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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적인 재정준칙 법제화, 복지예산 축소 우려된다

道雨 2022. 9. 14. 10:24

경직적인 재정준칙 법제화, 복지예산 축소 우려된다

 

 

 

 

정부가 13일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길 때는 적자 한도를 2%로 억제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직되게 재정을 운용하면, 결국 사회복지 예산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고령화 대응,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정 운용을 매우 어렵게 할 것으로 우려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재정준칙 도입 방침을 두고 “방만한 재정운용 여지를 차단하겠다”고 했다. 최근 3년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연간 100조원 안팎에 이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2020년부터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의 3%를 초과한 것은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특수 상황 탓이 컸다. 이를 무시하고, 그저 정쟁에 활용하겠다는 생각으로 재정 문제를 다뤄선 곤란하다.

 

재정준칙 도입은 논의할 때가 되었다.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가채무와 통합재정수지 간의 곱셈식을 준칙으로 시행령에 규정하는 법안을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안의 경우 통합재정수지가 아닌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재정적자를 관리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정부 지출 억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정수입 확대는 고려에 없다. 그 결과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8월 말 정부가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2.6%로 하여 짠 내년 예산안을 보면, 코로나 방역과 관련한 보건 부문을 뺀 사회복지 예산이 올해보다 5.6% 증가에 머물렀다. 이명박 정부(7.5%), 박근혜 정부(7.7%), 문재인 정부(10.4%) 기간의 연평균 증가율을 크게 밑돈다. 그나마도 법률에 따라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부분이 11% 늘어난 것이고, 정책 의지를 담아 편성하는 예산은 5.4% 줄어들었다.

정부가 대기업 법인세 인하 등 감세를 단행해 늘어날 조세 수입을 줄임으로써, 사회복지 예산이 받은 타격은 훨씬 커졌다. 이런 방향으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줄여선 나라 경제가 건전한 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

 

재정적자 비율, 국가채무 비율이 낮은 것만으로 나라 살림을 잘 운영한다고 하는 것은 낡고 좁은 사고다. 필요할 때는 나랏돈으로 먼저 ‘늪을 메우고 디딤돌을 놓아’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재정준칙을 마련해야 한다.

 

 

 

[ 2022. 9. 14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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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3% 이내 적자’만 허용한다는 정부…전문가들 “지속 불가능”

 

 

 

정부, 재정준칙 도입방안 확정
관리재정수지 적자 GDP의 3% 이내 관리
국가채무비율 60% 넘으면 적자 2% 이내
기준에 대한 구체적 근거 제시하지 않아
재정준칙 유럽국가들 ‘단순한 기준’ 반성 시작
“재정준칙 지키기만 하면 재정건전화는 착각”
“그저 준칙지키는 일에만 몰두하게 될수도”

 

 

 

정부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운용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법제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 제시했던 재정준칙보다 더 엄격한 방향으로 재설계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 이를 지키기 위한 세입 확충전략 등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재원 조달 방안이 빠진 재정준칙 논의는 지속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13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확정했다. 재정준칙은 나라살림의 수지와 채무를 일정 한도 내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이번에 공개된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재정 총수입-총지출-사회보장성기금 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이내로 관리하고,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재정적자 상한을 2% 이내로 축소한다는 것이 뼈대다. 정부는 전쟁·대규모의 재난·경기침체 등 위기 상황에서는 준칙 적용을 면제하는 예외 요건도 덧붙였다. 이 예외사유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건과 동일하다. 정부는 이러한 재정준칙을 법률로 정하고 5년마다 한도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3%’ 및 국가채무비율 ‘60%’ 기준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저 관리재정수지 적자 3%는 “코로나 이전 수준”을 의미하며, 국가채무비율 60%는 “유럽연합 회원국 등 많은 국가들이 채무 기준으로 60%를 채택했다”는 설명이 전부다.

 

정부는 이 목표를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해 아무런 방법론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재량지출은 물론이고 의무지출에서도 성역 없는 지출 구조조정 노력으로 균형 있게 재정준칙 이행이 담보될 수 있도록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했다. 세입 기반 확충에 대한 발언은 일절 없었다.

 

구체적인 전략 없이 재정준칙을 도입했다가는, 가파른 고령화로 늘어나고 있는 복지 수요에 대한 대응 속도만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높은 복지 수준’, ‘낮은 조세부담’, ‘작은 국가채무’ 등 3가지 정책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재정 트릴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정적자 -3%나 국가채무비율 60%라는 숫자가 과연 적정하냐는 논란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준칙을 어떻게 지키겠다는 것인지 말하지 않는 것”이라며, “재정준칙도 지키고 제대로 된 복지도 하려면 재원 조달 방안이 필요한데, 이 논의가 없으니 지속 불가능한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찍이 재정준칙을 도입했던 유럽 국가들에서는 ‘재정적자 -3%’ 또는 ‘국가채무비율 60%’ 등 단순한 기준으로 재정을 통제하는 방식을 둘러싼 반성이 이미 시작됐다. 유럽연합의 재정준칙이 어느 정도 부채 확대를 막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위기 이후 ‘조기 긴축’을 불러 경제 회복을 지연시켰다는 것은 경제학자들 사이의 중론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도 유럽연합에 “3% 적자와 60% 국가채무라는 참고치는 남아 있지만, 재정 조정의 속도는 재정위험의 정도와 연결되어야 한다”면서 “충격에 대응하고 경기부양책을 수행할 수 있는 상당한 유연성을 허용하는 재정 완충장치의 구축을 장려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재정 건전성을 살펴보기 위한 다양한 재정지표들이 있는데, 한두 가지 지표로 이루어진 재정준칙을 만들어버리면 다양한 지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이 재정준칙을 지키기만 하면 우리 재정이 건전화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재정준칙이 지나치게 단순할 경우, 정부가 재정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일보다 그저 재정준칙을 지키는 일에 더 몰두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