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형 광고' 과태료 반대하는 신문협회의 몰염치
야당 과태료 부과 법안 내자 또 '자율정화' 내세워 반대
독자 속이는 '기사형 광고' 매년 증가…작년 1만건 넘어
매경·한경 등 경제지 최다…조중동 주류언론도 상위권
소비자 피해 늘고 언론불신 커져도 '자율정화' 타령만
미국·독일 등에선 규제 엄격하고 거액 벌금 물리기도
‘기사형 광고’라는 것이 있다. 기사 형식을 갖춰 쓴 광고를 말한다. 제목이 붙어있고 본문은 육하원칙을 흉내낸 기사체로 되어있으며, 기자 이름(바이라인)까지 붙어있어 언론사 기자가 쓴 기사로 보이지만, 실은 기사가 아닌 광고다.
신문, 방송, 포털에 나오는 기사형 광고는 업종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아파트 분양 광고, 금융상품·투자모집 광고, 제약 광고, 음식 광고, 의류 광고 등, 온갖 상품과 서비스를 광고하고 홍보하는 데에 ‘기사형 광고’가 동원된다.
독자(시청자)들은 광고를 기사로 생각해 ‘믿고’ 물건을 샀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생긴다.
언론이 자신의 신뢰를 이용해 독자를 속여 물건을 파는 것이니, 이것은 엄연히 ‘사기’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언론계에서는 이를 ‘기사형 광고’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부르지 말고, ‘기사 위장 광고’ ‘기사 빙자 광고’ ‘기만 광고’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사형 광고’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 언론사들이 대대적으로 시작한 광고 ‘기법’이었다. 광고 수익에 목을 맨 언론사와 언론의 신뢰를 이용해 제품 판매를 늘리려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2019년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아파트 분양 내용의 '기사형 광고'가 가장 많았다. 아파트 건설시장에 돈이 넘쳤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의 돈벌이 수단이 된 ‘기사형 광고’는 갈수록 늘고 있다. ‘기사형 광고’ 적발 건수는 연간 수백 건에서 수천 건으로, 최근엔 연간 1만 건을 넘기고 있다.
‘기사형 광고’를 적발해내는 일을 주로 하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기사형 광고’로 주의 조치를 받은 건수는 무려 1만 485개다. 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신문위원회, 언론중재위 등 다른 단체와 기관들이 심의·적발한 사례까지 합치면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기사형 광고’는 계속 늘고 있고, 피해도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보도에 따르면, 한 기업이 투자자들을 속여 175억 원을 챙긴 사기극에 경제전문 언론매체의 ‘기사형 광고’가 동원됐다. 투자자들은 언론의 보도를 믿고 투자했다가 돈을 날린 것이다.
금융·투자 관련 기사 뿐 아니라, 아파트 분양 기사, 제약회사 기사, 레저 관련 기사들도 과장·허위 내용을 담은 ‘기사형 광고’인 경우가 많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모두 다 ‘언론 보도니까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가 피해를 보는 것이다.
사기 범죄인 ‘기사형 광고’를 내는 언론매체는 황색언론이나 듣보잡 언론이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주류 언론사들이다.
광고자율심의기구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사형 광고’로 ‘주의’ 조치를 가장 많이 받은 매체에는, 파이낸셜뉴스(730건), 매일경제신문(590건), 헤럴드경제(584건), 한국경제신문(580건), 서울경제(340건) 같은 유명 경제신문들이 이름을 올렸다.
종합일간지 가운데에는 조선일보(429건)가 단연 1위이고, 동아일보(341건), 중앙일보(238건)도 상위권이다.
탐사보도매체인 ‘뉴스어디’가 지난해 11월 보도한 기사를 보면, 조선일보는 경찰이 사기 혐의로 수사 중인 기업을 ‘유망 산업’으로 소개하는 ‘기사형 광고’를 1개면을 털어 크게 게재한 적도 했다.
주류 신문들이 건설회사의 뒷돈을 받고 아파트 분양 광고를 기사처럼 쓰는 일도 허다하다.
주류 신문들은 ‘특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런 ‘기사형 광고’를 수시로 게재하고 있다.
그나마 한겨레(2건), 한국일보(25건), 경향신문(33건)이 적발 건수가 적긴 하지만, 거의 모든 주류 언론이 ‘기사형 광고’로 주의조치를 받고있다.
심지어 정부로부터 매년 수백억원을 지원받는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도, 3년 전 ‘기사형 광고’ 수천 건을 포털에 게재했다가 적발돼, 언론계에 ‘기사형 광고’ 논란을 다시 불러오기도 했다.
‘기사형 광고’가 줄어들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오히려 늘고 있는 것은, 적발돼도 이에 대한 적절한 제재나 처벌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기사형 광고’를 심의하고 적발하거나 제재하는 단체·기구는, 광고자율심의기구, 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신문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등이 있지만, 제재에 아무런 강제성이 없고, 경제적 불이익으로 이어지지도 않아, 실효성이 거의 없다.
‘자율 규제’라는 이름으로 ‘주의’ ‘권고’ 같은 하나마나한 솜방망이 제재를 내릴 뿐이다.
연합뉴스가 3주 동안 2000여 개의 ‘기사형 광고’를 포털에 게재했다가 적발됐을 때에도, 겨우 ‘32일간 포털 노출 중단’ 정도의 제재로 끝났다. ‘기사형 광고’가 사라지거나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증가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실효성 없는 솜방망이 제재 때문이라는 지적이, 언론학계, 언론 감시단체와 매체 등에서 수없이 많이 제기됐지만, 언론계는 '자율규제'만 내세우고 변하지 않았다 .
‘기사형 광고’를 규제하고 강력 제재하는 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엔 신문법에서 ‘기사형 광고’에 대해 2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도록 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지금의 국민의힘)이 단 한 번의 논의 없이 법률을 개정해 과태료 부과 항목을 없애버렸다.
‘기사형 광고’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이 지난 8월 다시 국회에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과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이 ‘기사형 광고’에 과태료 2000만 원을 부과토록 하는 개정 법률안을 낸 것이다.
그러자 한국신문협회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신문협회는 ‘기사형 광고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언론의 자율정화 의지를 무력화’하는 ‘과거로 퇴행’이라며 반대 입장을 냈다. 의원들이 발의한 과태료 부과 법률개정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신문협회에게 묻고싶다. 염치(廉恥)를 아는가?
‘기사형 광고’의 피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기사형 광고’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자들은 그냥 광고보다 ‘기사형 광고’를 더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자를 속이고, 피해자를 양산해내고, 언론 신뢰가 무너져도, 돈만 벌면 괜찮다는 것인가?
한국신문협회가 ‘기사형 광고’ 과태료 부과에 반대하며 내놓은 이유도 어이없다. 이미 광고자율심의기구를 비롯해 여러 기관·단체가 ‘기사형 광고’를 심의하고 있는데, ‘기사형 광고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은 무슨 말인가?
현재의 심의와 제재는 ‘명확한 기준’ 없이 이뤄져왔다는 뜻인가?
그럴리가 있겠는가?
광고자율심의기구에는 ‘기사형 광고’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있다.
이 규정에는 “기사형 광고에는…‘광고’임을 명시하여야 한다”(제1조), “기사형 광고에는 ‘취재’ ‘편집자주’ ‘독점인터뷰’ ‘취재 000기자’ 등 기사로 오인하게 유도하는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제3조)고 되어있다.
한국신문협회가 운영하는 신문윤리위원회도 ‘신문윤리강령’ ‘신문윤리실천요강’ ‘신문광고윤리강령’ ‘신문광고윤리실천요강’ 등에, 기사와 광고를 분리하고, 광고임을 표기토록 하는 등 ‘기사형 광고’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언론의 자율정화’를 또 들고나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과태료를 부과하자는 것은, 그동안 십수년간 실효성 없는 자율정화만으로는 ‘기사형 광고’ 폐해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정화로 ‘기사형 광고’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과태료 같은 제재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해외에서도, 언론의 ‘기사형 광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자율제재에 맡기되, 자율제재로 해결되지 않는 심각한 경우에는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법으로 무거운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2022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기사형 광고 현황과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방송통신위원회(FCC)는 2017년 후원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방송한 방송사에 1330만 달러(약 175억)의 벌금을 부과했다. 독일에서도 광고와 기사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을 경우, 최대 10만 유로(약 1억 39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토록 하고 있다.
‘기사형 광고’에 대한 과태료 부과는 없던 것을 새로 하려는 것도 아니다. 시행되었다가 논의나 합의도 없이 폐지된 법을 다시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국민의힘인 한나라당이 2009년 폐지했지만, 과태료 부과 입법은 2018년 민주당 김병욱 의원, 2021년 이수진·김의겸·정청래 의원은 물론, 2013년 새누리당 소속의 김세연 의원(새누리당)도 신문법, 표시광고법, 정부광고법 개정을 통해 되살리려 시도해온 바 있다.
한국신문협회는 조중동, 한겨레, 경향, 지역일간신문 등 대부분의 주류 신문사들과 뉴스통신사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최대 규모의 언론단체다.
언론사들의 이익단체이긴 하지만, 민간기업의 이익단체가 아닌 ‘언론사들의 단체’인 만큼,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야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이런 단체가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고 회원사들의 이익만을 좇는다면, 그것이 바로 ‘퇴행’이다.
언제까지 언론이 ‘기사 위장 광고’ ‘기사 빙자 광고’로 독자를 속이도록 방치할 것인가?
언제까지 ‘자율정화’를 핑계로 언론을 부끄럽게 만들 것인가?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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