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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조직원 입에서 출발한 ‘세관 연루 의혹’···증거가 관건

道雨 2024. 8. 8. 15:59

밀수조직원 입에서 출발한 ‘세관 연루 의혹’···증거가 관건

 

 

 

최근 정치권과 경찰 안팎을 뜨겁게 달구는 ‘세관 직원 마약 연루 및 수사외압’ 의혹은, 말레이시아 여성 두 명의 입에서 출발했다.

경찰은 마약 운반책 수사 과정에서 ‘세관 직원이 필로폰 밀수에 도움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 진술을 고리로 인천세관을 향했던 경찰 수사는 이후 수사외압 의혹으로,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했다.

 

수사팀을 이끌던 백해룡 당시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은, 이 사건을 광범위한 외압이 이뤄진 ‘제2의 채 상병 사건’이라 주장한다. 외압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들은, 세관 밀수 개입 의혹이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반박한다. 수사기관이 공표할 만큼의 객관적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무리한 수사였다는 게 반박 취지다.

 

경향신문은 필로폰 밀수 조직원의 경찰 피의자 신문조서와 판결문을 입수했다. 사건 시발점이 된 말레이시아 여성 두 명의 진술이 생생히 담겼다. 수사외압 의혹 논란으로 번지며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세관 마약’ 사건의 의문점들을 살펴봤다.

 

 

밀수 조직원 입에서 출발한 ‘세관원 마약 연루’ 수사

 

지난해 9월10일 영등포서는 말레이시아 밀수 조직원 A·B씨를 상대로 피의자 조사를 진행했다. 두 사람은 한 달 전 배송받은 필로폰 12㎏을 국내 유통조직에 전달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지난해 1월27일 오전 7시15분쯤 자신과 B씨, 인솔자인 중국계 이모씨를 비롯한 남성 6명이 몸에 각각 필로폰 약 4㎏을 배와 종아리·허벅지 등에 테이프로 감아 붙인 후 한국으로 입국했다고 말했다. A씨가 입국 직후 상황을 설명하면서, ‘세관 직원 개입 의혹’이 처음 나왔다. B씨도 이날 상황을 설명했다.

 

“…입국해 검역장을 통과하고 출입국에서 지문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일행들은 지문을 찍고 먼저 나가 있었고 저는 지문이 잘 안 찍혀 제일 마지막에 찍고 나갔다. 세관 신고서 제출하는 줄이 길었고 앞에서 누가 먼저 접근했는지 모르겠으나, 이○○이 세관 직원(또는 공항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2명과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A에게 물어보니까, ‘그들이 우리에게 출구를 알려준다’고 했다. 세관신고서를 제출하고 그 사람들을 뒤따라갔는데 그 사람들은 출구 앞에서 다른 곳으로 갔고, 이○○은 화장실을 갔다가 온다며, 저희에게 먼저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
-B씨의 신문조서

 

 

흔한 마약 밀수 사건이 ‘세관 직원 마약 연루 의혹’으로 비화하는 순간이었다. A씨와 B씨는 이후 택시를 타고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 도착한 뒤, 필로폰을 한데 모아 ‘한국인 보스’로 보이는 30대 남성이 탄 벤틀리 차량에 넣어뒀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진술

 

A씨와 B씨의 진술은 엇갈리는 대목이 있었다.

A씨는 진술에서 ‘입국심사를 거치지 않고 손쉽게 공항을 빠져나왔다’는 취지로 말했다. 통상 입국장으로 빠져나오는 세관 신고 구역에서는 입국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별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따로 검문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B씨는 검역장·출입국(심사)·세관 신고를 명확하게 구분해 표현했다.

 

세관 직원의 안내 범위 역시 둘의 진술이 미묘하게 달랐다. A씨는 “공항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택시 승강장까지 안내했다”고 했지만, B씨는 “출구까지만 안내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기억도 두 사람이 엇갈렸다. A씨는 “아마 정식적으로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면 적발됐으리라 생각된다”고 했는데, B씨는 “정상적인 절차를 다 마치고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경찰이 ‘정상적인 입국심사절차를 마치지 않았는데 따로 빼내 줬던 것인가’라고 재차 묻자, B씨는 “출입국 통과까지는 정상적인 절차였다고 생각하고, 이후 세관 통과를 대기하면서 나타난 세관 직원 덕분에 절차를 수월하게 진행했던 것 같다”고 말한 뒤 “하지만 세관신고서는 제대로 제출했다”고 했다.

 

‘세관원 연루’ 밝혀낼 객관적 증거가 관건

백해룡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과 형사들이 지난해 10월1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나무 도마에 은닉해 밀반입된 필로폰을 공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A씨와 B씨는 “한국에 도착하면 출입국 직원이 도울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입국했다고 진술했다. ‘세관 직원이 도울 것’이라는 기대와 추측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진술 외의 객관적 증거 확보가 현재 진행형인 경찰 수사의 관건인 이유다.

A씨는 “제가 생각할 때, 한국 보스와 공항직원이 관계가 있어 서로 연루된 것으로 생각된다”며 “‘한국 보스가 힘이 커서 출입국 직원과 말이 모두 됐기 때문에, 입국할 때 문제는 없을 것이니까 걱정 말라’는 말을 (말레이시아 보스가) 했다”고 진술했다.

B씨도 “A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처음 말레이시아에서 마약을 제 몸에 붙이던 중국 남자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고 했다.

 

자기 발언과 배치되거나, 이후 상황과 충돌하는 진술도 있었다. 경찰이 “입국 전 말레이시아 보스에게 위 내용에 대해 들은 말은 없냐”고 묻자, A씨는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출입국 직원과 협의가 돼 입국은 문제 없다고 말레이시아 보스가 말했다’고 한 자신의 직전 발언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던 세관 직원을 지목하기도 했다. 경찰은 두 사람이 인천공항에서 당시 입국을 도운 세관 직원을 지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술 조서에서 A씨는 ‘사진을 보면 해당 직원을 알 수 있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당시 겁이 나서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 당황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B씨는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안경 쓴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정치 쟁점 된 ‘세관 마약’ 의혹…어떤 결과여도 정쟁 불가피

 

경찰 지휘부는 일관되게 이 사건에서 제기된 ‘외압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무리한 수사에 대한 관리·감독 차원’이라는 취지로 말해왔다. 진술 외의 뚜렷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관 직원 연루 혐의를 공식화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이를 조정하는 과정이었다는 게 지휘부 입장이다.

지휘부는 당시 마약수사 과정 지휘계통에 없던 조병노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 일선 수사팀에 연락해 사건 축소를 요청한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보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말레이시아인 A씨와 B씨에게 필로폰을 공급받은 조직원들은 차례차례 검거하는 성과를 냈다. 사진은 지난 8월 필로폰 밀반입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경기 안산시 주택가 골목에서 밀반입 조직원들과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 영등포경찰서 제공

 

 

수사를 주도해온 백 전 과장은 구체적인 외압을 받았고, 압수수색에 필요한 영장을 받지 못하는 등, 수사에 부당한 간섭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 전 과장 측은 지난 7일 관세청이 ‘외압설’을 부인하는 설명자료를 내자 “구체적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나아가 외압사건이라는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야당은 이번 사건을 ‘경찰판 채 상병 사건’으로 명명했다. 수사외압 의혹을 풀겠다며 국회 청문회까지 예고했다. 경찰이 아직 사건을 수사 중이지만,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정치적 해석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수사 외압 논란이 일기 전, 이 사건은 국내 마약 수사에서 유례없는 성과로 평가되는 사건이었다. 단순 투약자와 판매자를 검거하면서 시작된 수사는, 상선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 국제 필로폰 밀매 조직을 포착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국내로 배송된 필로폰 약 20㎏ 분량을 사전에 압수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통상 1~2㎏ 압수는 엄청난 성과로 평가되며, 특별승진 대상에 거론되곤 한다.

이 사건 수사팀에선 현재까지 특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팀장은 교체되고 수사팀은 사실상 해체·변경됐다.

A씨와 B씨는 필로폰 수수 혐의 2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6년이 확정됐다. 다른 조직원들의 정체와 필로폰을 몸에 부착해 입국한 사건 전모 등은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세관 직원 개입 여부를 명확히 가릴 ‘한국 보스’의 정체도 파악되지 않았다.

 

지난 5일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가 지연되는 이유에 대해 “수사가 어렵다”며 “외압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