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무당 정권’과 “호랑나비”

道雨 2023. 2. 1. 11:00

‘무당 정권’과 “호랑나비”

 

 

 

한국인의 종교성과 무교

 

1886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돼 활동하면서, 한국인의 종교성을 관찰한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는 이렇게 썼다.

 

“한국인은 대부분 사회생활 할 때는 유교인, 철학적 사색할 때는 불교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는 영혼숭배자(무속인)가 된다.”1)

 

일제강점기 한국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헤이그 밀사 파견을 도왔으며, 안중근 의사가 존경했다던 인물임을 기억하면, 헐버트의 이런 말에는 한국인과 한국인의 종교성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보인다.

오히려 이 말에서는 그리스도교 선교사로서 자기 종교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고, 한국인에게서 드러난 다원주의적 종교 현상을 존중하면서도, 이를 간단명료하게 집약해 낸 명민함이 돋보인다.

종교학에서 한국인의 종교성과 관련해 헐버트의 이 설명이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것만 봐도, 그의 관찰이 여전히 설득력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의 말을 종교학적으로 조금 더 파 보고 두 가지로 묶어 설명해 보면 이렇다.

 

먼저 한국인은 동양적 종교 전통에 따라, 하나의 종교를 배타적으로 나누는 대신, 여러 종교를 하나로 보는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모두 정령숭배자, 곧 무속인이 된다는 대목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이는 음으로 양으로 여전히 유교적 사회질서와 규범 속에서 살면서, ‘무아’(無我), ‘이심전심’(以心傳心) 등 선불교의 핵심사상을 무의식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일상 대화에 섞어 쓰는 한국인도, 결국 생존이 달린 중차대한 문제에 직면하면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상관없이 점집이나 무당을 찾는다는 것이다. (재미든 뭐든, 크고 작은 집안사, 이를테면 이사 때 ‘손없는 날’을 따지지 않거나 자식 결혼 시 점집에 안 가는 종교인이 얼마나 될까!)

이를 달리 표현하면, 민중의 종교심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한국에서는 무교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중국에서는 도교, 일본에서는 신토(神道)가 가장 깊은 습합 과정을 통해 문화화하면서, 민중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인다.

 

그것의 순기능이 민중의 애환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달래고 그 에너지를 사회로 환원하는 긍정적 역할을 했던 점이라면, 역기능은 영향력이 큰 만큼 ‘혹세무민’의 정도도 심했다는 사실이다. 후자의 영향뿐 아니라 정치 권력과의 관계가 컸겠지만, 무교, 특히 무당의 사회적 지위는 지극히 낮았다.

하긴 5000년 역사에서 통일신라까지의 고대를 빼면, 특히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개발독재식 근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당에게 ‘종교인 대접’은 언감생심이었다.

 

이런 역사를 포함해, 지금은 매우 뜸한 일이 됐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개신교나 천주교에서 ‘문화신학’이나 ‘토착화 신학’의 이름으로 무교와의 신학적, 종교적, 문화적 관계를 탐색하는 연구가 제법 활발했다. 학생들에게 교양 과목으로 무교에 대해 가르칠 때도 ‘무교’(巫敎), ‘무속’(巫俗), ‘무’(巫)의 민감한 차이서부터, ‘무교는 혹세무민의 종교가 아니고 또 무당 중에 훌륭한 이도 많다’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은 여전하다.

 

                            ▲진오귀굿의 바리공주 무가 구연 장면. ⓒ김수남(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설 “호랑나비”와 김금화

 

운이 좋았달까. 한 무당의 종교적, 인격적, 가족적 면모를 잘 드러낸 단편소설 “호랑나비”2)를 ‘발견’한 뒤로는, 무교 관련 이론서보다 학생들과 함께 이를 읽어 내는 것으로 수업을 해 왔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까닭이었다.

 

작자의 체험이 바탕이 된 듯한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만신 시어머니를 둔 천주교인 막내며느리다. 처음에는 무당 시어머니라 거리감도 있었지만, 점점 시어머니의 인품에 끌리게 되고, 더욱이 종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불어넣어 준 존경스러운 종교인으로 흠모해 마지않는다.

 

얘기는 그 시어머니의 목숨이 촌각에 달린 상황에서,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돈과 과학’으로 무장한 병원의 횡포,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아들들, 종교근본주의를 비롯한 타종교와의 문제 등으로 채색된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이고 주요한 대목은 큰 무당 시어머니의 종교성과 인품이 잘 어우러져 생생히 전달되는 굿거리 장면이다.

시어머니 임종 뒤 벌어진 지노귀굿에서 시어머니는 무녀의 공수를 통해 자식 및 며느리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을 소상히 밝힌다.

목소리며 표정, 평소 사용하는 어휘까지 똑같아, 모두 생전 시어머니를 대하듯 안타까움과 애절함의 눈물로 마지막 이별을 고한다.

시어머니는 다섯 며느리 집안의 어려움을 헤아리면서 구체적인 해결책과 덕담을 잊지 않는다.

주인공 막내며느리에게는 그녀의 종교에 대한 갈급한 마음을 간파해서인지, “믿음은 다 같은 거다. 방향은 다르더라도 결국 길은 하나다. 알겠냐. 종교는 똑같은 거야”3)라고 말해 놀라게 한다.

주인공은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시원한 답’이었다며, 이 구절은 그녀의 입을 통해 소설에서 몇 번씩 되풀이하여 강조된다.

시어머니의 이 말은 문맥상 ‘종교가 똑같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보다는, ‘방식은 다르더라도 믿는 마음은 같다’는 의미에 더 무게를 두는 듯하다.

이 부분이 주인공이 시어머니가 무당이었음에도 종교적으로도 큰 어른으로 존경할 만한 덕목, 곧 타종교에 대한 개방성과 포용성을 보여 주는 장면으로 제시되는 듯 보인다.

 

내게 이 장면은 내가 언젠가 인사차 방문한 적이 있는 김금화 만신과 시어머니가 오버랩 되어 다가왔다. 시어머니 비슷하게 김금화도 자신의 책에서 "미신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에 달려 있다"고 단언했다.

시어머니가 믿는 방식의 차이를 현상학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면, 김금화는 거기에 더해 어떤 종교 또는 어떤 신을 믿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믿는가, 곧 ‘올바르게 믿어야 한다’는 윤리적, 수행적 가치를 추가하고 있다.

 

이런 태도로 말미암아 새벽 4시에 일어나 찬물로 목욕하고 기도하는 일상부터,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나 다른 큰 재난의 현장에 찾아가 희생자와 혹 모를 생존자를 위해 치성을 드리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무교인이 어디 소설 속 시어머니와 김금화뿐일 것인가.

 

 

                        ▲지난 11월 3일에 MBC에서 보도한 ‘천공 스승님의 정법강의’ 중 이태원참사에 관현 발언 장면. (이미지 출처 = MBC뉴스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무당 정권’과 무교의 역할

 

유튜버 사이에서 이번 정권을 ‘무당 정권’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곧잘 듣곤 한다. 부정적인 의미에서다. 사실 대통령 선거 전부터 무교, 무속 관련해 무수한 말이 쏟아졌고, 그 정도로 봐서는 전례가 없어 보인다.

이 무속 논란은 2021년 10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손바닥에 王자를 새기고 출연한 데에서 시작해, ‘천공 스승’ 발언, 무정 스님, 건진 법사 등 많은 무속 관련 추정 인사, 그 후보 부인이 <서울의 소리> 기자와 통화하면서 나온 “내가 웬만한 무속인보다 낫다”, “영적인 사람이라 도사들과 삶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등을 비롯해, 온갖 무속 관련 발언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과 개신교계는 대선 후보가 공·사간 주요 결정 과정에 ‘무속인의 결정을 따랐다’고 비판함으로써 논란이 불거지자, 그해 10월 대표적 무교 조직인 ‘경천신명회’와 ‘대한경신연합회’는 입장문을 내고 이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경천신명회 관계자는 특정인 때문에 무교 전체가 과도하게 비판받는 현 세태가 온당치 않다고 주장하며, 전국 무당들이 모두 다 여의도로 모여 정치권에 항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4)

이 관계자는 ‘건진 법사’ 등 자신의 교단에 속하지 않은 이들 때문에 무속인들이 모두 다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면서, “무교 성직자들은 다들 영(靈)을 가진 사람들이다. 성경말에도 일반인과 영을 가진 사람은 다르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입장문에서 “우리의 신교(무교)를 지켜주실 그 분... 영성이 바르신 그 분께서 천명을 받아 한민족(대한민국)의 가는 길을 올바르게 인도해 주시기를 열손 모아 빌고 스무 손 모아 기도합시다”고 썼다. 여기서 ‘그 분’이 당시 국힘당 후보를 암시한 게 아니냐고 비난하거나 넘겨짚을 근거는 아무 데도 없다.

 

다만 무교인들이 ‘다른 영’을 가진 사람들이고 ‘영성이 바른 그 분’에게 나라의 길을 묻는 올바른 종교인이라면, 그리고 정치권에 항의해 여의도로 전국 무당을 동원할 용기가 있을 정도라면, 현 정권 주변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무속 관련 인사’들에게도 무교계 내부에서 호된 비판과 항의의 목소리라도 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무리 소수 약자의 종교라고 하더라도 자기 보위만 하다가 외부에서 오는 비난이나 비판에만 반응하는 자기만족적인 종교라면 누가 지지를 보내겠는가.

 

현 정권 우두머리의 스승이라는 천공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망언을 쏟아냈다.

 

“좋은 기회는 자꾸 줍니다. 우리 아이들은 희생을 해도 이렇게 큰 질량으로 희생을 해야지 세계가 우리를 돌아보게 되어 있어요... 우리 아이들의 희생을 보람되게 할려면 이런 기회를 잘 써가지고 세계에 빛나는 일을 해야 됩니다.”5)

 

남의 말이라고 이렇게 막 해도 되는가. 정녕 그럴 수 있는가.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은 것이, 아니 그렇게 많이 죽어야 ‘좋은 기회’라고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 대는, 이런 말을 해대는 천인공노할 인간이어서 천공인가?

피눈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희생된 아이들 부모의 창자를 다시 끊어버리는 이런 무도한 패륜을, 무교의 하느님은, 바른 영성을 갖고 있는 무교인들은 그냥 용인할 것인가.

 

무교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직접 만나게 하여 맺힌 한을 풀게 하는 종교이다. 과거 김금화가 그러했듯, 영성이 바른 무속인들이 이번 이태원에서 목숨을 잃은 159명의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지노귀굿을 해 주는 모습을 그려 본다.

"호랑나비"의 시어머니를 위한 그런 큰 굿은 아니어도, 아이들이 하지 못한 말, 마지막 순간에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면서도 마음속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차마 두고 떠나지 못할 부모형제에게 하게 한다면 진정한 해원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그래야 부모도 아이들을 가슴속에나마 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른 종교들도 지금 그렇게 참사의 현장을 찾아가 위로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이런 큰 재난에 부딪혔을 때 해원과 상생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은 무교의 귀하디귀한 역할이다.

천주교 신자가 이런 굿판을 제안한다는 것이 혹자에게는 위험하게, 또는 무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참된 종교성을 추구하는 이들의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실질적으로 한 차원 높여 실행하자는 그런 제안으로, 무교가 이 무참한 시절에 앞장서 주었으면 하는 역할을 제안해 본다.

 

1) 오강남, “세계종교 둘러보기”, 현암사, 2013, 126쪽.
2) 최임순, ‘호랑나비’, <창작과비평> 82호(1993년 겨울), 1993.12.1.
3) 위의 책, 270쪽.
4) 홍석희, “200만 무당 여의도로”… 정치권 ‘무속비판’에 무교인들 집단행동 ‘조짐’, <헤럴드 경제> 2022.1.28.
5) ‘[오늘 이 뉴스] 천공스승 이태원참사에..“좋은 기회” 막말 논란 (2022.11.03/MBC뉴스)’, ,2022.11.03.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 제휴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31일 자 에 실린 글 입니다.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