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계엄령 설', 8년 전 박근혜 탄핵국면 데자뷔
민주당서 의혹 제시하자 대통령실·여권 펄쩍
"민주당 과반이니 계엄 해제 쉽다"며 "음모론"
2016년 판박이 주장, 뒤로는 기무사 계엄실행 문건
2024년 군·경 통제할 국방·행안장관에 충암고 임명
윤석열은 "반국가 세력" 운운하며 위기 조장
민주 "윤 탄핵 대비 군 동원하나 국민들 우려"
시민사회도 우려…"계엄음모 윤석열 탄핵"
2016년 11월 탄핵 정국과 계엄령
"대통령이 국민과 싸우기로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국민이 조사를 받으라 명하는데, 청와대 앉아서 인사권을 행사하고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시켜 물리적 충돌을 준비시키고, 시간을 끌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사정기관에 (대통령을) 흔들지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다음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돌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지막지한 대통령입니다. 하야하십시오. 하야하지 않으면 우리는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정지시키는 조치에 들어갈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의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을 20여 일 앞둔 지난 2016년 11월 18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당시 청와대와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정치선동' '유언비어'라며 강력 반발했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브리핑을 자청해 "제1 야당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이라 비난했고,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전혀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를 공식적으로 이렇게 퍼뜨릴 수 있느냐"며 "명백히 밝히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지지 단체인 박사모는 추 대표를 허위사실유포혐의로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또한 새누리당 정진석 당시 원내대표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는 헌법 제77조 5항을 근거로, "계엄 선포권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계엄 해제권은 추 대표에게 있다"면서 계엄령이 '유언비어'라고 비판했고, 극우·수구 매체인 <조선일보> 등은 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다는 논리를 그대로 인용해 새누리당과 입을 맞췄다.
그러나 2017년 3월 박근혜 탄핵 당시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위수령, 비상계엄 등을 선포해 국회와 언론, 시민사회를 통제한다는 상세한 실행 계획이 담긴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이 2018년 4월 문재인 정부에서 발견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문건으로 인해 당시 계엄령 준비는 사실로 밝혀졌고, 군과 검찰은 합동수사단(합수단)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다. 이 영향으로 시·도지사가 군 병력 출동 지원을 요청하는 위수령은 68년 만에 폐지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박근혜 탄핵 4년 뒤인 2021년 4월 21일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하야를 선언하면 그 순간 끝이 아닌가. 박 전 대통령은 (하야 대신) 탄핵을 택했는데, 당시엔 헌재에서 기각될 걸로 기대했던 것 같다.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에 있는 모두가 100% 기각이라고 봤다"며 "기각되면 광화문 광장 등이 폭발할 것 아닌가. 그래서 기무사령관한테까지 계엄령 검토를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계엄령 준비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2024년 8월 계엄령 데자뷔
그리고 7년 뒤인 2024년 8월 비슷한 모습이 정치권에서부터 반복되고 있다.
육군 4성 장군 출신인 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전당대회에서 "용산에 있는 경호처장 김용현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했다"며 "윤석열 탄핵으로 갈 때, 혹시 계엄령을 선포해서 군까지 동원하는 것 아니냐 국민적 우려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재차 "이러다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무너지지 않고 군을 동원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계신다"고 언급했다.
2024년 계엄령 의혹은 2016년 탄핵 정국 당시 계엄령 제보를 한 김민석 최고위원 발언에 의해 더욱 확산됐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2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저는 박근혜 탄핵국면에서 계엄령 준비서의 정보를 입수해서 추미애 당시 대표에게 제보했던 사람 중 하나"라면서 "박근혜 정권이 강력히 부인했지만, 결국 사실로 드러났었다. 지난 총선 때는 국정원 공작준비를 미리 경고했었고, 이번 국군정보사 기밀유출을 밝혀냈었다"고 했다.
이어 "차지철 스타일, 야당 입틀막 국방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교체와 대통령의 뜬금없는 반국가세력 발언으로 이어지는 최근 정권흐름의 핵심은 국지전과 북풍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탄핵국면에 대비한 계엄령 빌드업 불장난을 포기하기 바란다, 계엄령 준비시도를 반드시 무산시키겠다"며 "유신독재와 부마항쟁, 5·18을 딛고 일어난 21세기 최고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조잡하게 계엄령 따위는 꿈도 꾸지 마라"고 경고했다.
김 최고위원은 사전 예방차원에서 미리 경고하고 있다는 점도 확고히 했다. 김 최고위원은 23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계엄령에 대해 "전반적인 종합적 판단을 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적정단계에서 적정수준에 맞는 경고를 하고, 또 저희 입장에서는 대비를 하고, 무산시켜야 한다는 입장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저희들이 상황에 따라서 더 말씀을 드리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23일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도 "이 정권의 핵심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김건희 여사나 이런 분들 입장에서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정권 바꾸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감옥도 가기 싫을 것이다. 아주 간단한 본질이다. 절대 감옥 안 가겠다. 이게 핵심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세력이라고 보고 있다"며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 예를 들어 계엄 같은 걸 포함해서, 이것들을 미리 경고하고 대비하고 무산시키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에 대해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2016년 판박이다. 대통령실 정혜전 대변인은 26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계엄령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괴담"이라고 일축했다. 정 대변인은 "(민주당은) 총선 전에는 계엄 저지선을 달라고 선거 운동을 하더니 지금은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과반 의석을 얻고도 괴담에 기대 정치를 하고 있다"며 "도대체 괴담 선동의 끝은 어디냐"고 했다. 그는 "(민주당은) 이번에도 아무런 근거를 못 내놓고, 상황에 따라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며 "도대체 국가안보를 볼모로 사회 불만을 야기해 얻으려는 정치적 이익은 무엇이냐"고 했다.
여당도 대통령실과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계엄령 의혹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는 막말이자 망언"이라며 "안보 사안까지 정쟁으로 끌고 가겠다는 궤변"이라고 했고, 국민의힘 소속 국방위원회 위원들은 "이재명 2기 지도부가 현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우리 군까지 정쟁으로 몰고 가고 있다"며 "개딸들의 지지를 등에 업기 위해 안보 사안까지 정쟁으로 끌어들여 국민에게 저질 막말을 퍼붓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 77조에 따라 국회 과반인 야당이 계엄을 해제할 수 있으므로 음모론이라는 논리조차 8년 전과 똑같다. <조선일보> 출신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170석의 민주당이면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휘한다고 해도 국회가 충분히 이를 해제할 수 있다"며 "이를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음모론을 펼친 것이라면 국민에 대한 겁박"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박상수 대변인은 계엄령 의혹에 대해 "황당무계하다"며 "야당이 이렇게 계엄 운운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 시절 '기무사 계엄 문건' 수사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인가"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당시 검사를 37명이나 투입하여 90곳 넘게 압수수색해가며 100일 이상 수사를 벌였음에도, 그 어떤 내란 음모의 흔적도 찾지 못했다"며 "결국 전임 박근혜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불쏘시개로 삼았을 뿐"이라고 했다. 계엄 문건 수사가 미진한 점을 근거로 들어 문건의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계엄 위험성 눈 가리는 여당과 언론들
그러나 계엄령의 실체를 검증하고 그 위험에 대해 사전에 경고해야 할 언론들은 여권에 발맞춰서 탄핵이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는 식으로만 비판하고 있다. 일간지인 <세계일보>와 경제지인 <한국경제>, 문화일보 계열사인 <디지털타임스> 등은 비슷한 논조의 사설을 내고 증거 없는 계엄령이라면서, △윤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도 170석인 민주당이 해제가 가능다는 점 △2018년 군·검 합동수사단의 계엄 수사로 기소된 기무사 전 참모장 등이 항소심에서 무죄가 된 점 등을 예로 들었다. 국민의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것이다.
국회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이 계엄령 해제가 가능하다는 국민의힘과 보수·수구 언론의 주장은 계엄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한 '2017년 3월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과 이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에는 국회의 계엄해제 시도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상세하게 열거돼 있다. 문건에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계엄해제 가결 시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정이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계엄해제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직권상정 및 표결 저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특히 문건에는 △계엄사령부(현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가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 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시 구속수사 한다는 경고문을 발표하며, △합동수사본부장(방첩사령관)이 통제하는 합수단이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을 집중 검거해 의결 정족수 미달을 유도한다는 상세한 계획이 나와 있다. 야당 의원들을 현행범으로 사법처리해 애초에 의결 정족수를 달성할수 없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문건에는 중앙매체(방송 22개, 신문 26개, 통신 8개) 지역매체(방송 32개, 신문 14개)를 비롯한 방송과 신문, 뉴스통신사의 보도내용 사전 검열과 불온내용 차단 등의 계획도 담겨 있다. 언론인들은 계엄사 경고를 받으면 기자실 출입금지와 보도증 회수, 현장취재 금지, 출국조치(외신매체), 형사처벌 등을 받게 된다. 또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집회와 단체행동도 차단된다.
이를 막을 국민의 기본권도 당연히 제한된다.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의 특별조치권에 의해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에 대한 국민의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6개 기계화사단과 2개 기갑여단, 6개 특전사 여단과 특전사 707대대, 경찰 등이 전국을 통제하며, 국회와 정부청사, 헌법재판소 등도 모두 군과 경찰 병력에 의해 통제된다. 계엄하에서는 계엄군사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므로 공정한 재판도 기대할 수 없다.
실제로 과거에 짜여졌고 현재도 군에서 비상 상황에 대비해 가지고 있을 계엄 계획 내용에 대해선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야당이 헌법에 따라 해제할 수 있다는 국민의힘과 보수·수구 언론의 '순진한' 주장은 실제 계엄의 위험성에 대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행위에 불과하다.
쿠데타 모의 제대로 수사도 못했는데 축소
2018년 군·검 합수단 수사로 기소된 기무사 전 참모장 등이 항소심에서 무죄가 된 점 등을 근거로 박근혜 탄핵 당시 계엄 문건이 별것 아니었다는 식의 주장 역시 계엄 문건의 실체를 가리고, 그 위험성을 덮을 뿐이다. 이러한 여당과 보수·수구 언론의 주장은 전임 정부와 야당이 실행 가능성도 없는 계엄 문건을 과도하게 수사했다는 게 골자인데, 수사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이들의 주장이 국민 기만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계엄 문건을 수사한 민·군 합수단의 수사 내용을 종합하면, 계엄 문건 작성은 박근혜 탄핵 전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국방비서관실 행정관에게 계엄 관련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고,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이 조현천 기무사령관에게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조 사령관은 한 장관 지시를 받고 기무사 3처 수사단장 기우진을 책임자로 한 계엄령 문건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도록 했고, 그곳에서 계엄 문건이 만들어졌다. 김 실장이나 한 장관이 계엄령을 지시한 배경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 등도 의심된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직접 승인한 조현천 등에 대한 불기소 이유 통지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통지서에 따르면 조 사령관은 우편을 통해 "한민구 장관의 구체적 지시에 따라 위수령과 계엄을 검토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며, 한 장관이 계엄문건 작성 전후인 2017년 2월 22일과 2017년 3월 6일 청와대를 방문한 정황도 여럿 확인된다. 또한 당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도 조 사령관과 2017년 2월 10일쯤 청와대에서 만난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대통령과 독대가 가능한 조 사령관이 2016년 12월 5일 쯤 청와대를 방문한 정황도 드러났다.
박근혜 탄핵이 이뤄졌던 2017년 3월 황교안 전 권한대행의 행사에 조 사령관이 4회 참석한 정황도 합수단 수사에서 확인됐다. 이는 박근혜 탄핵 선고 이후에도 계엄령을 검토했다는 정황이다. 계엄문건은 탄핵 소추가 기각되는 상황과 인용되는 상황을 모두 시나리오로 상정하고 있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계엄 선포가 가능했던 만큼 실행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검찰도 이에 대해 "조 전 사령관이 황교안 전 권한대행에게 계엄 문건을 보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여당 지적대로 민·군 합수단은 104일 동안 대통령 기록관과 육군본부, 기무사, 관계자 자택 등 90곳을 압수수색하고 204명을 조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른바 '키맨'인 조 사령관이 2017년 12월 미국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 사령관이 연락을 끊고 사라졌고, 합수단은 2018년 10월에야 조현천의 여권에 대해 무효화 조치를 하며 인터폴 수배요청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 조 사령관에 대한 조사도 없이 '윗선'인 김관진 전 실장과 한민구 전 장관을 피의자로 소환해 조사를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강하게 부인하면서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조 사령관의 형이 있는 미국 시카고 교회에 조 사령관이 나타났다는 제보도 있었고, 국회로부터 미국에 있는 조 사령관 형의 소재지도 확인됐지만 합수단은 접촉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민구·김관진·박근혜·황교안 등 윗선에 대한 수사를 위해 조 사령관의 증언은 필수였지만, 그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합수단은 핵심 관계자들을 기소하지 못했다. 미국으로 도피한 조 사령관에겐 기소 중지 처분이 내려졌고, 함께 고발됐던 한민구 전 장관, 김관진 전 실장, 전직대통령 박근혜 씨, 황교안 전 권한대행에 대해선 참고인 중지 처분이 내려졌다.
당시 합수단장이었던 노만석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장(현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은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조 사령관에 대해 "기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 조 전 사령관은 내란음모죄가 맞다"면서 "객관적으로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 계엄 문건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됐고, "살아서 한국에 돌아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던 조 사령관은 극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지난해 자진 귀국해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이 조 사령관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조 사령관 귀국 당시 군 안팎에선 갑작스러운 귀국과 무혐의 처분 배경에 육사 38기 동기이자 정권 실세인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았다. 군 정보당국 관계자는 <시민언론 민들레> 기자와 만남에서 "조현천의 귀국 배경에 김용현 경호처장이 있다는 첩보를 당시 방첩사 요원들이 수집했다"고 전했다. 계엄문건의 또다른 핵심 관계자이자, 김 처장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김관진 전 안보실장 역시 그해 5월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에 임명됐다.
그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을 보면 국민의힘과 보수·수구 언론 주장대로 계엄 문건을 침소봉대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수사도 못하고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분하거나 정부 고위직에 영전시킨 것이 문제인 셈이다. 오히려 쿠데타 시도를 일벌백계하지 못함으로써 8년 만에 또다시 '계엄령 의혹'을 낳게 하는 것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부추기는 계엄령 분위기
계엄령 분위기를 부추기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야당이 계엄령을 우려하고 있음에도 대통령의 발언은 거침없다. 마치 계엄령이 사실이라는 양 전쟁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의 탄핵이 있을 경우, 북한과의 국지도발을 빌미로 계엄을 선포할 것이란 시나리오까지 언급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호전적인 발언은 의혹만 키운다. 특히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이 시작된 19일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계엄령 의혹에 불만 붙였다.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합니다. 또한, 교통, 통신, 전기, 수도와 같은 사회 기반 시설과 원전을 비롯한 국가중요시설은, 우리 사회의 안정을 지키고 전쟁 지속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시에도 기능을 유지해야 합니다."
아울러 민주당이 지적한 것처럼,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내정하는 것 역시 계엄령 의심을 키운다. 김 처장은 대통령의 충암고등학교 1년 선배로, 대통령을 24시간 밀착수행하며 정권 실세로 불린다. 대통령 관저 이전에 깊이 개입하는 등 대통령과 은밀한 곳까지 공유하는 사이로,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또한 그는 육군 3성 장군 출신으로 그동안 윤석열 정권의 군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식 현 국방부 장관도 김 처장과의 정보사령부 인사 알력싸움에 밀려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야권에선 계엄과 관련해 김 처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앉혀 친윤 코드로 군 인사를 함으로써 대통령이 군을 안정적으로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계엄의 또다른 축인 경찰을 통제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대통령의 충암고등학교 후배라는 점은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특히 계엄법에 따르면 국방부장관 또는 행정안전부장관은 비상계엄 및 경비계엄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의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 군경 모두 대통령이 신뢰하는 인물들로 채운다는 점은 계엄령을 염두에 둔 것 아닌지 의심을 갖게하는 대목이다. 이밖에 계엄문건에서 통제 대상으로 명시하는 국가정보원도 최근 '친윤' 검찰 출신 인사의 하마평이 돌고 있어 계엄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키우고 있다.
시민사회에선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 계엄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잠재우기엔 이미 의심 자체가 상당히 커진 양상이다. 각종 집회에선 전쟁 준비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실제 지난 24일 서울 중구 시청역 앞에서 열린 촛불대행진에선 "전쟁조장 계엄음모 윤석열을 탄핵하라"라는 구호마저 터져나왔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우려에도 계엄령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2016년에 했던 주장을 복사하듯 '정치선동' '음모론' 주장만 반복할 뿐이다. 8년 전의 재탕이다.
시민들의 의심만 커지고 있다. 서울촛불행동 김지선 공동대표는 "위기에 몰린 윤석열이 선택할 최후의 선택지는 전쟁과 계엄일 것이라 확신한다"며 "그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어떤 분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이런 이야기도 하는데, 윤석열 정권 2년, 우리의 상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며 "그러니 계엄도 선포할 무도한 정권 아니냐"고 했다. 촛불행동 김민웅 상임대표는 "정치권에서도 이미 윤석열 정부가 벌일 계엄 작전의 가능성을 눈치채고 있다"면서 "그러니 윤석열 정부를 타도하는 것을 하루라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mindle1987@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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