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스리랑카 경제위기는 전염될까

道雨 2022. 7. 22. 10:18

스리랑카 경제위기는 전염될까

 

 

독립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스리랑카 경제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반정부 시위 격화에 시위대가 관저로 몰려오자, 고타바야 라자팍사(73) 전 대통령은 9일 군용기를 타고 국외로 도피했다. 먼저 몰디브로 갔다가, 다시 싱가포르로 도피한 뒤인 14일에야 이메일로 사직서를 냈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지명된 라닐 위크레마싱헤(73) 총리는 대통령 사직서 제출 엿새 뒤인 20일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위크레마싱헤는 총리를 6차례나 지낸 베테랑 정치인이지만, 국내 정치 안정과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협상이라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또 시위대는 그를 대표적 구체제 인물로 보고 사임을 요구하고 있어, 스리랑카 위기가 해소되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스리랑카 경제위기 1차적 원인은 라자팍사 가문의 20년 가까운 족벌정치라는 내부적 요인이다. 고타바야의 형인 마힌다는 2004년 총리에 오르면서 중앙 정계의 중심에 섰다. 2005년 대통령에 당선된 마힌다는 북부 타밀족 반군과 내전에서 강경 진압 정책을 폈다.

2009년 마힌다 정부는 경비행기로 무장한 공군력까지 보유해 한때 세계 최강의 반군이라고 꼽혔던 타밀족 반군 ‘타밀일람해방호랑이’(LTTE)를 패퇴시켰다. 당시 스리랑카 정부 발표에 따르면, 타밀일람해방호랑이 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은 구급차를 타고 교전지역을 빠져나가려다 정부군 특수부대 총격을 받아 숨졌다.

마힌다 당시 대통령과 국방부 차관이었던 고타바야는, 26년간 계속된 내전을 끝내고 다수 싱할라족의 영웅이 됐고, 라자팍사 가문의 족벌정치가 본격화됐다.

 

스리랑카 정부는 내전 종료를 계기로, 가문의 근거지인 남부 함반토타의 항만 개발을 비롯해 여러 대규모 사회기반시설을 거액의 외채를 끌어들여 시행했다. 스리랑카 경제는 이전부터 수출은 차·고무·코코넛 같은 일부 상품에 한정되어 있고, 다른 상품들은 수입 의존도가 높아, 오랫동안 재정적자에 시달려왔다. 내전이 끝난 뒤 경제성이 부족한 대규모 사업 시행으로 부담이 커졌다.

2019년 말 대통령에 당선된 고타바야는 국가 경제 상황에 맞지 않는 세금감면과 같은 정책을 시행해 경제를 더 악화시켰고,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외부적 충격까지 닥쳐왔다. 스리랑카의 주요 수입원인 관광업 수입과 노동자 국외 송금이 급감했다.

올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치자, 스리랑카 정부는 연료와 의약품 등 필수재를 수입할 돈마저 부족해졌다.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 아시아 국가가 됐다.

 

 

경제위기가 스리랑카뿐 아니라 다른 신흥국들로도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신흥국 통화가치가 대폭 하락하는 현상은, 스리랑카뿐 아니라 다른 신흥국에도 공통되는 외부적 충격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이달 초 디폴트 위험이 있는 신흥국으로 남미 엘살바도르, 아프리카 가나·이집트·튀니지, 아시아 파키스탄을 들었다.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엘살바도르는 보유 가상자산 가치 하락 등으로 재정이 악화했고, 가나·튀니지·이집트는 외환보유고가 적다. 파키스탄도 지난달 아산 이크발 기획개발부 장관이 ‘마시는 차 수입에 많은 돈을 쓰니 국민이 일상에서 차 소비를 줄여달라’고 발언할 만큼 외화보유액 부족이 심각하다. 라오스도 연료 부족과 생필품 가격 상승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신흥국을 중심으로 세계에 어른거리고 있다.

 

 

 

조기원 | 국제뉴스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