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사주’ 1년, 물구나무선 공정과 상식
* 지난 9월2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류희림 방심위원장 민원 사주 공익신고자 공개 기자회견’이 열려 지난해 12월 류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방심위 직원들이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내부고발자 3명은,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익명의 신고자가 아닌 실명의 공익신고자로서 류희림씨의 민원 사주 의혹을 제기하겠다. 진상을 규명하는 일에 국회와 수사기관이 적극 나서달라.”
지금부터 신분을 밝히고 싸울 테니, 류 위원장도 당당하게 조사에 응하라는 취지였다. 국회를 향한 진상규명 촉구 메시지이기도 했다. 마침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방심위원장의 청부 민원과 공익신고자 탄압 등의 진상규명 청문회’를 열기로 결정한 터였다.
류 위원장은 이들의 요구를 단박에 걷어찼다. 기자회견이 열린 당일, 청문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는 ‘불출석 입장문’에서 “제목부터 공정하지 않은 청문회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자신의 부탁을 받고 방심위에 심의 민원을 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민원인들에 대해선 “진정한 공익제보자로 보호 대상”이라고 강변했다.
기관장의 ‘비위’를 신고한 뒤, 보호는커녕 경찰의 압수수색 등 고초를 겪고 있는 직원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결국 국회 청문회는 ‘류희림 없는 류희림 청문회’로 맥없이 끝났다.
‘민원 사주’ 의혹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정상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본말전도’라는 상투적인 말로는 사안을 설명하기에 99% 부족하다. 의혹 당사자인 류 위원장은 보란 듯이 연임에 성공한 반면, 공익신고자들은 하루아침에 개인정보를 유출한 범죄자가 됐다.
정의와 상식이 물구나무선 현실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류희림 방심위의 ‘민원 사주’ 1년을 복기해보자.
방심위에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인용 보도를 심의해달라는 민원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4~6일이다. 이동관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에서 “방심위 등에서 엄중 조치 예정”이라고 밝힌 직후다.
뉴스타파 보도의 핵심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 수사를 무마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었다. 윤 대통령에게 눈엣가시 같은 보도였으리라는 건 불문가지다.
심의 민원을 접수하던 방심위 직원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류 위원장의 가족·지인 등 사적 이해관계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다수의 민원을 넣은 것이다.
담당 부서에서는 9월14일 “위원장님 형제분으로 추정되는 류○○씨가 민원을 신청했다”는 보고 문건을 작성한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당시 방심위 직원들의 카카오톡 대화를 보면, 한 직원이 “팀장님이 위원장실에 보고 갔다 왔고, 위원장이 ‘잘 찾았다’고 극찬했다”고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류 위원장이 적어도 자신의 동생이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러나 류 위원장은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잡아떼고 있다.
류 위원장이 심의에 계속 참여하자, 9월27일엔 한 직원이 내부 게시판에 ‘류희림 위원장님, 뉴스타파 인터뷰 인용 보도 안건 심의 왜 회피하지 않으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에게 사적 이해관계자 관련 사건을 회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시간쯤 뒤, 이 글 작성자의 직속 상사는 카톡으로 게시글 삭제를 요청하며 “조금 전 부속실장이 왔다 갔고, 이번 사안을 좀 심각하게 보시고 인사위원회 개최도 고려하고 계시다고 했다”고 말한다.
부속실은 위원장의 비서조직이다. 류 위원장이 ‘이해충돌 상황’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정황이다.
내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류 위원장은 계속 심의에 참여했고, 결국 11월 중순 류 위원장이 주재한 전체회의에서 4개 방송사에 역대 최고 수위의 과징금 부과가 결정된다.
권익위에 신고서가 접수된 것은 한달가량이 지난 12월23일이다.
언론 보도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류 위원장은 즉각 “국기 문란 행위” 운운하며 제보자 색출에 나서는 한편,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딱 그 짝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권익위의 처분이다.
권익위는 지난 7월 황당한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민원 사주’ 의혹은 방심위로 다시 돌려보내 ‘셀프 조사’에 맡긴 반면, 신고자들은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경찰에 넘긴 것이다. 도둑을 신고했더니 도둑은 놔주고 신고자를 잡아들이는 격이다. 권익위의 ‘면죄부 조사’ 발표 보름 뒤, 류 위원장은 방심위원장에 다시 위촉된다.
막무가내 ‘노쇼’로 ‘민원 사주 청문회’를 무력화시켰던 류 위원장은, 21일 열린 방심위 국감에서도 ‘수사 결과를 보고 말씀해달라’며 야당의 공세를 교묘하게 피해나갔다.
그런데 그 ‘수사 결과’는 이미 예정돼 있는 듯하다. 경찰이 내부고발자만 탈탈 털고 있으니 말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 마지않는 공정과 상식은 어디에 있나.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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