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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통령 귀에 ‘엉터리 경제이론’을 속삭이는가

道雨 2024. 1. 29. 09:00

누가 대통령 귀에 ‘엉터리 경제이론’을 속삭이는가

 

 

 

“장관님들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님이 (반도체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계셔서.”

 

지난 15일 열린 이른바 ‘민생토론회’ 세번째 시간에 첫 토론자로 나선 이우경 에이에스엠엘(ASML)코리아 사장이 한 말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저도 전문가이긴 합니다만, 입시에 대해서는 (윤석열 대통령께) 제가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2023년 6월19일 당정협의)이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윤 대통령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토론회 서두에 16분에 걸쳐 한 발언으로 미루어보면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윤 대통령은 어떤 일이든 아주 강한 자신감을 갖고 추진한다. 문제는 엉터리일 때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경제 관련 사안도 예외가 아닌데, 올해 들어 계속 외치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황당함마저 느끼게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말은 윤 대통령의 ‘후배 검사’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그는 지난해 10월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불법 공매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일요일이던 11월5일 금융위원회는 임시회의를 열어 올해 6월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예상을 뒤집은 일이었다.

이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공매도에도 순기능이 있어서, 지나치게 제약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한국 증시를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공매도 제한’을 꼽아온 것을 짚은 것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 첫날 코스피지수가 5.7%, 코스닥지수가 7.3% 폭등했다. 이차전지주를 대표하는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은 상한가(30%)까지 올랐다.

그 뒤 윤 대통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입에 달고 다닌다. ‘세금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등장한다.

 

정부는 지난해 말, 주식 양도세 과세 때 과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인지 판단하는 보유 주식 시가총액 기준액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올렸다. 윤 대통령은 1월2일 증권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2025년부터 과세하기로 돼 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의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선진국에선 증권거래세를 매기지 않고, 투자 소득에 과세한다. 우리나라도 그 방향으로 가려고 오래전부터 한 걸음씩 내디뎌온 것이 금투세다.

대통령의 ‘금투세 폐지’ 발언은 막 취임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렸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내면서 주식 양도세 범위 확대 등 자본소득 과세 강화를 추진했던 최 부총리는 1월8일 “금투세 폐지는 1400만 투자자를 위한 감세”라고 말을 바꿔야 했다.

 

윤 대통령은 1월17일 금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고, 개편 의사를 내비쳤다.

이날 발언은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한번도 그런 연구 결과를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부자들 세금 깎아주려는 것을 ‘주식 투자자들을 위한 것’으로 포장하려다 금을 밟고 만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꽤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2월 자본시장연구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이란 보고서를 냈다.

실증분석 결과, 미흡한 주주 환원 수준, 낮은 수익성과 성장성이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나왔다.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도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설명력은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상한 말을 계속하고, 정책은 꼬이고, 정부 부처는 수습하느라 고생한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못하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 가운데, ‘경제·민생·물가’를 이유로 꼽는 사람이 가장 많다. 대규모 부자 감세가 족쇄가 되어 재정정책을 기둥으로 한 경제정책이 먹통이 된 상황을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7월8일부터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올해 들어서는 민생토론회를 직접 주재하고 있지만, ‘부자’ 지지자를 위한 선심 쓰기를 민생정책이라고 포장해 내놓는 게 대부분이다.

 

더는 속을 사람이 없는 그런 엉터리 논리를 대통령 귀에 속삭이는 이들을 쳐내지 못하는 한, 윤 대통령도 이 나라 경제도 앞날이 아득하다.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올인’한 1월 한달 동안, 공매도 금지의 약발도 다하고, 주가는 큰 폭 하락했다.

조금이라도 깨닫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마는.

 

 

정남구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