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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리스크’에 가린 윤석열의 진짜 위기

道雨 2023. 3. 14. 10:06

‘이재명 리스크’에 가린 윤석열의 진짜 위기

 

 

 

요즘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34%로 전주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일본의 강제동원 책임을 면제해준 역대급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지지율 하락을 막은 건 선방이라고 여권에선 자평한다.

 

더 기분 좋은 건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볼 수 없던 대통령의 노골적 개입 속에 오로지 ‘윤심’만 내세운 김기현 대표가 선출되고, 최고위원도 ‘친윤’ 일색으로 꾸려졌다. 앞으로 대통령을 축으로 한 보수층 결속은 더욱 강해져, 내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여권 전체를 휘감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리스크에 가렸을 뿐, 윤석열의 진짜 위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진다. ‘은행은 공공재’라는 대통령 발언이나, 벌써부터 선거를 의식해 공공요금은 물론이고 소주값 인상까지 억제하는 보수 정권의 이율배반적 행태는 단적인 예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감명을 받았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시장만능주의적 가치는, 포퓰리즘 행태와 법의 외피를 쓴 검찰권 남용 속에 이미 실종됐다. 시장을 중시한다는 정부 아래서, 민간·공공 부문 모두 검찰을 수족처럼 부리는 대통령을 두려워한다.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을 하지 않은 정권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래도 과거 정권은 어느 정도 선을 지켰다. 윤 정권은 이 선을 손쉽게 뛰어넘는다. 여기에 정책 방향과 내용은 몹시 불분명하고 혼란스럽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올 한해 금리를 올리겠다고 공언하는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앞다퉈 대출금리를 내린 우리 은행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정부 요구가 일시적 금리 인하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은행 설립 등 산업구조 재편까지 거론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커지는 게 시장의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일관성 있는 유일한 기준은 바로 인적 교체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 기류를 읽고 신한을 비롯해 엔에이치(NH)농협·우리·비엔케이(BNK)까지 줄줄이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자진 사퇴했다. 이 자리를 누가 채울지 익히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인적 교체가 국가의 총체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유능한 라인업을 짜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케이티(KT) 이사회가 뽑은 최고경영자 후보를 뒤엎고, 그 자리에 77살의 모피아 출신 대선 공신을 앉히겠다는 것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직 권력의 야수 같은 속성만 느낄 뿐이다.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반세기 전 노동운동을 했던 극우 인사를 앉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모습으로 어떤 노동개혁을 추진하면서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갈지 국민들은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엔 육사 출신이 정·관계 주요 자리를 휩쓸다시피 했다. 지금은 검사 출신이 요직을 거의 싹쓸이하며, 내년 총선에서 대거 정치판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군사정부가 정보·수사기관의 감시와 폭력으로 공포감을 조성했다면, 지금은 검찰 수사라는 칼날이 정치·경제 전반을 얼어붙게 한다.

현 정부의 사퇴 압력을 거부했던 어느 고위 공직자가 “언제 검찰 수사가 들이닥칠지 몰라 두렵다”고 하는 건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신악(新惡)이 구악(舊惡)을 뛰어넘고, 새로운 검사정부가 과거 군사정부의 뺨을 치는 격이다.

 

윤 대통령은 곧 일본과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어떤 성과를 거둘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미국 요구를 받아들여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 온 힘을 쏟으면서, 한편으론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 지원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우파 정권으로선 보기 힘든 경험인 것이 분명하다.

 

지지율이 덜 떨어진 것에 자족할 때가 아니다. 임기 1년차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서 줄곧 벗어나지 못하는 걸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권력에 대한 국민의 냉정한 평가가 거기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니가 하면 개입이지만 내가 하면 정의’라는 검사 특유의 독선이 사람들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장을 가득 메운 열기와 정반대로, 윤석열 정권은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가시밭길로 이미 접어들었다.

결국 선거의 성패를 가르는 건, 야당도 여당도 아닌 대통령 자신에 대한 평가다.

 

 

 

박찬수 ㅣ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