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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종식, 비스마르크는 답을 알고 있다

道雨 2023. 2. 2. 09:17

우크라 전쟁 종식, 비스마르크는 답을 알고 있다

 

 

 

“정치의 비밀은? 러시아와 좋은 조약을 맺어라.”

 

비스마르크는 1862년 프로이센의 총리가 된 이듬해, 신흥 프로이센이 유럽의 열강으로 살아남고, 독일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가 시작과 끝이라고 말했다.

프로이센이 난립한 독일 국가들 사이에서 오스트리아를 누르고 주도권을 쥐고 유럽 열강의 자리를 굳히게 된 계기는, 18세기 중반 7년전쟁에서의 승리였다.

 

이 전쟁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슐레지엔 영유권을 놓고 다툼을 시작해, 프로이센-하노버-영국 연합 대 오스트리아-프랑스-스웨덴-러시아 동맹의 대결로 격화됐다.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은 궁지에 몰려, 프리드리히 대제가 언제든 자살할 수 있게 독을 지니고 다녔다.

 

반전은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여제가 전쟁 도중 사망한 뒤, 표트르 3세가 즉위하면서 벌어졌다. 프리드리히 대제를 존경하던 표트르 3세는, 즉위하자마자 프로이센에 영토를 포함해 전쟁 이전 상태로 회귀할 것을 아무 조건 없이 제안했다. 러시아는 프로이센의 적국이던 스웨덴까지 설득해 전쟁에서 이탈하게 했다. 프로이센은 러시아의 후원으로 오스트리아를 격파하고 전쟁에서 이겼다.

 

‘브란덴부르크가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이 대반전은, 러시아 편에서는 프로이센을 패망시키고 영토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표트르 3세의 멍청한 짓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실용적인 세력균형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프로이센이 패망하면, 오스트리아가 중부 유럽에서 단일 열강이 돼, 러시아를 위협할 수 있음을 방지했다는 것이다.

 

프로이센 편에서는 동서 양쪽에 적을 만들거나 두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안보의 기본 전제가 됐고, 이는 프로이센이 통일하는 독일에도 이어졌다.

나폴레옹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해 파리까지 진군하며, 독일 지역에서 세력 공백을 만들어줘 독일 통일도 가능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 뒤 유럽의 5대 열강 관계를 독일에 유리하게 만드는 세력균형책을 펼쳤다.

관건은 러시아였다. 영국은 유럽 대륙에 결정적인 순간에만 관여한다는 전통적인 ‘영예로운 고립’ 정책을 펼쳤고, 프랑스는 보불전쟁으로 독일의 적국이 된 상수였고, 오스트리아는 같은 독일 국가로 우호국이라는 상수였다. 결국 러시아를 독일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비스마르크의 대외정책은 5대 열강이라는 5개의 공을 돌리면서 그중 3개를 독일 쪽에 놓는, 고난도 ‘저글링 외교’였다. 자신의 재임 기간 중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항상 유지해, 독일의 성장과 안보를 지켰다.

 

러시아가 독일 쪽에서 이탈하자, 두 나라뿐만 아니라 유럽과 세계 전역에 재앙이 닥쳤다.

비스마르크가 물러난 뒤, 빌헬름 2세는 러시아와의 재보장 조약을 갱신하지 않아, 러시아는 영국-프랑스와 동맹을 맺는 3국협상에 가담했다. 이는 독일이 동서 양쪽 두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는 1차대전으로 비화했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도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과 전쟁을 치르다 패망했다.

 

2차대전 뒤 독일의 통일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소련이 양해했기에 평화적으로 가능했다. 당시 소련은 나토의 동진 금지를 조건으로 독일 통일을 허락했는데, 이 나토 동진 문제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요한 원인이다.

 

헨리 키신저는 7년전쟁, 나폴레옹전쟁, 2차대전 등 파국이 올 위기마다 홀연히 등장해 세력균형을 맞춰놓는 러시아의 역할을 ‘러시아 퍼즐’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래서 “러시아는 보기보다는 강하지 않고, 보기보다는 약하지 않다”는 외교가의 격언도 나왔다.

 

키신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끝나더라도, 러시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유라시아 전역에 거대한 혼란이 몰아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독일의 동방정책 설계자인 에곤 바르는 “독일에 미국은 불가결하고, 러시아는 고정됐다”고 말했다.

 

현재 유럽은 독일이 주도한다. ‘정치의 비밀은 러시아와의 좋은 관계’라는 금언은 그래서 현재 유럽에도 유효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은 현재 경제적으로나 정치외교적으로나 위기다. 유럽은 미-러 대리전이 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종속변수로 전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에서 유럽의 역할이 없다면, 세계는 양차 대전의 전야처럼 돌이킬 수 없는 진영 대결로 치달을 것이 분명하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중-러 연대와 서방 동맹 사이의 대결이 격화되고, 기존의 세력균형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평화의 비밀은 러시아와의 관계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