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국민의힘 코미디’의 본질, 충성 경쟁은 필패

道雨 2022. 9. 5. 17:58

‘국민의힘 코미디’의 본질, 충성 경쟁은 필패

 

 

* 지난 7월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질문 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암초 만난 ‘도로 권성동’ 비대위, 이런 코미디가 없다’. 

 

<한겨레> 8월30일치 사설 제목이다.

 

그런데 사설 내용은 웃기기보다는 집권여당의 한심한 수준에 대한 분노와 울화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다.

이게 어떻게 코미디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정치가 늘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그렇게 심각하게 살다간 혈압이 치솟아 스스로 수명을 단축할 수 있다. 그러니 차라리 코미디로 이해하자는 무언의 배려가 담긴 사설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그렇게 보는 게 좋겠다. 나 역시 언제부턴가 정치를 그런 자세로 보기 시작했는데, 좋은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나의 건강을 돌보면서 냉정한 공평무사와 크게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갖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도로 권성동’ 비대위라고 하는 코미디, 즉 ‘국민의힘 코미디’의 본질도 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국민의힘 코미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그건 대통령 윤석열이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한 윤석열과 이 메시지 노출에 책임이 있는 그의 친구 권성동이 합동으로 저지른 ‘7·26 자해 사건’은, 이들이 자신이 맡은 공적 역할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렇기 때문에 그로 인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책임의식도 없거나 약했을 것이다. 또 그래서 “새 비대위 말고 대안 있나”, “당이 중지를 모아 내린 결론이면 존중해야 한다” 같은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코 큰소리를 쳐선 안 될 사람들이 큰소리를 치면서 해법을 제시하고, 그걸 힘으로 밀어붙이는 코미디가 연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부나마 우리 자신, 즉 평범한 유권자들에게도 있다. 그건 바로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그에 따른 추종이다.

 

정치학자 강원택은 “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적폐 청산’을 추진해왔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모든 적폐의 근원은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였다”고 했다. 

<한겨레> 정치팀장 김태규도 “5년 만에 한번씩 ‘철인’을 기대하며 대통령을 뽑아놓고 실망하고, 또 베팅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며 “전지전능할 수 없는 ‘인간’에게 변치 않는 유능함만을 강요하는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는 이제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역사적 실험으로 확인된 게 아닐까”라고 했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매우 제한적인데다, 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아무 일도 못 한 채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반론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여당과 지지자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권력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다. 이런 추종은 내부 비판에 대한 탄압, 그리고 오류의 교정 가능성의 박탈로 이어짐으로써 대통령과 정권의 실패를 초래한다.

 

이는 충분히 확인된 사실인 것 같은데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 정치의 영원한 풍경이다. 왜 그럴까?

 

미국 정치학자 크리스토퍼 에이컨은 “정책의 선호도나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집단과 정당에 대한 충성심이 민주정치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사항이다”라고 했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도 “정당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은, 이념적 헌신이라기보다는 부족적 헌신이고, 그것이 정당 양극화라는 맥락의 핵심 사항이다”라며 “정당 부족주의를 점점 강조하면서 유권자들의 대통령 후보 자질 평가는 점점 더 정당 충성심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말에 답이 있다. 충성심을 신성하게 여기는 부족주의 정서는 정치인에겐 강력한 지지 기반을, 지지자들에겐 정치 참여의 보람과 기쁨을 준다. 충성심에 매몰되면 중도파 유권자들의 정서를 외면함으로써 정치적 패배를 당하지만, 이를 개의치 않거나 깨닫지 못할 정도로 부족주의가 제공하는 열매는 너무도 달콤하다.

 

 

야당인 민주당은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비난과 조롱을 퍼붓고 있지만, 부족주의 문화에선 한 수 위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재명의 득표율은 77.77%였는데, 국민의힘에서 이런 쏠림이 가능할까?

민주당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막기 위해 여러 겹의 ‘방탄’ 장치를 마련했는데, 국민의힘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일사불란한 부족주의를 부러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내부 반란을 빨리 진압해야 대통령·정당 지지율이 오를 거라는 착각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윤석열에게 표를 준 유권자 중엔 정치권의 ‘내로남불’과 ‘후안무치’를 더는 보고 싶지 않은 소망을 품은 이들이 많았을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