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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썰’에 휘둘린 세제 개악

道雨 2024. 1. 29. 09:07

근거 없는 ‘썰’에 휘둘린 세제 개악

 

 

 

윤석열 대통령이 연말과 연초 쉴 새 없이 우리나라 세제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높이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주주의 연말 매도 폭탄을 막아 증시 변동성을 줄이겠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1월2일에는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내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공식화했다. 국민 자산 형성이 그 명분이다.

이어 17일에는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개최한 4차 민생토론회에서,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상속세 완화 뜻을 내비쳤다.

 

증시 변동성 감소, 국민의 자산 형성 기여,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 있다면 부자 감세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고려해볼 만한 조치들이다. 하지만 내세운 근거들은 논리적 정합성이 없고, 실증적으로도 입증된 바 없다.

 

 

먼저, 주식 양도소득세 완화 조치가 정당화되려면, 세금을 피하려는 대주주의 연말 폭탄 매도와 이로 인한 주가 폭락 현상이 실재해야 한다. 하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 주식을 헐값에 급매할 대주주는 없다. 합리적인 대주주라면 시간을 두고 소량씩 매도해 손해를 최소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정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주주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저가 매수 기회를 노리는 다른 투자자들의 매수 주문이 곧바로 쇄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주장은 실증적으로도 뒷받침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마지막 2영업일 제외) 개인은 6조4천억원 상당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2021년 12월 순매도 금액인 11조7천억원과 비교해서는 크게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올린 효과로 볼 수는 없다. 2019년 12월과 2022년 12월 개인 순매도 금액은 각각 5조1천억원과 2조2천억원으로 대주주 기준이 50억원인 2023년에 비해 오히려 더 적었고, 2020년 12월에는 개인이 1조9천억원을 순매수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연말 순매도가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개인은 코스닥 시장에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12월에 주식을 순매도했다. 하지만 코스닥 지수는 2022년 연말에만 하락했고, 2019, 2020, 2021년 연말에는 모두 상승했다. 개인의 연말 순매도 규모가 가장 컸던 2021년 연말에 코스닥 지수는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개별 종목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12월 순매도 금액이 가장 컸던 3개 코스닥 종목을 최근 5년간 연도별로 찾아 살펴본 결과, 주가가 상승한 경우(10건)가 하락한 경우(5건)보다 훨씬 더 많았다.

 

한편, 금융투자소득세가 시행되지 않으면 주식 양도소득이 5천만원 이상인 부자만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 따라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가 ‘부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자산 형성에도 도움을 주려면 주가에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 하지만 학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가는 오히려 하락할 수 있다.

금융투자소득세와 같은 자본이득세 미시행은 시행했을 때 비해 유통시장에서 주식에 대한 매입 수요를 늘려 주가를 올릴 수도 있지만, 차익 실현 매물을 늘려 주가를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효과는 다수의 해외 연구를 통해 모두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

 

 

끝으로 상속세 완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책이 되려면, 상속세 완화 이후 지배주주 일가가 주식 가치 제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가늠해보기 위해 2000~2023년 중 사망한 대기업 집단 지배주주 일가 36명의 75개 회사 상속 주식의 가격 움직임을 사망 2개월 이후(상속가액은 상속 개시일 전후 2개월간의 종가 평균으로 결정) 시점부터 살펴보았는데, 주가 상승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상속가액이 이미 확정되어 더는 주가를 낮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주주 일가가 주식 가치 제고에 나서지 않는다는 증거다. 상속세 완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심으로 국민 자산 형성을 지원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싶다면, 근거 없는 ‘썰’에 현혹되어 부자 감세에 집중하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기업 거버넌스 개혁에 정진하길 바란다.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