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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가 ‘김건희 디올백’에도 머리 끄덕일까

道雨 2024. 1. 30. 12:33

오동나무가 ‘김건희 디올백’에도 머리 끄덕일까

 

 

[강기석 칼럼] 나라를 무너뜨리는 뇌물의 ‘형통함’

 

 

 

 

나는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월 30일 ‘민들레’에 <김건희 '박사님'의 롤모델>이란 제목으로, 그가 아주 먼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약 100여 년 전에 태어나 70년 전에 죽은 에바 페론이란 여성 정치인을 연상시킨다는 글을 썼었다.

그녀는 1945년 결혼한 군인 출신 정치인 후안 페론이 이듬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덕에 아르헨티나 영부인이 됐다.

실질적으로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든 그녀는 남편보다 유능했으며, 남편보다 훨씬 더 인기가 높았다. 그녀가 자궁암으로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남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에바 페론, 테오도라 황후, 명성황후, 이멜다 마르코스…

 

                                                                    *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 위키피디아

 

 

 

하지만 나는 영부인으로서의 에바 페론이 아니라 그녀의 성장기에 더 주목했다.

에바는 시골 농장주와 그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딸로 인정을 하지않아, 청소년기에 이를 때까지 가난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세 때 무작정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출을 감행한 그녀는, 타고 난 미모를 무기 삼아, 자기의 앞길을 이끌어 줄 것 같은 남자들과 스스럼없이 관계를 가졌고, 조금이라도 실속이 없으면 가차없이 떠났다.

 

에바는 여러 명의 남자 품을 전전하며, 삼류극단의 배우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삶을 시작했으나, 성공을 향한 물불 가리지 않은 노력 덕분에 영화배우, 라디오 성우 등으로 차츰 영역을 확장해갔다.

그리고 1940년 경 마침내 작은 방송국을 소유한, 어느 정도 유명한 연예인으로 그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화려한 사교술을 익히고, 권력의 속성을 스스로 깨치며 성공의 최종 방정식을 정치에서 찾은 것은, 젊은 날에 겪었던 바로 이런 인생역정을 통해서였을 것 같다는 것이 내 해석이었다.

 

 

그런데 강미숙 칼럼니스트는 김건희 영부인의 활약상을 몇 달 더 지켜보더니, 5월 2일 역시 ‘민들레’에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름의 정체성>이란 제목의 칼럼을 써서, 김건희 영부인을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거의 대등한 권력을 행사했던 테오도라 황후와 비교했다.

테오도라 황후는 외설적 연기로 인기를 구가하던 무희 출신 창녀였다는 점, 황제의 조카였던 유스티니아누스의 눈에 들어, 귀족이 하층민 여성이나 유흥가 여성과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을 폐지하며 결혼했다는 점, 제위를 계승하는 대관식에서 황제와 나란히 왕관을 받았다는 점 등으로 널리 회자되곤 하는 여성이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테오도라를 자신과 대등한 제국의 통치자로 임명하고, 신하들에게 두 사람의 이름으로 충성서약하게 했으니, 공동황제인 셈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과 의견이 다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철시키려 했으며, 남편 재위 중 제정된 법령에는 거의 대부분 자신의 이름도 올렸다.

그뿐 아니라 외국 사절단을 접견하고, 이웃 통치자들과 서신을 왕래하는 등, 황제와 대등한 정치적 종교적 지위를 누렸다고 한다.

 

그녀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니카반란 진압사건이다. 서로마 고토 수복 원정으로 인한 과도한 세금에 지친 시민들이, 전차경주가 열리는 히포드롬에서, 법무장관과 재무장관 파면, 나아가 황제 폐위를 주장하자, 겁에 질려 도망가려는 황제를 따끔하게 꾸짖으며 돌려세우고, 무자비하게 진압함으로써 오히려 황제권을 강화한 것이다.

그녀는 권력의 본질과 자신의 위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여성이었던 모양이다.

 

 

마리 앙투와네트의 단두대까지 끌어들인 망발

 

                                                                     * 마리 앙투와네트. 위키피디아

 

 

 

그 후 또 시간이 흘러가면서, 김건희 여사를 (진령군이란 무당과 어울리면서 바보 왕을 농락했다는 점에서) 명성황후, 혹은 (극진한 명품 사랑꾼이었다는 점에서) 이멜다 마르코스와 비교하는 의견들도 나타났는데, 최근 들어 드디어 마리 앙투와네트를 소환하는 망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내가 이를 망발이라 보는 이유는, 첫째, 마리 앙투와네트가 단두대에 오른 것은, 왕정을 무너뜨리려는 혁명세력의 필요 때문이었지, 그녀가 특히 호화로운 생활과 무질서한 사생활로 대중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앞뒤가 바뀐 것이다.

그녀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따위의 멍청한 말도 하지 않았으며, 당시의 모든 나라 궁정문화 수준에서 볼 때 특히 사치했다거나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증거가 없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사건’ 역시 그녀는 범죄자들에게 이용을 당했을 뿐이다.

 

 

둘째, 따라서 그녀에게 걸린 죄목은 국고 낭비, 정부의 부패, 외세(오스트리아)와의 결탁, 남편(루이 16세)를 타락시킨 혐의, 백성에 대한 기만 등, 무시무시한 대역죄였지, 고작 주가조작, 뇌물수수 같은 파렴치한 혐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셋째, 마리 앙투와네트는 백성의 자비를 구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무지 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사과를 하거나 특검을 받으라고 했다면 백번이라도 그리 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그러한데도, 한동훈 국힘당 비대위원장을 띄우려거나 심지어 윤석열 정권을 반대하는 이들까지도 김경율 국힘당 비대위원의 ‘앙투와네트 발언’에 환호작약 응원을 보내는 것 같다.

나 역시 윤 정권을 반대하지만, 그런 내가 볼 때는 역사에 무지한 자가 그냥 한 번 내지른 ‘비교의 오류’의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나는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사건을 접하면서, 역사적 관점은커녕 법적 도덕적 관점도 아니라 정신분석학적 호기심이 더 강하게 일었다.

 

뇌물이란 본디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돈 많은 자들과 “권력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을 연결시키는 매개물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뇌물을 준 목사가 반대급부로 뭘 특별히 원한 것도 없고, 뇌물을 받은 여사가 뭘 특별히 해 준 것도 없다. 만난 자리에서 자기가 대북문제에서도 뭔가 할 수 있고, 금융기관 고위급 인사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식의 장광설을 내뱉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선물을 받았을까.

그저 만나주는 것인데, 왜 굳이 그 대가로 선물을 받아야만 했을까?

사람들이 놀리듯 명품백이 ‘문을 따고 들어가는 열쇠’ 역할을 한 것인가?

 

 

* 27일 MBC 장인수 기자가 서울의 소리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는 지난해 9월 13일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지하에 위치한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300만 원 상당의 디올(Dior) 명품 파우치를 선물 받았다. 김 씨가 받은 쇼핑백에 디올 글자가 보인다. 2023.11.28. 서울의 소리 유튜브 채널 갈무리

 

 

 

부자가 왜 가난한 자의 물건을 탐할까?

 

어떤 여성들은 평생 명품백을 하나라도 가지고 싶은 욕망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김건희 여사는 이미 명품백을 열 개, 혹은 수십 개 넘게 소유하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투아니아 국빈방문 때 수행원들을 대거 대동하고 명품숍을 휩쓸고 다니는 모습까지 본 터 아닌가. 그러니 그에게 또 다른 명품백이란, 한계효용가치가 대단히 떨어지는 물건일 것이란 뜻이다. (그러니 디올백도 국고에 보관하기 좋게 뜯지도 않은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김 여사는 그가 가진 권력은 차치하고라도 경제적으로 재벌 못지않은 부자 아닌가. 도이치모터스를 통해 모녀가 함께 무려 23억 원을 챙겼고, 코바나컨텐츠를 통해 수십 억의 후원금을 챙겼고, 규모를 가늠할 수도 없는 무수한 부동산을 소유한 것도 모자라, 그 땅을 또 수십, 수백 배 뻥튀기 하고자 고속도로 종점까지 바꾸려 시도(한다는 의혹을 받을)할 만큼 통이 크지 않은가.

도대체가 고작(!) 300만 원짜리 물건에 혹할 만큼 가난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부자가 필요도 없는 물건을 가난한 이에게서 받아 챙긴 이 해괴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던 중, 문득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한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동나무가 세 번 머리를 끄덕이다>라는 아주 짧은 우화이다.

 

왕과 왕비와 재상이 ‘참말’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내기를 했다.

각자 속마음을 거짓없이 밝히되, 궁정 안 뜰에 선 오동나무 한 그루가 고개를 끄덕여 그 말의 참과 거짓 여부를 가려 줄 것이다.

재상이 먼저 말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누리는 저도, 가끔은 왕이 안 계시다면 내가 왕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오동나무가 끄덕거렸다.

왕비가 말했다.

“아무 부족함 없는 여인네인 나도, 가끔 젊고 잘 생긴 신하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답니다.”

오동나무가 또 한 번 끄덕거렸다.

마지막으로 왕이 말했다.

“내가 권력이 부족하겠느냐, 여인이 부족하겠느냐, 돈이 부족하겠느냐. 그런데도 누가 내게 귀중한 무엇인가를 슬쩍 가져다 바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구나.”

오동나무가 또 한 번 끄덕거렸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나라를 무너뜨리는 뇌물의 ‘형통함’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인 권력욕과 성욕, 물욕의 속성에 관한 이야기인데,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고 부러울 것 없는데도 뇌물을 받으니 좋더라는 왕의 ‘참말’에서, 김건희 여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만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덤으로 재상의 ‘참말’에서 요즘 벌어지는 ‘윤·한 권력쟁투’의 본질을 눈치 챌 수도 있겠다.)

 

그러나 뇌물은 위험천만한 것이다.

성서에 이르기를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 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잠언 17장 8절) 했지만, 때로는 그 형통함이 개인을 패가망신 시킬 수도 있고, 기업을 문 닫게 할 수도 있고, 나라를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케도니아의 필립대왕인가 하는 이는 “아무리 강한 요새일지라도 나귀에 금을 가득 싣고 가면 그 성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김건희 디올백’은 윤 정권의 몰락으로 가는 대문도 열어 제낄 것 같다.

 

 

 

강기석 에디터kks54223@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