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속이거나 속거나

道雨 2022. 9. 14. 10:09

속이거나 속거나

 

 

 

 

개인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뻔한 사실은 적절한 선에서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사실을 부인하고 비상식적인 해명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이게 쌓이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실의 해명은 일단 믿지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대통령실이 이러니 부처들이 발표한 내용의 신뢰도도 같이 떨어지고 있다. 재정학자로서 기획재정부의 발표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편인데, 최근에 들어올수록 믿기 어려운 발표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제개편안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기재부가 스스로 천명했듯이 감세안이다. 감세안은 단기적으로 세수가 줄어들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세수가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늘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낮은 세율은 개인, 가계, 기업 등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세수는 과세기반(가로)에 세율(세로)을 곱해서 구한 사각형의 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율(높이)이 낮아지더라도 과세기반(폭)이 확대되면 궁극적으로 세수는 늘어난다. 감세 효과의 성패는 세율 인하에 따라 경제활동이 얼마나 활성화하는지다. 특히 지금과 같은 고인플레이션, 고금리, 고환율, 그리고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경제위기에서는 말이다.

 

이번 개편안에는 추상적인 경제활성화 얘기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언제, 얼마나 투자와 고용이 늘어날지는 분명한 예측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중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 추정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예측도 포함돼 있지 않다. 아마 긍정적인 효과를 제시하기에는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대신, 감세 규모 정도는 추정치로 제시돼 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감세안을 통해 정부가 내세운 건전재정을 달성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건전재정은 지출을 줄이는 것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단단한 과세기반을 확보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최근 여러 선진국들은 코로나 국면에서 악화한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출을 줄이는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증세를 계획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횡재세 도입을 논의하고, 최근 미국에서는 법인세 인상 방안을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에 포함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과감히 감세를 택함으로써 한동안 세수 감소는 피해갈 수 없게 됐다.

문제는 규모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 보도자료의 세수효과 부분에서 ‘금년 세제개편에 따른 세수효과는 –13.1조원’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연도별 세수효과’ 표에 13.1조가 향후 4년에 걸쳐 어떤 세목에서 얼마씩 발생하는지 제시했다. 지금도 ‘감세’, ‘13조’를 검색하면 수백개 기사가 뜬다. 언론이나 국민이나 이번 감세안을 통해 향후 4년 동안 13조원 정도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이런 감세 규모가 틀렸다는 사실은 파악하고 있고, 심지어 기획재정부도 알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연구위원은 이런 감세 규모는 전년도와 비교해 줄어든 것이기 때문에, 감세 규모는 13조원이 아니라 60조원에 육박한다고 비판했다. 기재부도 기자단에 감세 규모가 60조원이 맞는다는 취지의 문자를 돌린 것으로 알고 있다. 경제성장에 따른 세수 자연증가분까지 고려하면, 감세 규모는 향후 4년간 60조원이 아니라 120조원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기재부는 순계법이니 누계법이니 하는 발표 방식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재부가 보도자료에 적은 세수가 13.1조원 줄어든다는 표현은 어떤 식으로 봐도 이해할 수 없다. 세수효과가 13.1조원이 아닐 뿐만 아니라, 13.1조원이 줄어드는 해는 2026년 한해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6년 한해의 효과를 세수효과라고 적었다면, 이는 필히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이번 감세안의 부작용을 최대한 작게 보이려는 것은 아닐까?

언론에서도, 심지어 국회에서도 감세 규모를 13조원이라고 지속해서 말하는 것을 보면, 세제실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가 의도적으로 속이지는 않았지만 국민이 속은 것 같다.

 

 

 

 

우석진 |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