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이념 집착적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 뚜렷한 방향·구체성 없고 검토만

道雨 2022. 6. 23. 09:19

뚜렷한 방향·구체성 없고 검토만

 

이념 집착적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

 

지난 16일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되었다. 그런데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했다기보다는 그 작업을 위한 착수 보고서 같아 보였다.

 

예를 들어, 기업 투자는 규제개혁을 통해 늘리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가 뭔지 특정하지 못했다. ‘경제규제혁신 티에프’를 신설해 개혁 대상 규제를 발굴하겠다(경제정책 방향 6쪽), 미래 지향적 노동시장 구축을 위한 과제는 ‘경사노위’ 내 논의 체계를 마련해 발굴한다(17쪽)는 식이었다. 교육 시스템이 첨단 분야 인력 양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저 ‘대학규제위원회’(가칭)를 신설해 신규 과제를 발굴한다(18쪽)는 게 대책이었다.

인구 구조 변화는 ‘인구위기대응 티에프’를 기재부에 설치하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통해 대응하며(24쪽), 부동산은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시장의 정상화를 추진한다(39쪽)는 것인데, 이걸 경제정책 방향이라 할 수는 없다.

방향을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고 ‘검토’한다는 대목도 무려 24군데에서 펼쳐진다. 5년 전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는 ‘검토’한다는 대목이 3군데에 한정되었다.

대선 뒤 새 정부 출범까지 2개월의 시간이 있었고, 인수위가 꾸려져 활동했음에도 정책 방향의 구체성이 부족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새 정부 수뇌부가 지닌 이념적 집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좌우 이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이념적 가치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보인다는 뜻이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기반한 경제운용’의 내용을 보면, 첫째, 이제까지의 경제운용은 정부 중심이어서 이를 민간·기업·시장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며, 둘째, 규제가 민간의 자유·창의를 제약하고 있으니 이를 완화해야 하고, 셋째, 정부는 과도한 시장 개입을 지양하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4쪽 비전).

이 정도의 문제의식이라면 20세기 초반 날것의 자본주의에서나 볼 수 있는 최소 정부와 거대한 시장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자본주의는 대공황과 2차 대전, 그리고 세계화와 양극화를 겪으며 정부-시장 관계를 진화시켜왔다.

우선 이전 정부의 경제운용을 정부 중심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정부 들어 흔히 과거의 정부 중심 경제운용 사례로 언급되는 재정지원 직접일자리 예산은, 2021년의 경우 본예산 558.5조원 중 1%도 되지 않는 3조1천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일자리 예산 31조원의 대부분은 실업급여와 고용지원금, 창업 지원에 사용되었다. 대표적 재정일자리사업인 노인일자리사업은 민간 일자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노인일자리사업 대상은 민간 시장에서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평균 74.5살의 저소득층 노인이다. 이 사업에 참여한 덕분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 절약한 건강보험 예산이 무려 7000억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업은 효율적이기까지 하다.

정부 규제란 공익을 위해 민간이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부가 규정하는 것이다. 정부는 규제 이외에도 세제, 공기업 운용 등의 방식으로 시장 기반을 조성하고, 공익사업(가스, 수도, 전기, 전화 등)과 금융, 교통 등 자연독점 산업의 폐해를 줄이며, 부정적 외부 효과(환경오염 등)를 최소화하여 국리민복을 키우기 위해 그 역할을 진화시켜왔다. 규제완화가 곧 시장 활력 제고일 수는 없다. 큰 정부를 가진 북유럽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확장되어 있고, 기업 생산성도 높다는 것은 세계경제포럼을 통해 공유된 사실이다.

한 나라의 경제적 번영은 기업 전략과 정부 정책이 시너지 효과를 낼 때 극대화한다. 특히 혁신을 위한 정부 역할은 중요하다. 구글의 핵심 경쟁력인 검색 알고리즘 페이지랭크는 미국 정부의 1994년 ‘디지털 도서관 선도’ 프로젝트 덕분에 개발될 수 있었다.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에 탑재된 12가지 핵심기술(중앙처리장치, 리튬이온전지, 디지털 신호 처리, 인터넷, 위성위치확인시스템, 멀티 터치스크린 등)도 그러하다.

정부와 민간·기업·시장을 대립시켜 사고하며,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 민간경제의 활력을 제고할 것이라는, 비현실적이고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저성장과 인플레이션에 대처할 구체적인 경제정책을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김용기 | 아주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