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있던 삐삐 3000대가 ‘펑’…일상을 공포로 바꾼 모사드 작전
* 지난 17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수퍼마켓에서 과일을 고르던 한 남성의 가방(원 안)에 있던 무선호출기가 폭발하는 동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왔다. 사진은 폭발 직전의 모습이며, 이 남성은 폭발 후 그대로 쓰러졌다. [로이터=연합뉴스]
레바논 전역에서 지난 17일(현지시간)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무선호출기(beeper·일명 삐삐) 수천 대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최소 12명이 숨지고 2800여 명이 다쳤다. 희생자 중에는 어린이 등 민간인도 포함됐다.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다짐해 중동에 또 한 번 확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레바논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날 폭발은 오후 3시30분부터 1시간가량 계속됐고, 대다수 피해자는 호출이 울려 화면을 확인하는 도중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쓰러졌다. 피해자들은 손이나 얼굴, 복부를 다쳤으며 두 눈을 심각하게 다친 이들도 많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보건당국을 인용해 부상자 가운데 약 300명은 위독한 상태라고 전했다.
김경진 기자
레바논 국민은 이날 집과 수퍼마켓, 길거리, 차 안, 이발소 등 일상 공간에 느닷없이 발생한 폭발의 공포에 속수무책으로 떨어야 했다. 이날 SNS상에는 수도 베이루트의 수퍼마켓에서 한 남성이 갖고 있던 가방 속 무선호출기가 폭발하면서 쓰러지는 영상이 돌았다. 한 목격자는 CNN에 “도로가 완전히 피투성이였다. (베이루트) 교외 일대는 마치 좀비 도시를 방불케 했다”고 말했다.
폭발한 무선호출기는 올해 2월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표적 공격을 우려해 휴대전화를 폐기하라고 경고한 후 헤즈볼라가 대만 골드아폴로사에 주문해 레바논 전역에 배포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헤즈볼라가 5000대의 호출기를 수입했고 이 중 3000대가 폭발했다고 보도했다.
어린이도 숨져…“이스라엘, 삐삐작전 발각 우려에 일찍 터뜨린 듯”
하지만 이 호출기에는 ‘트로이의 목마’가 숨겨져 있었다. NYT는 미국 당국자 등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헤즈볼라가 수입한 대만 기업 골드아폴로사의 무선호출기(AR924 기종)에 소량의 폭발물과 원격 스위치 등을 심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골드아폴로사측은 이날 성명을 내고 호출기 제조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기반을 둔 ‘BAC 컨설팅 KFT’라는 업체가 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부다페스트의 BAC 주소지에는 회사 이름이 A4 용지에 인쇄돼 유리문에 붙어 있었을 뿐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김영옥 기자
폭발 시점과 관련해 미국 악시오스는 당국자를 인용해 이스라엘에서 최근 헤즈볼라가 무선호출기 작전을 눈치챌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이에 지난 16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등은 발각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당장 작전에 착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폭발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헤즈볼라는 18일 성명을 통해 “레바논 국민을 학살한 적(敵)에 대한 가혹한 대응”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헤즈볼라가 직접 보복하거나 이란-하마스-후티(예멘) 등 친이란 ‘저항의 축’이 함께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헤즈볼라는 지난달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고사령관 푸아드 슈크르가 숨진 데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미사일과 드론 등으로 공격했다.
미국 국무부는 17일 “우리는 이 작전에 대해 알지 못하고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해 악시오스는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호출기가 폭발하기 몇 분 전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세부사항을 밝히지 않은 채 “레바논에서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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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터진 다음 날 무전기 폭발…레바논서 최소 20명 사망
전면전 위기 고조
무선 호출기(삐삐) 동시 다발 폭발에 이어 워키토키 폭발로 레바논 전역에서 최소 20명이 사망하고 45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전면전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각) 레바논 보건부가 전자기기가 폭발해 최소 20명이 사망하고 45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전날 레바논과 시리아 일대에서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2800명 가량이 부상을 입은 동시 다발 폭발 공격이 일어난 지 하루 만이다.
헤즈볼라 알 마나르 텔레비전은 레바논의 여러 지역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고, 헤즈볼라 관계자는 에이피에 사용 중인 무전기(워키토키)가 폭발했다고 전했다.
레바논 통신부는 폭발한 무전기가 일본 회사인 아이콤(ICOM)에서 만든 단종된 모델(IC-V82)이라고 밝혔다고 시엔엔(CNN)은 전했다. 이 무전기는 공인된 대리점에서 공급되지 않았고, 공식적 허가나 보안 기관의 심사를 거치지 않았다고 통신부는 설명했다.
전면전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워키토키 폭발 이후 진행된 시엔엔과의 인터뷰에서 압둘라 부 하비브 레바논 외무장관은 ‘전쟁의 서막’으로 접어드는 신호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지금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 헤즈볼라와 대화했던 방식으로는 대화할 수 없다. 그들은 매우 심하게 타격을 입었고 보복이 그들에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17일과 18일 연이어 레바논 지역 헤즈볼라를 겨냥한 호출기·무전기 테러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의를 감추지 않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영상 성명을 통해 “(레바논 접경지인) 이스라엘 북부 주민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18일 가자 지구에 투입됐던 98사단을 이스라엘 북부로 재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중심이 북쪽(레바논 접경지)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쟁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전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18일 이번 공격과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미국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후스 유엔 사무총장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에 자제할 것을 촉구했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0일 이번 사건 관련한 회의를 연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번 공격은 대규모 군사작전 앞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라며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공격으로 헤즈볼라는 요원들과 지휘관들의 신원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신중하게 바라보던 헤즈볼라가 약해보이는 온건적 대응과 광범위한 갈등을 부를 강경 대응(보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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