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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의 재구성] 21. 재판부도 낚아올린 허위 ‘총장상’ 프레임

道雨 2023. 6. 22. 11:32

'조민 총장상' 프레임에 낚인 재판부, 증언 왜곡까지

 

 

 

언론, 조국 본인 발언마저 '총장상'으로 허위 보도

자유한국당이 처음 '제조'하고, 검찰이 '재가공'해

공소장에까지 써넣어 '낚시'…유죄 판결에도 영향

최성해 유일한 '총장상' 언급은 판사 질문의 대답

임정엽 재판부, "서류 영향 적었다" 증언 반대로 판시

 

 

[조국 사태의 재구성] 21. 재판부도 낚아올린 허위 ‘총장상’ 프레임

 

 

앞서 2019년 최성해를 경쟁적으로 취재했던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기사에서 최성해가 ‘표창장’으로 지칭했던 것을 멋대로 ‘총장상’이라고 바꿔 기사화한 사실을 살펴봤다.

그런데 언론 인터뷰에서 꿋꿋이 “표창장”이라고 발언한 것을, 고집스레 매번 “총장상”이라고 조작해 기사화한 대상은 최성해의 발언만이 아니었다. 언론들은 해당 의혹에 항변하고 있던 조국 후보자의 발언까지도 왜곡했다.

 

 

조국 발언조차 ‘총장상’ 왜곡 보도

 

심지어 연합뉴스를 비롯한 언론사들은 아예 조국 후보자가 “표창장”이라 발언한 것을, 기사 제목에서 멋대로 “총장상”이라며 ‘오역’해 썼다. 직접 인용인 양 앞뒤로 큰따옴표까지 붙이는 등, ‘실감나는’ 연출까지 더한 노골적인 왜곡이었다.

 

조국 후보자가 말하지 않은 ‘총장상’을 인용인 것처럼 제목에 쓴 연합뉴스.

 

 

특히 2019년 9월 5일 연합뉴스의 보도는 더욱 황당한 수준이었다. ☞ 조국 "동양대 총장상 의혹, 청문회서 다 말하겠다" 연합뉴스는 “동양대 총장상 의혹 청문회서 다 말하겠다”라고 말한 것처럼 제목을 뽑았지만, 실제로는 조국 후보자가 ‘총장상’이라는 허위 지칭을 입에 담은 바가 전혀 없었다.

 

해당 기사에 첨부된 영상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실제 발언은 이랬다.

 

“내일 청문회까지 시간이 많이 부족하지만, 기자간담회 이후 언론이 새로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도 소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민의 대표 앞에서 아는 것은 아는대로 다 말씀드리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작 ‘총장상’이란 허위 지칭은, 발언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발길을 옮기던 조 후보자를 따라붙으며 질문을 던진, TV조선 법조팀 한송원 기자의 입에서 나왔다.

“총장상 발급 관련해서 부인께서 사문서 위조 혐의나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 수사 받을 것으로 보이거든요. 입장은 변화 없으신 건가요?”

 

‘총장상’ ‘부인 수사’를 운운하며 무리하게 사퇴 종용 성격의 질문을 던진 TV조선 한송원 기자. 연합뉴스

 

 

3일 저녁과 4일 새벽에 ‘총장상’ 의혹이 제기된 후 만 하루밖에 안된 5일 새벽에, 중앙일보에서 단독으로 ‘피의자 전환’ 보도가 나온 상황이었다. 턱도 없이 무리한 수사 운운에 현실감마저 없는 상황에, 한 기자는 검찰 수사를 운운하며 사실상 사퇴를 종용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기자인지 야당 정치인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인 이런 무례한 질문에 조 후보자는 답하지 않았다.

 

전날인 4일 출근 때도 같은 TV조선 한송원 기자는 ‘총장상’이라 지칭하며 무리한 질문을 퍼부었는데, 그때는 조 후보자가 “표창장”이라 바로잡으며 답변을 했었다.

 

보시다시피 “동양대 총장상 의혹 청문회서 다 말하겠다”라고 직접인용을 가장해 써넣은 연합뉴스의 타이틀은, 조 후보자 인용이 아니라 기자의 창작이었다. 기사와 유튜브 영상에는 깨알같이 ‘#총장상’이라 태그까지 달았다.

 

이 사례를 포함해, 조 후보자의 입에서 ‘총장상’이라는 허위 지칭은 단 한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조 후보자가 마치 “총장상”이라는 프레임에 수긍 혹은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해 보도한 것이다.

절도 사건으로 비유하자면, 최성해란 인물이 ‘조국이 100원 훔쳤다’ 주장하고, 지목된 조국은 ‘100원은 원래 내 것’이라고 항변하는 상황에서, 수십 개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조국 10,000원 절도 사건”이라고 보도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런 것이 ‘날조 보도’가 아니라면 다르게 뭐라고 불러야 할까?

 

 

‘총장상’ 프레임, 자유한국당 ‘제조’, 검찰 ‘재가공’

 

앞서 살펴봤다시피, 표창장 수상자 조민 씨도, 수여자 최성해도, 온몸으로 언론과 검찰의 공격을 다 받았던 조국 후보자도 ‘총장상’이란 말은 전혀 쓰지 않았다. 이 사태의 직접 관련자들 모두가 ‘총장상’ 지칭과 무관한 것이다.

 

또 최초 단독 보도를 한 KBS와 중앙일보를 포함해 모든 언론은 다른 어떤 사례에서도 봉사 표창장 같은 것에 ‘총장상’이라고 지칭한 전례가 없다. 나아가서 ‘후례’조차도 없다. 총장 직인이 찍힌 표창장이라고 해서 다 ‘총장상’인 것이 아니라, 오직 ‘조국 자녀의 표창장’만이 ‘총장상’인 셈이다.

 

그러면 도대체, 9월 3일 저녁과 4일 새벽에 각각 단독 보도를 내면서 전례 없는 허위 프레임을 기사화한 KBS와 중앙일보의 ‘총장상’ 출처는 도대체 어디일까? 이 언론들은 도대체 어디서 누구 말을 듣고 ‘총장상’이라는 프레임을 퍼뜨렸을까?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다. 2019년 9월 초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이 공개했던 동양대 회신 공문이다. 이 공문 내용을 보면, 당초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의 질의 내용이 “동양대 총장상 수상자 이력 현황”이었던 점을 알 수 있다. 8월 26일 곽상도가 교육부를 경유해 동양대에 질의할 때부터 ‘총장상’이라고 지칭했던 것이다.

 

 

2019년 9월 4일 중앙일보가 주광덕 의원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동양대 회신 공문.

 

 

 

이 회신 공문이 언론에 처음 공개된 것은 2019년 9월 4일 오전 10시 경이다. KBS(9월 3일 저녁)와 중앙일보(9월 4일 새벽)의 ‘총장상’ 단독 보도가 나온 후에 공개된 것이다. 즉 이 곽상도의 ‘총장상 수상자 이력 현황’ 자료 요구가 ‘총장상’ 프레임의 최초의 소스였다.

 

그런데, 앞서 18회에서 살펴봤듯이, 이 KBS와 중앙일보의 ‘총장상’ 단독 보도들은 검찰의 동양대 압수수색의 목적이 ‘총장상’ 때문이라면서, 기사의 정보 출처가 검찰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더욱이 이 단독 기사를 내보낸 기자는 둘 다 정치부가 아닌 법조기자 쪽이었다. (KBS 기자는 법조팀, 중앙 기자는 대구 사회부였다.) 즉 이 언론사들의 ‘총장상’ 지칭의 소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아닌 검찰이었다고 보인다.

 

또, 곽상도가 최초 공문을 보낸 8월 26일은, 검찰이 일제 압수수색으로 조국 수사에 착수한 8월 27일보다 하루 전이다. 그래서 검찰은 26일쯤에는 다음날의 압수수색을 준비하고 있었겠지만, 무려 30여 군데나 동시다발적으로 털었던 8월 27일 일제 압수수색에 동양대는 포함되지 않았다. 즉 8월 26일과 27일까지는 동양대 표창장은 검찰의 수사 대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최초 공문을 보낸 곽상도와 회신 공문을 공개한 주광덕은 둘 다 검사 출신이고, 주광덕이 불법적으로 공표한 조민 씨의 생활기록부 역시 검찰 외에는 다르게 의심할 출처가 없는 상황이다. 

이를 포함해 곽상도, 주광덕이 ‘조국 사태’ 당시 검찰과 한 몸인 것처럼 유기적으로 협조하며 청문 정국을 이끌어 나갔다는 관측이 파다한 상태다.

 

이런 사실들과 유력한 추정들을 종합하자면, ‘총장상’ 프레임에 대한 합리적인 ‘제조 및 유통 경로’가 나온다. ‘총장상’ 지칭은 자유한국당에서 처음 창안된 것이긴 하지만, 8월 26일 시점까지는 야당 자유한국당이 흔히 해오던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설계한 과장 수준의 프레임이었다.

 

그랬던 것이 9월 3일 동양대 압수수색 이전에 자유한국당에서 검찰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다시피 동양대 공문에 관여한 자유한국당 곽상도, 주광덕 의원은 둘 다 잘 알려진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이다. 그리고 검찰은 이것을 ‘정치적 수사’를 넘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원래 총장 직인 표창장에는 ‘총장상’이란 말을 써왔던 것처럼 프레임화 해서, KBS와 중앙일보의 법조기자들에게 넘겨 단독 기사로 내보내도록 한 것이다.

 

 

공소장에까지 써넣은 ‘총장상’ 지칭, 재판부 낚기

 

하지만 이 ‘총장상’ 프레임의 수명은 정 교수에 대한 기소 시점까지였다. 

검찰은 2019년 9월 6일 심야의 1차 기소 당시 공소장에 ‘동양대학교 총장 명의의 표창장’라고 썼을 뿐, ‘총장상’이라는 지칭까지는 써넣지 못했다.

즉 이 청문회 시점까지는, 언론들의 ‘총장상’ 프레임과 검찰의 1차 공소장은 실제 재판까지 가겠다는 목적이라기보다는, 어떻게든 조국 후보자 임명 강행을 막기 위한 정치적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1차 공소장은 실제로 이걸로 재판을 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이 부실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같은 검찰은 11월 11일 2차 기소를 하면서는, 공소장에 슬그머니 ‘총장상’을 끼워넣었다. 즉 법원에까지 ‘총장상’ 프레임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2차 공소장에서는 일관되게 “총장상”이라고 쓴 것도 아니었고, 해당 서술은 아예 허위였다. 공소장 형식상 정확한 표현을 써야 하는 소제목 등에는 “표창장”이라고 써놓고는, 구체적 서술 부분에 슬그머니 “총장상 파일”이란 엉터리 표현을 끼워넣은 것이다.

 

차. 동양대 총장 명의 표창장 위조

(중략)

“동양대 상장 용지에 동양대 총장상 파일을 출력하는 방법으로 동양대 총장의 직인을 임의로 날인하여 동양대 총장 최성해 명의의 표창장을 만들었다.”

 

공소장에 이렇게 기술해놓은 “총장상 파일”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어디에도 없다. 변호인측 포렌식 전문가로서 이 문제를 맡아 장시간 분석해온 필자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문제다. 해당 상장 양식 파일의 이름은 “(양식)상장[1].hwt”이다. 이 파일을 열어 확인해봐도 “총장상”이라거나 그와 비슷한 부분은 전혀 없다. 이 밖에 이 사건 관련의 다른 모든 증거나 증언들에도 “총장상 파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검찰은 해당 혐의의 제목에서 “표창장 위조”라고 지칭하고, 본문에서도 결론은 “표창장을 만들었다”로 쓸 수밖에 없었으면서, 어딘가에는 ‘총장상’을 끼워넣고 싶어 애를 쓴 결과가 이렇게 “총장상 파일”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허위 주장까지 쓴 것이다.

 

요컨대 검찰이 공소장에 “총장상 파일”을 거론한 부분은 실제 사실이 아닌 가공의 허위 서술이다. 표현조차 어색한 허위 주장임에도, 검찰은 무리함을 무릅쓰고 공소장에 ‘총장상’이란 표현을 억지스럽게 우겨넣은 것이다. 이런 짓을 왜 했을까?

 

공소장은 검사가 피의자의 혐의사실을 기재해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재판 절차의 시발점이 되는 서류이자, 검사가 판사를 자신의 프레임 안으로 설득해 끌어들이려는 첫 시도다. 즉 검사는 수없이 많은 법조기자들의 일제 합창으로 급조하여 여론을 왜곡시키는 데에 성공했던 거짓 ‘총장상’ 프레임으로 재판부까지 낚으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소 전에 이미 언론들이 수없이 ‘총장상’이란 허위 지칭을 남발하여 재판부 판사들에게 영향이 없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검찰이 공소장에까지 같은 허위 서술을 더한 것은, 당연히 재판부에 ‘총장상’이 마치 당연한 사실인 것처럼 각인시키는 효과를 불러올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허위의 ‘총장상’ 프레임이 실제 정경심 교수 재판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유일한 최성해 ‘총장상’ 언급, 재판부 질문의 대답이었다

 

앞서 살펴봤듯이, 최성해는 2019년 ‘조국 사태’ 당시의 수없이 많은 언론 인터뷰들을 하면서도, 언론들이 동양대 표창장을 가리켜 지칭하던 대로 ‘총장상’이라고 발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최성해의 입에서 “총장상”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단 한번뿐이다. 2020년에 들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였다.

그것도 스스로 언급한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총장상’을 거론한 재판부의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아래는 최성해가 정경심 1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2020년 3월 공판을 취재한 민중의소리 기사의 내용 일부다. ☞ 검찰의 ‘조국 딸 표창장 위조’ 논리 부정한 최성해 전 총장의 증인신문 (이 공판을 취재한 다른 어떤 기자들도 이 대목을 기사화 하지 않았다.)

 

또한 재판부가 “조 씨가 받은 것이 총장상이냐, 상장이냐”고 묻자, 최 전 총장은 “상장이다”고 했다가 “총장상”이라고 번복했다. 이어 재판부가 “대학원에서 요구하는 총장상인 것이냐, 아니면 일반적인 사람에도 부여될 수 있는 상장이냐”고 묻자, 최 전 총장은 “잘 모르겠는데, 다 똑같다”며 얼버무렸다.

 

 

재판부가 최성해에게 ‘총장상’을 거론한 사실을 기사화한 ‘민중의소리’. (민중의소리)

 

 

보다시피 이 대목에서 공식 지칭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에 한참 어긋나는 ‘총장상’이란 잘못된 지칭을 재판부가 언급한 사실부터 매우 부적절하다. ‘총장상’이라는 표현이 실제 의미와 다른 엉뚱한 지칭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재판부의 이 질문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총장상은 상장의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전혀 별개의 문건이란 말인가. 혹시 ‘총장상이냐 표창장이냐’라든가 ‘총장상이냐 봉사상이냐’라고 물었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었겠지만,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엉터리 질문을 던짐으로써 재판부는 증인 최성해를 당황시키기만 했다.

 

이러니 최성해가 질문을 던진 재판부의 의중을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상장”이라고 답한 후에 ‘원하는 답이 이게 아닌가’ 싶어 다시 “총장상”이라고 번복했을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또 재판부의 질문에 최성해가 대뜸 ‘상장’이라는 답부터 나왔던 것은, 그가 이전의 숱한 언론 인터뷰들에서 한사코 ‘총장상’ 지칭을 피하려 했던 것과 같은 이유, 즉 봉사 표창장 정도에 ‘총장상’이라 지칭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여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편, 이어진 재판부의 질문 “대학원에서 요구하는 총장상인 것이냐”는, 경우에 따라서는 꽤 유의미한 질문이긴 했지만, 동양대 전직 총장 최성해에게서 답이 나올 수 없는 황당한 질문이었다. 동양대는 조민 씨가 지원한 대학원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질문은 오히려 최성해가 아닌 서울대나 부산대 의전원 증인들에게 던졌어야 마땅했다. 그랬더라면 ‘표창장이 서류평가 기준 통과에 도움이 됐느냐’ 같은 지극히 단편적인 질문보다는 훨씬 더 심층적인 대답을 이끌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명한 질문만이 정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문은 오직 오답만을 유도할 뿐이다.

증인을 ‘총장상’ 프레임에 가두는 엉터리 질문을 꺼내든 순간, 임정엽 재판부는 증인에게서 오답을 유도한 것이다.

 

 

유죄 판결에도 영향 미친 ‘총장상’ 프레임

 

이처럼 부적절한 ‘총장상’이란 지칭을 직접 거론해 질문까지 던진 데에서, 재판부가 실질적으로 ‘총장상’ 프레임의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고, 그에 대해 작은 문제의식조차 없었음이 확인된다.

 

그러면 혹시 이렇게 재판부의 뇌리에 박힌 ‘총장상’ 프레임은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매우 불행히도, 실제로 그랬다.

 

1심 판결문 전체에서 ‘총장상’을 거론한 부분은 여러 곳인데, 그중 대부분은 곽상도의 ‘총장상 내역’ 공문을 지칭한 것이었다. 

그런데 단 한 군데, 사실 인정과 무관하게 재판부의 판단을 명시하면서 ‘총장상’을 거론한 부분이 있다. ‘서울대 의전원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논거에서다.

 

“지원자가 특정 단체나 교내에서 주관하는 소규모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보다 장관상, 시·도지사상, 대학교 총장상 등을 받은 경우 평가에 있어 더욱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 정경심 1심 판결문 중 ‘서울대 의전원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판단 일부.

 

 

그런데 여기서 언급한 “장관상, 시·도지사상, 대학교 총장상“ 같은 기재 제한 사항이 있었던 것은, 이 부분에서 따지고 있는 서울대 입시가 아닌, 별개의 다른 혐의인 부산대 입시에서였다. 재판부는 부산대 의전원의 요구사항을, 전혀 상관 없는 서울대 입시 관련 혐의에 갖다 붙이고, 유죄 판단으로 가는 한 논거로 활용한 것이다.

 

게다가 이 ‘장관상, 도지사상…’ 운운은 언론 보도들에서 법조기자들이 ‘총장상’ 프레임과 직결시켰던 부정적 이미지였다. 2019년 9월 당시 언론들은, 실제로는 1년이나 시기 차이가 있어 관련성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2013년의 표창장 위조의 동기로서 2014년의 부산대 입시가 관련성이 있는 것처럼 쓰는 기만적 서술을 했었다.

더욱이, 2014년에 조민 씨가 서울대에 제출한 자기소개서의 수상기록 란에는, ‘총장상’은커녕 ‘총장’조차도 전혀 기재되지 않았다.

 

판결문에서 위와 같이 ‘대학교 총장상은 평가에 긍정적 요소’라고 판시한 바로 다음 페이지에, 실제 서울대에 제출했던 자기소개서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동양대학교 인문학영재프로그램 표창장”이라고 되어 있고, ‘주최, 주관’으로도 ‘총장’ 언급 없이 “동양대학교”라고만 되어 있다.

 

 

 

 

물론 해당 표창장의 사본이 함께 제출되었으므로, 서울대의 서류평가 위원들이 굳이 유심히 살펴봤다면, 표창장의 수여자 명의가 ‘동양대 총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는 있었다. 하지만 부산대와 달리 수여자 자격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던 서울대 의전원의 평가위원들의 입장에서는, 주요 평가 항목도 아닌 수상 기록에 대해 별도 첨부된 표창장 사본을 유심히 살펴보고 수여자 명의가 ‘총장’임을 주목할 마땅한 이유나 동기가 없었다.

결국, ‘총장상을 받은 경우 평가에 더욱 긍정적’이라고 한 판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심증 형성 과정이 전혀 아닌, 거짓 프레임에 유도되어 재판부의 심증이 황당무계한 수준으로 왜곡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류 영향 적었다’ 증언 반대로 판시한 판결문

 

더욱이, 이 같은 임정엽 재판부의 판단은, 1심 법정에 출석한 서울대 의전원 신찬수 교수의 증언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신 교수는 2014년 조민 씨의 서울대 의전원 지원 당시에, 교무부학장으로서 의전원의 입시 사정업무를 총괄한 바 있는 중요 증인이었다.

조국 부부의 딸 조민 씨는 이 서울대 의전원 지원에서 1차 서류전형에 통과한 후 2차에서 불합격 되었었다. 이런 이유로 해당 혐의에 대한 검찰의 공소 요지는 ‘서울대 의전원의 1차 서류전형 업무를 방해했다’라는 것이었다.

 

이 신 교수는, 앞서 2019년 검찰 조사 당시 ‘조민 씨가 인턴증명서 같은 증빙서류가 많아 1단계 전형에 합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느냐’라는 검찰의 질문에,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답했던 검사 측 증인이었다.

 

 

서울대 의전원 신찬수 교수는 검찰 진술과 달리 서류평가 영향이 적었다고 증언했다. (중앙일보)

 

 

그런데 2020년 5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신 교수는, 증인석에 앉아 검사 측 주신문에서 ‘이전의 자신의 진술을 수정하고 싶다’며, 폭탄 선언을 했다. ☞ "조민, 서류심사 좋은 점수" 증언했던 교수, 법정서 말 바꿨다  ☞ [조국·정경심 재판 LIVE③] 조국 딸 '스펙의 힘' 어디까지?…검찰·정경심 격돌 

 

검찰 조사 당시에는 다른 지원자들의 점수를 보지 못한 상황이라 추정적 답변을 했던 것이라며, 조민 씨의 서류평가 순위는 높은 편이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사실 진술을 수정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법정에 왔습니다. 검찰 조사 당시에는… 서류 평가에선 유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진술을 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법정에 오기 전에 제가 각 항목별로 이 학생의 점수 순위 계산을 해봤습니다.…조 씨 성적은 136명 중 108등에 해당하는 성적이었습니다."

 

이어서 변호인 측 반대신문에서도, 신 교수는 ‘지원자의 경력이 많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건 아니지 않냐’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시인하면서, ‘오히려 경력이 많으면 진위 여부에 의심이 들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라고까지 답했다.

 

그런데, 1심을 맡은 임정엽 재판부는 이 같은 신찬수 교수의 증언을 황당하게 왜곡해 판결문에 기록했다. 신 교수가 2019년 검찰 조사 당시의 진술을 자신의 진술로 인정한 사실까지만 판결문에 싣고, 정작 그 진술을 정면으로 뒤집었던 사실과 그 내용은 기재하지 않고 통째로 빼버렸다. 재판부가 증인의 증언을 ‘차 떼고 포 떼고’ 편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증언의 전체 취지를 정반대로 기재한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신 교수는 증인 출석 당시, 검사 측의 ‘조씨의 허위 인턴 증명서가 심사위원들에게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지 않냐’라는 유도성 질문에도, ‘제가 교수님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 심사위원이 어떤 평가를 줬을지 말하기 어렵다’라고 답했었다.

 

그런데도 임정엽 재판부는 위 판결문에서 보다시피 “신찬수의 법정진술에 의하면”이라면서 “증빙서류가 실제로 평가위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라며, 사실상 정반대로 판시하면서도, 실제 증언과 정반대로 판시하는 데 대해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본 연재에서 대체로 익명으로 써온 다른 증인들과 달리, 신찬수 교수의 실명만은 그대로 싣는 것은, MBC와 연합뉴스 보도 등에서 이미 실명이 공개된 이유도 있지만, 이 같은 임정엽 재판부의 왜곡 판시가, 검찰 진술을 뒤집으면서까지 진실을 밝히려 애썼던 신 교수의 명예를 훼손시킨 결과가 된 것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일임한다는 ‘자유심증주의’ 조항이다. 그런데 이같이 법정 증언 내용을 자의적으로 편집, 왜곡해 유죄 판단의 사유로 삼는 행위까지도 ‘자유심증주의’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까.

 

또 왜 법원은 이 같은 말도 안되는 엉터리 판시를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더 쌓기만 했을까. 증거와 법리에 따른 공정한 재판이 아닌, 여론에 눈높이를 맞춘 것 아니었을까.

 

그 여론은 자연스레 생긴 여론이 아니었다.

법조기자들과 최성해 등이 조직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여론이었고, 그 배후에는 대목대목마다 검찰이 있었다.

결국 검찰의 전방위적인 여론몰이 작전이 법원의 판단을 좌지우지한 것이다.

 

 

 

박지훈 IT 전문가jeehoon.imp.par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