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보수는 왜 무능한가?

道雨 2024. 9. 24. 09:03

보수는 왜 무능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사에 공헌한 부분이 있다. ‘박정희 신화’를 불가역적으로 허물어뜨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정치사에 공헌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보수는 유능하다’는 신기루를 제대로 궤멸시키고 있다.

 

따지고 보면, ‘보수는 유능하되 도덕성에 문제가 있고, 진보는 진정성은 있지만 불안하다’는 오랜 믿음은, 만들어진 신화다. 1948년부터 1997년까지 보수정부만 집권했다. 친일세력-군-관료로 이어지는 ‘입신양명’을 추구하던 당대의 우리 사회 엘리트들을 단독으로 흡수했다. 그리고 재벌과 함께 이들이 우리 사회의 거대한 기득권층을 형성하면서 ‘보수 유능 신화’를 부풀려왔던 것이다.

 

이 신화가 처음 갑자기 깨진 것은 외환위기 때였다.

그리고 과거회귀형 박근혜 정부에서 또 한번 확인됐다. 국정농단 사태 이전에도, 박근혜 정부는 실재는 물론 스타일 측면까지 무능함과 시대에 뒤떨어진 퇴행적 모습을 꾸준히 드러냈다.

그리고 3기 보수정권에 해당하는 윤석열 정부는, ‘준비되지 않은 정권’이 국민들에게 어떤 폐해를 끼칠 수 있는지 뼈저리게 경험하게 만들고 있다.

 

 

 

사례를 보자.

대부분 국민들이 의사 증원을 찬성한다. 그런데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무작정 밀어붙여, 온 국민을 불안에 빠뜨려도 상관없다는 식을 원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근거가 불명확한 ‘일단 2000명’으로 내지르고 ‘항복’만 요구한다. 레이저 수술에 부엌칼 갖고 들어가, 종기는 그대로이고, 선혈만 낭자한 꼴이다.

 

지난해 10월 연금개혁 로드맵을 발표하며, 24개 시나리오를 국회에 떠넘기고 ‘알아서 골라라’ 하더니, 국회 공론화위원회가 단일안을 내놓자, ‘다음 국회에서 논의하자’ 했다. 그러더니 ‘차등 인상, 자동조정 장치’안을 내놓았다.

방안의 문제점에 앞서, 이럴 거면 왜 로드맵 발표 때는 내놓지 않았는지, 이 안은 언제부터 논의한 건지 의구심이 인다.

 

북한의 ‘쓰레기 풍선’에는 ‘9·19 합의’ 파기로 대응했다. 남북합의 파기 책임을 스스로 뒤집어썼는데, ‘쓰레기 풍선’은 계속 내려온다.

 

대통령 첫 국정브리핑은 뜬금없는 ‘동해 석유 시추’ 발표였다. 발표하자마자 온갖 의혹이 터져나와 해명에 급급하다, 이젠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총선 직전 ‘민생 올인’이라며 주 2회씩 전국 순회하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신규 노선, 철도·도로 지하화 추진 등 온갖 지역 개발 공약을 쏟아냈다. 대부분 예산·입법 처리 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이 가운데 몇개나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카르텔’이라며 대폭 줄였다가 1년 만에 원상복귀한 연구·개발(R&D) 투자 예산, 혼란을 일으킨 ‘해외직구’ 정책, 공매도 금지 혼선, 오락가락 대출금리 정책 등 사례는 끝이 없다.

한마디로 문제해결 능력이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나.

정치도 행정도 경험한 바 없이, 검찰에서 하던 대로 하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는 외부로부터 가려져 있다. ‘윤석열 사단’의 특징은 수사 대상자를 최대한 압박하고, 증거 수집을 위해선 위법도 불사했다. 그렇게 해서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더라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복잡한 국정운영을 피의자 수사할 때처럼 하니, 되는 일이 없다.

국정은 미래를 살피고, 검찰은 과거를 뒤진다. 국정은 인재를 찾고, 검찰은 범인을 찾는다. 국정은 뭔가를 쌓고, 검찰은 뭔가를 허물어뜨린다. ‘파괴왕’ 윤석열이 국정책임자에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난항에 부딪히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에게는 자기객관화 능력이 없다. 경험이 없으면 겸손해야 한다. 그런데 총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해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 임기 말까지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무엇보다 공적 의식 결여는 공직자로서 부적격 요건이다.

 

 

 

그런데 보수는 왜 자신들을 궤멸시킨 윤석열을 후보로 내세웠나. 윤석열의 어디에 보수의 가치가 있는가.

‘안 되면 되게 하라’, ‘무찌르자 공산당’의 윤석열 버전이 ‘좋.빠.가’(좋아 빠르게 가)와 ‘즉.강.끝’이다. 근대화 시절 왜곡된 방법론으로, 이는 가치가 아니다.

 

‘도덕성, 책임, 전통, 품격’이라는 보수의 본질적 가치가 윤석열에겐 없다.

그럼에도 보수가 윤석열을 택한 건, ‘이길 수 있는 후보’에게만 목을 맸기 때문이다. 보수가 ‘가치’가 아닌 정권 획득으로 얻을 ‘이권’만 탐한 결과다.

 

이제 와서 보수도 놀라고 있다. ‘이렇게 무능했던가’ 하고.

‘가치’가 아닌 ‘이권’만 탐하는 한, 앞으로도 ‘보수’는 계속 무능할 것이다.

우린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보수는 그 원인 찾기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