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수사 외압’에도 대통령실 연루 의혹, 진상 밝혀야
지난해 필로폰 74㎏을 밀반입한 마약 조직을 검거한 경찰이 관세청 직원들의 연루 혐의를 잡고 수사에 나섰으나, 상부로부터 압박에 시달렸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까지 언급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외압을 가한 핵심 경찰 간부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의 녹취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종호 전 대표는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에서 임성근 사단장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의 당사자다.
유사한 수사 외압 의혹에 이 전 대표가 공통으로 거론되다니 놀라운 일이다.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수사 당시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백해룡 경정은, 29일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외압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지난해 9월 중순 언론 브리핑이 예정돼 있었는데, 경찰서장이 저녁에 전화해 “‘용산’(대통령실)에서 이 사건을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이 사건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뉘앙스여서, 백 경정은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연기된 언론 브리핑은 지난해 10월10일 열렸는데, 이를 앞둔 10월5일 이번에는 지휘계통도 아닌 조병노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경무관)의 압박성 전화를 받았다고 백 경정은 증언했다.
“(조 경무관이) ‘세관 얘기 안 나오게 해주시는 거지요’라고 말했고, 대답을 안 하니 ‘관세청도 국가기관이고 경찰도 국가기관인데 서로 싸운 것으로 비칠 수 있지 않으냐, 제 얼굴에 침 뱉기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다음날에는 경찰 지휘부가 ‘사건 이첩’을 지시해 기존 수사팀이 모든 수사를 중단하기도 했다.
어느 모로 보나 관세청 직원 연루 사실을 덮기 위한 전형적인 외압이다.
그러나 조 경무관은 경찰의 자체 감찰을 받고 중앙징계위원회에 넘겨졌지만 ‘불문’ 처분을 받았다. 이후 경찰은 별다른 조처를 않고 있다. 당시 영등포경찰서장은 현재 대통령실에 근무 중이다. 외압 피해자인 백 경정만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외압이 가해진 배경과 경위, 이후 관련자에 대한 처분까지 모두 의혹투성이다.
조 경무관이 이종호 전 대표 녹취에 ‘승진 로비 대상자’로 언급된 사실은 의혹을 더욱 키운다.
대통령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는 증언까지 더하면, 채 상병 사건과 판박이다.
현재 백 경정의 고발로, 조 경무관 등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가 진행 중이다.
철저히 진상을 밝혀야 할 사건이다.
[ 2024. 7. 31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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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형사과장의 폭로, 수사외압 논란 마약사건 전말
다국적 마약조직 검거, 결정적 진술 확보에도 영장 기각... 서장은 브리핑 연기 지시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의 기시감이 드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지난 29일 열린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엔 백해룡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백 전 과장은, 대규모 마약사건 수사 결과 발표 직전, 경찰 고위 간부와 상급자들로부터 '세관 연루 가능성을 언급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백 전 과장의 폭로가 어떤 의미인지, 이 사건에 왜 대통령실(용산)이 등장하는지, 그동안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정리해봤습니다.
2023.10. 국내 유통 다국적 마약조직 검거
▲ 백해룡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이 10월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열린 ‘말레이시아 밀반입 필로폰 국내 유통 범죄조직 검거’ 브리핑 중 압수한 필로폰을 공개하는 모습.
지난해 10월,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약 2200억 원어치 마약을 국내로 들여와 유통한 다국적 마약조직을 검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들이 들여온 마약은 필로폰 74kg으로, 무려 246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해 7월 단순 투약자를 조사하고 필로폰 매수 과정을 역추적하면서, 대규모 범죄 조직의 범행을 포착했고, 전담 수사팀을 구축해 수사에 나섰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됐습니다. 한국, 말레이시아, 중국인으로 구성된 다국적 범죄 조직의 철저한 분업 구조, 나무 도마 등을 이용한 밀반입,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고 구매자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속칭 '던지기' 판매 방식 등은, 국내 마약 범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특히 필로폰 100kg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프 공항을 통해 국내에도 유입될 수 있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다행히 국내 거점 말레시이자 조직원이 검거되면서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나왔던 백해룡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은, 사건을 수사하고 브리핑했던 인물입니다.
2023.11. 마약 운반책의 폭로 "인천 세관직원 밀반입 연루"
하지만 해당 사건은 단순한 마약 밀수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한국일보>는 마약밀수에 세관 직원들이 연루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취재팀의 보도를 종합하면, 인천공항세관직원들은 밀반입 계획을 알고 있었고, 입국심사를 통과한 조직원들을 인천 세관 직원들이 먼저 알아보고 길을 안내했다는 것입니다.
영등포 경찰서 수사팀은 마약 운반책으로부터 "올해 1월 입국 때 세관 직원 4명의 도움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또 다른 말레이시아 조직원들도 세관 직원 4명을 언급했습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현장검증에서 확보한 공범의 자백은 결정적 증거"라고 했고, 이를 토대로 대규모 마약밀수에 연루된 인천세관직원들의 윗선까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마약과의 전쟁 선포했는데도 검찰은 영장 기각
영등포 경찰서의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벌어진 일 외에도 이상한 지점은 또 있습니다. 해당 사건 수사팀은 지난해 10월 마약 밀반입 사건에 연루된 인천공항세관 직원 4명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는데, 검찰은 같은달 20일 기각했습니다. 이후 수사팀은 자료를 보강해 10월 26일 영장을 재청구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수사팀의 부침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이 인천세관 컴퓨터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는데, 남부지검이 이를 두 번이나 반려한 것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천공항세관 직원 5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마약류관리법위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수사팀은, 세관 직원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해 폐쇄회로(CCTV) 등을 영상을 확보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어떤 컴퓨터에 자료가 저장돼 있는지 알 수 없다"라며, 영장을 반려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이 계속 기각되자,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은 지난 6월 서울남부지검에 담당 검사에 대한 직무배제 및 기피 요청문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남부지검 관계자는 KBS와 한 인터뷰에서 "경찰이 검사의 직무 배제와 회피를 요청할 관련 법적 근거가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경찰, 검찰, 용산까지... 대체 왜?
지난해 10월 수사 브리핑을 앞두고도, 외압으로 볼 만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023년 10월 5일, 영등포경찰서 백해룡 형사과장은 조병노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경무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조병노 경무관이) 자기소개를 먼저 하고, '세관 이야기 안 나오게 해주시는 거죠?' 말했고. 제가 대답하지 않으니 '관세청도 국가기관이고 경찰도 국가기관인데 기관끼리 싸우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제 얼굴에 침뱉기 아니냐'... (중략) 서울경찰청과 이야기해서 (세관 연루 여부가) 다 빠졌다고 했더니, 조 경무관이 '올바른 스탠스입니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정부를 엄청 공격할 텐데 우리가 야당 도와줄 있습니까' 하고 말했다."
조 경무관은 '임성근 구명로비 의혹'의 중심인물인 이종호 전 블랙인베스트먼트 대표의 녹취록에도 언급됐던 경찰이기도 합니다.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에 연루된 해병대 단톡방 멤버 중 한 명이 조 경무관의 승진을 로비했다는 의혹입니다.
조 경무관은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백 전 과장의 말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다만, 인천공항 세관장으로부터 사실 확인을 부탁받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 "제 생각이 짧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경찰서장께서 밤 9시에 전화해 심각한 어투로 말하셨다. 이 사건을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있다... 브리핑을 연기하라. (기자들과의) 신뢰가 깨지는 일이라 안 된다고 하니. 서장이 '지시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백 전 과장은 영등포경찰서 서장에게도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서장이 '이 사건을 용산에서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경찰서장의 전화를) 용산에서 아주 안 좋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영등포경찰서 서장이었던 A총경은 이후 용산 대통령실로 파견을 갔습니다(관련기사: "서장이 전화해서, 용산이 보고있다고..." 경찰판 '채해병 사건' 터졌다 https://omn.kr/29m21).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정부는 검찰·경찰·관세청 등 인력 840명으로 구성된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한다고 밝혔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마약범죄가 문재인 정부의 느슨했던 마약 단속 때문이라고 비판하면서 "검경이 똘똘 뭉쳐서 정보를 공유하면서 많이 잡아 내고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일선경찰서 형사들이 열심히 마약범죄를 수사하는데, 경찰서장과 경찰청 고위간부가 전화를 걸어 용산을 언급하고, 검찰은 영장을 기각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범죄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이 현실에서 그대로 이뤄지고 있는 셈입니다.
임병도impeter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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