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극 ‘이상한 나라의 김 여사’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소극(笑劇)으로”라는 마르크스의 말은, 프랑스 혁명의 피의 대가를 찬탈한 나폴레옹 1세와 그의 조카 나폴레옹 3세의 운명적 아이러니를 드러내려 헤겔을 패러디한 것인데, 지금 대한민국에선 이렇게 변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세번 반복된다.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소극으로. 그리고 세번째는 막장극으로.”
박정희의 비극과 그의 딸 박근혜의 소극을 지나, 박근혜를 구속하고 스스로 사면한 윤석열 대통령의 막장극이 펼쳐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다른 점이 있다면, 비선실세의 존재를 국민이 일찌감치 알게 됐다는 것이다. 비선실세의 비선(명태균) 또한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2년 반 동안 윤 대통령이 망쳐놓은 국정만 해도 막장극의 요소를 충분히 갖췄는데, 지역의 정치 브로커와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얽히고설켜, 국가의 근본을 뒤흔드는 범죄(공천 개입과 여론조사 조작, 국가산업단지 개발 계획 유출) 의혹부터 대통령 집안의 내밀한 사정까지 폭로되고 있으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모든 막장극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김건희 여사는 기이한 캐릭터다. 보통 사람이라면 세상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삼가고 자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일 때도 개의치 않고 내키는 대로 한다. 마치 브레이크를 제거한 자율주행차 같다.
남이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과전이하’(瓜田李下)의 개념이 아예 없을 뿐 아니라, ‘니들이 어쩔 건데’ 하는 오만함과 대담함이 방약무인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느껴진다.
대선 당시 ‘개 사과’ 연출 사진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 오만함과 대담함은 김 여사가 평생에 걸쳐 학습한 경험 데이터의 결과값일 것이다. 부풀린 경력으로 검찰이 포함된 상류층의 사교모임에 입성했고, 거기서 확보한 네트워크를 가족의 사업에 활용했고, 남편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숱한 논란과 불법 의혹에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종교적 믿음이 형성된 세월이었을 것이다.
김 여사 앞에만 서면 법의 잣대가 구부러지는 현실이 종교를 신화로 완성한다.
명품 선물을 받고, 주가조작으로 수십억원을 벌어도, 검찰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공식적으로 사건을 없애버린다. 관저 공사에 지인이 수의계약으로 참여해 온갖 불법을 저질러도, 친한 업체가 법무부에서만 백억원대의 사업을 수주해도, 가족 소유 땅을 지나도록 고속도로 노선이 변경돼도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는다.
사법적 판단에 관한 한 김 여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하트 여왕처럼 절대권력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아직 김 여사가 법으로 처벌받은 적은 없기에 체코 언론처럼 ‘사기꾼’이라고 적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기적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비결이 남편의 육탄방어였을 거라는 추정은 이제 확신의 영역에 들어섰다.
헌법적 한계를 시험하며 연거푸 남발하는 특검 거부권으로 대통령이 직접 입증하는 사실이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명분으로 정권과 싸우던 검찰총장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인과 장모를 수사하는 자신에게 윤 총장이 쌍욕을 퍼부었다고 증언한다.
이런 수모와 핍박을 당해가며 김 여사 계좌의 ‘7초 통정매매’ 등 결정적인 증거를 가까스로 확보했지만, 기소는 하지 못했다. 직속 부하인 차장검사들을 포함한 일선 검사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오히려 사퇴 압박을 받았고, 사퇴를 거부하자 후배 검사들의 수사 대상이 되어 기소를 당했다(‘김학의 불법출금 수사 외압 의혹’).
상식을 무시하는 김 여사의 주가조작 혐의 불기소 처분에도, 검찰 내부에서 비판 의견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막장극 ‘이상한 나라의 김 여사’의 주제 의식은 권력의 사유화다.
대본 집필은 검찰총장 시절부터 시작됐다. 검찰이 마치 총장의 개인 로펌처럼 활약했던 이른바 ‘고발사주’는, 많은 에피소드의 하나에 불과하다.
눈 밝은 사람들이 경고했지만, 대부분 듣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신국정농단이다.
사유화한 권력 주변에 모여든 등장인물들의 탐욕과 악다구니의 아비규환으로, 온 나라에 썩은 내가 진동한다.
명태균과 김대남과 이종호가 일관되게 가리키는 그곳이 썩은 내의 진원지일 것이다.
비겁한 얼굴로 용산만을 쳐다보며 자리를 탐하는 고위 공직자들도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사유화는 필연적으로 국가 기능을 망가뜨리고 국정을 파괴한다.
이 막장극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이재성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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