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거대 위기와 새로운 정치

道雨 2022. 7. 6. 09:48

거대 위기와 새로운 정치

 

지금 우리는 역사상 초유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어느 시대를 돌아보아도 오늘날처럼 인류 전체가 생사의 벼랑에 내몰린 적은 없었다.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가 인간의 삶을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위협하고 있다. ‘22세기는 오지 않는다’, ‘지금 사는 인류가 최후의 인류가 될 것이다’라는 묵시록적 경고가 ‘2050 거주 불능 지구’라는 더욱 암울한 전망에 짓눌리고 있다. 생태의 위기다.

 

한반도에서도 위기의 조짐들이 쌓여가고 있다. 오늘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내일의 한반도 전쟁을 경고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과 러시아 갈등의 대리전이듯, 미국과 중국 사이에 고조되는 긴장은 ‘한반도 전쟁’으로 폭발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한반도는 언제나 미국·일본 등 해양세력(sea power)과 중국·러시아 등 대륙세력(land power)이 충돌하는 전쟁터였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50년 ‘미중전쟁’(한국전쟁)이 모두 한반도에서 터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제2차 미중전쟁’의 위협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대를 살고 있다. 평화의 위기다.

 

한국 사회도 파열 직전에 있다. 작년에 영국 킹스칼리지와 입소스가 공동 수행한 ‘문화전쟁’ 조사는 충격적이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사회집단 간 갈등이 가장 심각한 ‘갈등공화국’으로 공인됐다. 이 조사에서 한국의 갈등 수준은 무려 7개 분야(빈부, 이념, 정당, 종교, 성별, 세대, 학력)에서 조사 대상 28개국 중 1위에 올랐다. 특히 빈부갈등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이 낳은 결과다. 지난해 말 발표된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의 불평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회의 위기다.

한국인의 의식도 심히 병들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세계 100여개국 사회과학자들이 모여 6년(혹은 4년)마다 조사 발표하는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를 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조사에서 ‘소득이 더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더 차이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물음에, 한국인은 24%가 ‘평등’을 선호한다고 답했지만, ‘불평등’을 선호한다고 답한 이는 무려 59%였다. 한국은 불평등 선호도 세계 최고이자, 불평등 선호가 절반을 넘은 유일한 나라다. 이런 승자독식 문화는 무엇보다도 극단적인 경쟁교육과 왜곡된 능력주의에 근본 원인이 있다. 교육의 위기다.

이처럼 우리는 거대한 위기가 중첩된 복합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생태·국가·사회·교육의 위기가 우리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위협하고 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이런 거대한 규모의 다층적 위기에 휩싸인 적은 없었다.

새로운 위기는 새로운 대응을 요구한다. 초유의 거대 복합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다. 낡은 정치가 만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기존 정치로는 다가올 위기에 전혀 대처할 수 없다. 현재의 여당은 전통적인 수구보수세력으로 그 퇴행성과 시대착오성이 극단적인 상태이며, 거대 야당 또한 그 무능과 무비전이 참담한 수준이다.

새로운 정치는 거대 위기에 대응할 의지와 비전과 능력을 갖춘 세력의 정치여야 한다. 생태를 중시하고, 평화를 지향하며, 정의를 추구하고,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정치다. 우리도 이제 생태적·평화적·사회적·민주적 가치를 지향하는 제3의 정당을 가질 때가 됐다.

새로운 정당은 해방 이후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기득권 양당 체제의 청산을 바라는 모든 정치세력의 연합체가 돼야 한다. 정의당, 진보당, 녹색당, 노동당 등 모든 진보정당, 민주당 내 진보정파, 노조와 시민단체, 청년/사회단체 등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모든 세력이 새로운 깃발 아래 결집해야 한다. 엄중한 위기는 엄중한 대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22세기에도 지구에서 살아남길 바란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 없이 살아가길 원한다면, 서로 도우며 함께 행복하길 바란다면, 선한 품성의 존엄한 인간이 되길 원한다면, 이제 정치를 바꿔야 한다.

시대의 요구는 분명하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지난 세기 우리는 온 세계가 감탄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뤘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물적 조건은 이미 갖춰졌다. 이제 이 토대 위에 새로운 정치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야 한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