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10년 걸린 금투세 합의 ‘물거품’ 될 판…“조세 형평 어긋나”

道雨 2024. 7. 12. 10:26

10년 걸린 금투세 합의 ‘물거품’ 될 판…“조세 형평 어긋나”

 

 

윤 대통령 제도 폐지 공식화 이어
이재명 전 대표도 “시행 유예” 시사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내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유예를 시사하면서, 왜곡된 과세 제도를 바로잡고 조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편이 아예 물 건너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여년에 걸쳐 정치적 합의까지 이룬 사안이,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관료집단의 무기력 속에 말짱 도루묵이 됐다는 얘기다.

 

금투세는 주요 정책 방향이 일부 이해집단과 이들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권·관료집단에 의해 어떻게 휘둘리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조세 정책을 비롯한 각종 정책 의사결정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례가 되리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1일 학계와 관가, 금융투자 업계 등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 전 대표의 발언으로 금투세 도입 및 시행은 사실상 물거품이 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전날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금투세 시행 시기를 고민해야 한다”고, 내년 금투세 시행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금투세 폐지 추진을 공식화한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이 전 대표까지 이런 입장을 밝히며, 금투세는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으리란 전망이 적지 않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 등을 고려하면, 정치권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반대하는 세금 얘기를 다시 꺼낼 유인이 적기 때문이다.

 

금투세 도입은 애초 정치권의 동의를 모아 추진된 조세 개혁 방안으로 받아들여졌다. 투자 수익에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 조세 정의에 부합할뿐더러, 거래마다 세금이 부과되는 증권거래세에 비해 선진적인 금융조세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당시 야당 의원이었던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금투세에 해당하는 소득세법 개정안과 증권거래세법 폐지안을 발의했고, 2020년 정부안 마련에 이어, 여야 합의에 의한 국회 통과까지 이뤄진 까닭이다. 여야는 ‘2023년 시행’에도 합의했으나, 현 정부 출범 직후 사정이 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금투세 시행 연기를 약속하고, 올해 초 한국거래소를 찾은 자리에서는 폐지 추진을 공식화하면서다.

기획재정부도 그간 대통령실과 여당 방침에 발맞추며, 금투세 시행으로 인한 주가 하락 가능성 등 시장의 공포를 부추기는 데 앞장서왔다. 여기에다 이를 견제할 이재명 전 대표마저 힘을 보탠 셈이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리 사회의 조세 정의 실현과 불평등 문제 완화 등을 위해 금투세가 가진 상징적 의미가 크다”며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마땅히 지켜야 할 조세 정책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투세는 국내 상장 주식 등의 양도차익이 연 5천만원, 이외 채권·펀드·파생상품 등의 양도차익이 연 250만원을 초과하면 초과액에 20% 세율(3억원 초과분은 25%)로 세금을 매기는 게 뼈대다. 근로소득·사업소득 등과 달리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국내 상장 주식(일부 세법상 대주주 제외)과 채권 거래 소득 과세를 확대하고, 새로운 상품이 등장할 때마다 땜질식으로 만들어온 금융상품 과세 제도를 대거 정비하는 의미도 크다.

 

금투세 도입 논의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금투세는 조세 형평뿐 아니라 미래의 재정 여력을 대비하는 등 여러가지 목적을 충족할 수 있는 커다란 제도 개편안”이라며 “여야 합의까지 했던 정책이 이처럼 무산되는 듯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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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금투세 유예론’, 민주당 경제정책 신뢰 흔든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 대해 “이런 상황에서 금투세를 예정대로 하는 게 정말 맞냐”며, 유예론을 제기했다.

원래 2023년 시행하기로 했다가 한 차례 유예해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는데, 한번 더 연기하자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금투세를 아예 폐지하자고 나서는 상황에서, 많은 개인·기관투자자들이 반대하고 있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와 세수 결손을 비판해온 민주당 기조와 어긋나고, 공정과세를 통한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모토와도 맞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금투세는 원래 증권·투자사들의 이익단체인 금융투자협회가 문재인 정부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에 제안해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모든 시장 참가자들이 내는 현행 거래세를 장기적으로 폐지하는 대신, 이익이 났을 때만 과세하자는 것이다. 증권·채권·펀드·파생상품에서 5천만원 넘는 수익을 냈을 경우 초과수익의 22%(3억원 초과 27.5%)를 세금으로 내는 제도다. 거래세를 없애 거래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공평과세 원칙을 관철하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도 채택하고 있다.

2022년 기준 금투세 과세 대상자도 전체 주식투자자 1440만명의 1%인 15만명가량으로 추산될 만큼 대상도 많지 않다.

 

애초 금투세 신설을 전제로 했던 증권거래세 폐지는 단계적 인하를 거쳐 내년부터 실시되고, 농어촌특별세(0.15%)만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 금투세를 또 유예하면 ‘거래세는 낮추고 고소득자에 대해 소득세로 대체한다’는 애초 세제 개편 방향 자체가 흔들린다.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이러한 세제 개편을 이끌어온 민주당이 ‘유예론’에 기우는 것은, 수권 정당으로서 정책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다.

 

시행을 앞두고 금투세 대상이 아닌 개인투자자들도 반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안 그래도 증시가 좋지 않은데 금투세까지 시행되면 더 많은 자금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 주가지수가 활황세를 보이는데, 유독 한국 증시만 소외됐던 것은, 선진적 제도 도입을 머뭇거렸던 탓이 크다.

민주당은 장기적 관점에서 ‘개미들’의 이익을 궁극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상법 개정(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을 앞장서 추진하고, 금투세도 예정대로 도입하는 방안에 힘써야 한다.

 

 

 

[ 2024. 7. 12  한겨레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