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죄송한 마음” 대통령, “웃기고 있네” 수석

道雨 2022. 11. 9. 08:52

“죄송한 마음” 대통령, “웃기고 있네” 수석

 

 

*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펜든 이)이 8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이태원 참사 관련 질의 도중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의 수첩에 “웃기고 있네”라고 쓴 장면. 이데일리 제공

 

 

 

 

소요, 선동, 마음의 책임….

 

말 같지 않은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혼란스러울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언어의 도착, 말의 타락이다. 이번엔 고관대작 권력자들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쏟아지고 있고, 갈수록 단어 선택과 배열이 더 교묘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사태를 호도하고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저열한 욕망의 표출이다.

그 결과는 전례가 드문 무책임의 난장이다. 국가의 부재, 정부의 무능이 드러났는데도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고 깨끗이 물러나는 국정 지휘부가 단 한명도 없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 이튿날(10월30일)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가 아니었다”는 희대의 발언으로 ‘책임 회피’ 릴레이의 첫 주자로 나섰다. “서울 시내 곳곳에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경비 병력이 분산됐다”며 사태 책임을 시위에 나선 시민들에게 돌렸다. 다음날(10월31일)엔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 책임을 제기하는 목소리에 ‘선동’ 딱지를 붙였다.

 

물론 그의 모든 주장은 단 이틀 만에 엉터리 거짓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인파 사고를 우려하는 여러 사전 경고와 당일 쏟아진 절박한 112 신고마저 묵살했다. 서울 시내 시위는 모두 밤 9시 이전에 끝나, 인력 배치엔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 이런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내뱉었거나, 알면서도 책임을 모면하려 거짓 선동을 한 것이다. 후자라면 도덕적 지탄을 넘어 법적 처벌 가능성까지도 따져봐야 한다. 어느 쪽이든 1분, 1초라도 더 자리를 지킬 자격은 이미 상실했다.

 

눈길이 가는 건 그가 쓴 ‘소요’ ‘선동’ 같은 날 선 단어들이다.

소요는 ‘여러 사람이 모여 폭행이나 협박 또는 파괴 행위를 함으로써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표준국어대사전)를 뜻한다. 시위보다 폭동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런데 참사의 날, 서울 시내에 어떤 집단적 폭행과 협박, 파괴 행위가 있었나. ‘윤석열 퇴진 촛불 행진’은 열기가 뜨거웠지만 물리적 충돌 없이 삼각지역 앞에서 마무리됐다.

 

왜 존재하지도 않은 소요를 앞세웠을까. 시대착오적 세계관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시위조차 정권 퇴진을 외치면 소요라고 보는 도착적 인식, 한마디로 망상이다. 외국 컨설팅 기업의 국내 지사장을 지낸 한 지인은 “소요란 단어는 군사정권 이래 처음 들어본 것 같다”고 했다.

 

이 장관은 지난 7월 경찰국 설치에 반발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쿠데타” “하나회”라고 불렀다. 정권의 경찰 장악에 반대하자, 자율적인 정책적 의견 수렴 모임에조차 ‘군사반란’ 낙인을 찍은 거다. 시위에 소요 딱지를 붙인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거울상의 행태다. ‘정권 보위’ 관점에서 세상사를 재단할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런 망상적 인식을 집권 엘리트 다수가 드러내고 있다는 게 현 정권의 불행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7일 “광화문에서 열린 정권 퇴진 촉구 대회에 서울 시내 모든 경찰 기동대가 투입됐고, 그날 밤 이태원에서 참사가 벌어졌다”고 했다. 이미 일주일 전 기각된 이 장관의 엉터리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각시탈을 쓴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참사 현장에서 아보카도오일을 뿌렸다는 괴담까지 불러냈다. 경찰은 어떤 사람들인지 분명하지 않고 위치도 참사 현장과 달랐으며, 뿌린 건 오일이 아닌 ‘짐빔’ 위스키로 확인됐다고 일축했다.

정권 책임을 반대 진영에 뒤집어씌우겠다고 집권세력이 공공연히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기괴한 형국이다.

 

압권은 7일 국회에서 나온, 국민의힘 부대변인 출신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마음의 책임” 발언이다. 이 장관 주장과 함께 쌍벽으로 남을 궤변이다. 이제 권력자는 행동 아닌 마음으로 책임지는 척하면 된다.

 

이 모든 조직화된 무책임의 정점엔 대통령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차례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을 뿐, 책임자 문책과 대책 마련의 다짐을 담은 ‘대통령의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경찰을 질타했을 뿐, 고교·대학 후배인 이 장관 문책에 선을 그었다. 대통령이 마음만 죄송하니, 구청장도 마음의 책임만 지겠다고 뻗대고, 김은혜 홍보수석은 국회 참사 질의 도중 수첩에 “웃기고 있네”라고 끄적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아무도 행동으로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의 나라로 추락하고 있다.

 

 

손원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