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조중동 프레임? 이제 제발 그만!

道雨 2022. 6. 20. 10:15

조중동 프레임? 이제 제발 그만!

 

① “문재인 정부 부동산 가격 폭등은 조중동의 프레임이다.”(2021년 4월 3일)

② “재보궐선거 패배 이틀 이후 여당 초선 의원들이 ‘반성문’을 발표했는데 지지층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 있다. 지지층이 얘기하는 것은 듣지 않고, 조중동 프레임에 그대로 말려들고 있어서다.”(2021년 4월 10일)

③ “(조중동에서 떠드는 것과) 반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하지 말라는 거면 해야 하는 거고, 하라고 하면 안 하면 되는 것이라는 쉬운 기준이 있다. 조선일보에서 비판하면 ‘우리가 일 잘하고 있구나’ 칭찬하면 ‘문제가 있구나’ (라고 생각해야 한다).”(2022년 4월 1일)

④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치고 나가야 되는 거다. 또 여기에서 조중동 프레임에 걸려서 눈치 보고 중도층 운운하면서 폼 나는 정당, 우아한 정당, 웰빙 정당으로 갈 거냐. 그래서 망한 거 아니냐.”(2022년 6월 10일)

⑤ “여야 일부 국회의원들이 수구 언론의 작전대로 강경파 운운하며 ‘처럼회 해체’를 거론한다… 앞으로 수구 언론과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잘 살펴야 한다.”(2022년 6월 15일)

“수구 언론이 (만든) 프레임과 이간질에 놀아나지 말자.”(앞의 주장에 대한 지지 댓글)

 

이상의 다섯가지 사례는 더불어민주당 진영에서 나온 ‘조중동 프레임’의 대표적인 용례다. 개인을 비판하려는 게 목적은 아닌지라 발언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분들이다. 프레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간곡한 호소를 하기 위해 인용한 것임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프레임은 아주 유익한 개념이긴 한데, 한국에선 오·남용이 워낙 심해 집단적 성찰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언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프레임 개념의 국내 유행에 결정적 기여를 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미국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2004)의 저자인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원망스러울 정도이다. 레이코프가 진보주의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쓰는 쪽은 진보이니 말이다.

레이코프는 <도덕의 정치>에서 “다른 많은 진보주의자들처럼 나도 한때는 보수주의자들을 천박하고, 감정이 메마르거나 이기적이며, 부유한 사람들의 도구이거나, 혹은 철저한 파시스트들일 뿐이라고 얕잡아 생각했었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실 한국의 진보에 가장 필요한 건 이런 종류의 성찰이다. 즉, 보수주의자들을 경멸하고 혐오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다. 민심의 바다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찌된 게 민주당과 지지자들은 레이코프의 그런 고언은 싹 무시하고, ‘보수 폄하’와 ‘보수 모욕’으로 자신들의 진보성을 과시하려는 이상한 병에 걸려 있다. 자신들의 문제를 지적하면 이구동성으로 내놓는 모범답안이 바로 ‘조중동 프레임’이란 말이다. 그 한마디면 끝이다. 마치 조중동의 주장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 진보와 개혁의 본질이라도 되는 양 여기는 ‘조중동 숭배증’에 빠져 있다.

조중동 숭배증’의 죄악은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게으름, 죽어도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 같은 진영 내의 경쟁자를 악마화 수법으로 손쉽게 제압하려는 탐욕, 그리고 자신이 비이성적으로 보여도 전혀 개의치 않는 무감각에 있다.누가 더 조중동을 악마화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진보성을 더 찬란하게 과시할 수 있다고 믿으며, 실제로 그런 믿음이 통하는 민주당의 풍토는 정치를 ‘강성 팬덤 동원의 기술’로 전락시킨다.

강성 지지자들 위주로 단기적인 승리를 누리려는 의원들이 득세하는 정당은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대선·지방선거 패배라는 멸망의 전조를 보고서도 여전히 ‘조중동 프레임’ 탓만 하면 어쩌자는 건가?

강성 지지자들은 진보 언론마저 사실상 장악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걸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는가? 민주당 스스로 사과했던 주요 문제들에 대해 지난 5년간 누가 더 많은 비판을 했는가? 조중동인가, 진보 언론인가? 조중동이었다!

자본주의 시장의 메커니즘을 깔보면 안 된다. 조중동은 바보가 아니다. 정략적으로 민주당을 공격할 때에도 중도층 독자를 염두에 둔 비판을 한다. 비판의 동기와 방식은 불쾌할망정 귀담아들을 게 있다는 뜻이다. 이 주장도 ‘조중동 프레임’에 놀아난 것인가? “이제 제발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다.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