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일본제철, 강제동원 유족에 배상”…1심 뒤집고 책임 인정
소멸시효 시작점 대법 판례 따라
* 가이지마 오노우라 탄광에서 일하는 조선인 광부. 행정안전부 제공
법원이 전범기업인 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잇따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1부(재판장 김연화)는 22일,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 주식회사)에 강제 동원돼 일하다 숨진 민아무개씨의 유족 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제철은 유족들에게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민씨는 1942년 2월9일 일본제철 가마이시 제철소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동원됐다가, 그해 7월14일 도망 나왔다. 원고인 자녀들은 1989년 숨진 민씨를 대신해, 2019년 4월 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의 쟁점은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소멸시효의 시작점을 언제로 볼 것인지였다. 민법은 피해자가 손해 혹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청구권이 소멸한다고 정한다.
앞서 강제노역 피해자 4명은 일본제철을 상대로 2005년 국내 법원에 소송을 냈고, 2심 패소 뒤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돼, 2018년 10월 재상고심에서 최종 승소했다.
유족들은 이 사건이 확정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소멸시효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일본제철은 대법원이 피해자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한 2012년을 손해배상청구권 발생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일본제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1심의 소멸시효 만료 주장을 뒤집고 승소 판결했다.
이날 같은 법원의 민사항소6-2부(재판장 지상목)도 강제노역 피해자 정아무개씨의 자녀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제철은 1억원을 지급하라’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 22일 서울중앙지법 1별관 앞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하며, 소멸시효 계산 기준을 2018년 10월30일로 명시한 뒤, 최근 법원은 이런 취지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상황이다.
원고를 대리한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이날 선고 뒤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분들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구체적 피해 내용을 직접 육성으로 재판부에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해 소송이 어려웠다. 일본제철 역시 그런 허점을 이용해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해왔다”며 “기존에 제철소에서 일하신 분들이 남긴 자료들과 피해자가 일하다 도망했다는 기록 등을 종합해 가혹 행위들을 입증을 해서, 종합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두 사건 모두 1심에서 소멸시효 관련 전향적 판단을 해달라고 했지만 인정이 안됐고, 다행히 지난 연말에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와서 2심에서 승소 판결이 나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일본제철은 강제동원 청구서가 쌓이고 있다. 강제집행을 논의해서 강제동원 기업들이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사죄하고 배상하도록 계속 요구할 것”이라며 “정부는 마치 제3자 변제를 통해 끝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추가 소송 판결들이 계속 잇따를 것이다. 정부는 판결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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