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점령 중단' 유엔 결의안 표결 분석…뒤바뀐 미·중 역학
미국 리더십 퇴조…글로벌 사우스 '등 돌려'
중·러, 브릭스·아세안·중동·아랍권과 '발맞춰'
'아세안 10개국' 모두 미국과 정반대 결정
중국 저지 위해 동남아에 공들였지만 허사
프랑스·일본 찬성 눈길…G7 대오도 균열
유엔 "이스라엘, 팔 점령 1년 내 끝내라"
글로벌 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 상실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 흐름이 완연하다.
이런 흐름은 18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제10차 유엔 긴급총회에서 또다시 확인됐다.
60년 가까운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불법 점령을 1년 안에 중단할 것을 이스라엘에 요구하고, 거부 시 제재를 가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유엔 "이스라엘, 팔 점령 1년 내 끝내라"
점령지 생산품 수입 중단, 무기 제공 금지
이번 결의에는 또한 유엔 회원국을 상대로, 팔레스타인 점령지의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의 수입을 중단하고, 팔 점령지에 사용될 우려가 있는 무기나 탄약, 관련 장비를 이스라엘에 제공 또는 이전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정착촌을 불법적으로 구축해왔다.
당사국인 팔레스타인이 직접 초안을 작성한 이 결의안은, 이스라엘의 팔 지역 점령이 불법이라고 판단하고, 점령 행위를 가능한 한 빨리 중단하라는, 지난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권고를 바탕으로 삼았다.
이번 유엔총회 결의는 안보리 결의완 달리 국제법상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압도적 다수의 유엔 회원국이 1년이란 시한을 정해놓고, 이스라엘을 상대로 팔레스타인 점령을 끝내라고 요구했다는 점에서, 그 국제정치적 무게는 남다르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의 리야드 만수르 주유엔 대사는 "자유와 정의를 향한 우리의 투쟁에서 하나의 전환점"이라면서 "이스라엘의 점령은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하고, 팔 인민의 자결권은 실현돼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발신했다"고 평가했다.
124개국 찬성, 14개국 반대, 43개국 기권
프랑스·일본 찬성 눈길…G7 대오도 균열
표결 결과를 보면, 투표에 참여한 181개 회원국 중 중국을 포함한 124개국이 압도적으로 찬성했고, 미국, 이스라엘 등 14개국은 반대했다. 한국을 포함한 43개국은 기권했다.
작년 10‧7 하마스 기습테러 사건과 이스라엘의 가자 대학살 과정에서 드러났던 '일방적 옹호' 태도를 보면, 미국의 반대는 정해져 있었고, 이스라엘에 비판적이었던 중국의 찬성도 예고됐었다.
눈여겨볼 부분은 미국과 중국의 찬‧반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두 패권국 중 어느 쪽의 접근법이 글로벌 무대에서 더 설득력이 있고 공감을 얻고 있느냐다.
이런 측면에서 18일 유엔총회 표결 결과는, 미‧중의 글로벌 영향력을 가늠하기에 좋은 참고 자료다.
먼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을 보면, 팔 불법 점령 중단 결의안에 중국, 러시아에 서방 진영의 프랑스까지 찬성했다. 미국만 반대였고 앵글로색슨 동맹인 영국은 기권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프랑스가 중‧러 쪽으로 기울면서 형세가 뒤집힌 모양새가 됐다.
다음은 서방 선진 7개국(G7)의 향배다. 미국만 반대했고, 영국‧독일‧이탈리아‧캐나다 4곳은 기권했으며, 아예 동맹국인 일본과 프랑스는 찬성했다. 대오가 완전히 흐트러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정권이 '자위권'을 구실로 무자비한 보복 군사 공격을 통해, 1년도 안 된 기간에 가자 주민 4만1000명을 학살하고, 서안까지 공격을 확대하며 '대량 살육 행보'를 강행하는데도, 말로만 '휴전 중재' 운운하며 무기‧자금 지원을 계속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위선과 무능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G7 사이에서조차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리더십 퇴조…글로벌 사우스 '등 돌려'
중·러, 브릭스·아세안·중동·아랍권과 '발맞춰'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도국, 저소득국) 대변을 기치로 삼고, G7의 대항마로 떠오른 신흥경제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는 사정이 완연히 다르다.
브릭스 10개국의 경우 인도와 에티오피아가 기권한 것을 빼고, 브라질, 러시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원년 멤버는 물론, 올해 1월 가입이 승인된 이집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찬성표를 던졌다. 여기에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알제리, 방글라데시, 바레인,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태국 등 브릭스 가입 희망국들도 그 뒤를 따랐다.
그 누구의 지시에 따른 건 아니면서도, 이심전심으로 일제히 같은 결정을 내린 셈이다.
중·러의 입김이 강한 브릭스는, 초기 단순한 신흥경제국 모임에서, 작년 남아공 정상회의를 거치며, '지정학적 실체'로 탈바꿈해왔다.
브릭스는 다음 달 22∼24일 러시아 카잔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회원국 추가를 결정할 공산이 크다. 이는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브릭스의 영향력이 더 확대된다는 뜻인 만큼, 글로벌 사우스를 놓고 다투는 미국 등 서방엔 반갑잖은 흐름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대학살에 대한 미국의 '이중 잣대'에 환멸을 느낀 중동과 아랍권 국가들 거의 전부가 등을 돌림에 따라,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퇴조하는 양상이다.
한편, 인도가 '기권'을 통해 다른 브릭스 국가와 차별화를 한 배경에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이스라엘 네타냐후 간의 '특수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이슬람, 극단적 힌두교 신자인 모디는, 2017년 인도 총리론 최초로 이스라엘을 방문했으며, 그 이후로 인도는 친팔레스타인에서 벗어나 친이스라엘 경향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모디는 자국 내에선 소수 집단인 2억 명의 무슬림 탄압에 앞장선 인물이다.
'아세안 10개국' 모두 미국과 정반대 결정
중국 저지 위해 동남아에 공들였지만 허사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표결 결과도 바이든으로선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10개 회원국 모두가 미국과 정반대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의 불법적 팔 점령 중단 촉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동안 중국 저지를 위해 동남아에 심혈을 기울여온 만큼 뼈아픈 대목이다.
이번 사안의 성격상 무슬림 다수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그렇다 쳐도, 지난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란 최고 수준으로 관계를 격상했던 베트남은 물론, 전통적 동맹국인 필리핀과 태국, 친미 국가인 싱가포르마저 기권도 아니고 아예 찬성했기 때문이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동남아 담당 리콴유 석좌이자 케임브리지대 선임 연구원인 린 쿠옥은 '미국은 동남아를 잃고 있다'란 3일 자 <포린 어페어즈> 기고에서, 미‧중 전략경쟁의 주요 전장인 인도·태평양의 "지리적 심장"인 동남아에서 ,최근 미국이 지지를 잃고 있는 것을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쿠옥에 따르면, 현재 대다수 동남아 국가는, 가자 전쟁에서 시종일관 이스라엘 편을 드는 미국에 비판적임은 물론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적 침공과 관련해, 미국이 대러 규탄 및 제재 동참을 호소해도 꿈쩍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중국이 가자 전쟁과 관련해 미국을 "비겁한 전쟁광"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주장을 비(非) 무슬림을 포함한 대다수 동남아인이 '진실'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라고 쿠옥은 지적했다.
124개 찬성국을 보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중남미의 대부분 나라가 포함돼 있다.
미국 진영, 기권국 포함해도 57개국 불과
"서방, 팔 보호 유엔 결의안에 기권·반대"
이날 표결에서 이스라엘 편을 들어 공개적으로 반대한 나라는 14개국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외에 서구 진영에선 단 한 곳도 없다.
유엔총회 결의 통과 후, 미국 유엔대표부는 성명을 통해 "일방적"이라고 비난하고, "이스라엘의 매우 현실적인 안보 우려를 무시한 상태에서" 이번 결의가 가자 휴전 협상과 두 국가 해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머지 12개국을 대륙별로 보면 △ 동구 2곳(체코, 헝가리) △ 중남미 2곳(아르헨티나, 파라과이) △ 아프리카 1곳(말라위) 등이며, 피지·파푸아뉴기니 등 태평양 도서국이 7곳에 이른다.
또한 '범 미국지지'로 봐도 무방할 43개 기권국을 대륙별로 살펴보면 △ 서구 9곳(영국,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리히텐슈타인) △ 동구 11곳(알바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조지아, 북마케도니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 아시아 5곳(인도, 네팔, 한국, 몰타, 호주) △ 북미 1곳(캐나다) △ 중남미 7곳(코스타리카, 도미니카, 에콰도르, 과테말라, 케냐, 파나마, 우루과이) △ 아프리카 6곳(카메룬, 에티오피아, 라이베리아, 르완다, 남수단, DR콩고) △ 태평양 도서국 4곳(아이티, 키리바시, 사모아, 바누아투) 등이다.
이에 대해 알자지라는 "가자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의 서방 동맹국들은 팔레스타인인을 보호하고 이스라엘에 책임을 묻는 유엔 결의안들에 대부분 기권하거나 반대해왔다"면서, 지난 6월 10일 유엔 안보리의 '3단계 휴전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서방은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유 에디터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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