. 하지만 노조의 생산성 효과는 국가와 산업에 따라 확연히 갈린다. 노조 존재 여부보다는 실효성 있는 단체협상이 더 중요하다는 노르웨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종합하자면, 노조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롭다. 야박하게 평가해도, 노조의 영향은 중립적이거나 적어도 해롭지는 않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전달하는 노동 기본권인 노조가 사회경제적 이익도 가져다준다는 뜻이다.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중대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이렇게 널리 이롭다면, 노조가 비 오는 날 버섯 자라듯이 퍼져나가야 할 텐데, 실상은 그 반대다. 최근 30년 노조 조직률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얼마 전 나온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세계 노조 조직률은 16.8%다. 2008년에 20.0%에서 11년 새 3.2%포인트 낮아졌다. 이런 하향 추세가 당장 바뀔 것 같지 않다.

왜 그럴까?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니, 이유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미국과 독일 노조 사정이 케냐와 인도네시아 노조와 같을 리 없다. 그래도 공통요인 몇가지를 꼽아보자.

우선, 노조가 모든 이에게 두루 이롭지는 않은데, 기업 이윤이 대표적이다. 최근 실증연구는 노조가 기업 이윤율을 낮춘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특히 독과점 기업에서 두드러진다. 노조의 수백만가지 긍정적 영향을 간단히 무시하고, 기업이 노조를 환영하지 않는 큰 이유다.

물론 경제적인 타산을 넘어서 노조가 경영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을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기업도 있다.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는 넘치고, 지금도 여전하다. 이런 계산과 정서가 법적·제도적 제약으로 구체화하면 노조 설립과 활동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노동자 내부에서 나온다. 노조 환경이 어려워지고 노조원이 줄면 좀 더 강고한 연대정책을 펴야 옳지만, 또 그만큼 협소한 방어책을 선택할 위험도 커진다. 제 식구를 먼저 살피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남의 희생에는 둔감해진다. 노조가 “내부자”가 되거나 포섭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나의 노조는 필요하지만, 너의 노조는 불편하다는 생각마저 생긴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 생각은 거침없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노조 조직률의 지속적인 하락이다. 물론 그 대부분은 구조적 요인 때문이지만, 적지 않은 부분은 ‘선택’의 결과다.

 

이런저런 이유로 노조의 현주소는 “이로우나 허하지 말라”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노조의 대통령으로 자처하고 나섰다. “모든 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할 자격이 있다”고 선언했다. 대단한 변화지만, 내가 당장 가입하겠다고 소매 걷고 나선 루스벨트 대통령과는 온도 차가 있다. 이 또한 녹록지 않은 오늘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상헌 |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