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폼페이오의 ‘중국 훼방론’

道雨 2022. 7. 25. 10:07

폼페이오의 ‘중국 훼방론’

 

 

북한의 핵미사일 행보가 가파르다. 18회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7차 핵실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에 따른 핵 교리의 결정적 변화다. 전통적인 응징억지 전략에 더해 전술핵 선제 사용을 공식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21일부터 김정은 총비서의 주재로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8기 3차 확대회의에서 이뤄진 “전선부대들의 작전임무 추가 확정 및 작전계획 수정”은 이러한 구체화 작업을 강력히 시사한다.

 

한마디로 이는 지난 30년간 이어져온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이 무위로 끝났음을 의미한다.

“2006년까지만 해도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핵 보유를 막는 데 실패했다. 이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적 실패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얼마 전 남긴 탄식 어린 소회다. 관련국 모두의 집단 실패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중·러는 미국을 탓하는 부질없는 공방이 계속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는 중국 책임론의 대표주자다. 7월7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김정은은 우리가 제시한 길이 올바른 나아갈 길이라 믿었지만, 사실상 시진핑이 그들을 움직이고 있었다”며, 시진핑 주석과 중국공산당이 북한의 비핵화를 방해했다는 주장을 폈다. 북한을 완충국가로 계속 남아 있게 하는 동시에, 북한 핵 카드를 이용해 미국의 국력을 분산하고, 북-미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대미 견제정책이 중국의 본심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를 중국공산당 통치에 순종적인 속국으로 만드는 데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 그는 “강력한 제재가 김정은이 진지한 비핵화 대화에 나서도록 진정한 압력을 가했다”고 자평했다.

 

이렇듯 도발적인 ‘중국 훼방론’에 대해, 중국 쪽 책임 있는 인사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중국의 국익에도 반하며, 6자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통해 북의 비핵화를 위해 미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는 반박이다. 북한 특유의 자주외교 노선을 고려할 때, 베이징의 대북 영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진핑 주석의 전화 한통으로 김정은 총비서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서구식 관점은, 북-중 관계의 역사적 특성에 대한 무지를 나타낸다. 평양이 워싱턴에 까다로운 상대이듯, 베이징에도 ‘언제나 제멋대로 구는’ 어려운 상대다. 폼페이오의 주장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오류를 고스란히 반복한다.

 

중국이 대미 견제를 위해 북핵 카드를 악용하고 있다는 추정 또한, 미국이 대중국 견제를 위해 북핵 문제를 악화하고 있다는 주장의 정확한 대칭형이다. 그러나 핵무장한 북한이 미국에 심각한 안보 리스크이듯, 중국에도 더할 나위 없는 불안정 요인일 수밖에 없다.

중국 쪽 인사들은 베이징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의 외교적 타결을 주장해온 배경에 이러한 계산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미국과의 협력 또한 이러한 자국 이익에 기반한 외교 목표 아래 이뤄졌다는 것이다.

 

북한을 완충지대로 보는 폼페이오의 관점 또한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고, 베이징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줄곧 지지해왔으므로 미국과 북한 사이를 이간질할 이유도 없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14억 인구 통치하기도 힘든 중국이 북한을 속국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폼페이오의 주장을 전형적인 ‘중국공산당 악마화 프레임’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근거다.

 

거꾸로 중국 쪽 인사들은 폼페이오의 제재 만능론이야말로 북핵 문제 해결을 망친 핵심 이유라고 반박한다. 2018년 김정은 총비서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선 것은, 제재라는 압박 때문이 아니라, 트럼프가 김정은을 인정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핵·미사일 시험과 한·미 연합훈련의 동시 중단(쌍중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병행 추진(쌍궤병행), 점진적 동시교환 원칙에 기초한 외교 협상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진단하면서, 미국의 ‘선 해체 후 보상’ 프레임이나 ‘제재 일변도 접근 방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렇듯 폼페이오와 중국 쪽 인사들의 견해는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베이징과의 협력 없이 북핵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사실이다.

차기 대선후보를 꿈꾸는 폼페이오 같은 거물 정치인들이 이를 무시하고, 음모론에 가까운 중국 책임론을 반복한다면, 북핵 문제 타결을 위한 미-중 협력은 불가능해 보인다.

 

 

 

 

문정인|세종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