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한 검찰, 사악한 언론
검찰·언론 개혁 없이는 제2, 제3의 내란 재발할 수도
역사가 크게 움직이는 격동의 시기엔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기 마련입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생사뿐 아니라 흥망성쇠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가 21세기 한국 사회를 더없는 격동의 시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사회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격동의 시기는, 누가 알곡이고 쭉정이인지 자연스럽게 걸러내는 분류 작업도 해줍니다. 12.3 내란 사태는 입만 열면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던 자들이 실상은 반법치-반자유-반민주 세력이었다는 걸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과 정당, 어떤 장관과 관료, 어떤 집단이 헌법과 법률을 유린하고 능멸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12.3 내란 사태는 한국 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2.3 내란 사태를 통해 드러난 대표적인 쭉정이가 검찰과 언론 집단이라고 봅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두 집단의 대응 자세는 확연하게 다르지만, 두 집단이 윤석열 내란을 키우고 지원했던 세력이었다는 본질엔 변함이 없습니다.
‘윤석열의 주구’에서 ‘윤석열 사냥개’로 변신한 검찰
아시다시피 검찰은 윤 정권 내내 공익의 대표자, 정의의 수호자는커녕 ‘윤석열의 사병’ 노릇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윤석열의 정적인 조국과 이재명 일가에 대해서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인디언 기우제’ 방식의 수사로, 죄가 나올 때까지 마구 쑤셔댔습니다.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불리한 검증 보도를 한 <뉴스타파>는, ‘대선 개입 여론조작’이라는 여론몰이 수사로 옭아매려고 했습니다. 반면, 윤석열과 그의 부인 김건희와 관련한 비리에는 특급 변호인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이런 검찰이 12.3 내란이 실패로 끝날 것이 확실해지자, 얼굴을 싹 바꾸고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윤석열의 주구’에서 ‘윤석열 사냥개’로 변신했습니다. 중국 경극의 가면 바꿔쓰기 기술을 능가할 정도의 신기입니다.
최근 나온 검찰의 윤석열 내란 수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은 빼도 박도 못하는 ‘내란 수괴’입니다. 야당에 겁을 주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고, 실탄은 지급하지도 않았으며, 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았다는 윤석열의 해명이 모두 거짓말이었음이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그것도 진술이 아니라 카톡 대화와 손전화 메모 등의 명백한 물증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수사는 역시 검찰이 잘한다’라는 평가가 나올 만합니다.
검찰이 12.3 내란을 기점으로 태도를 돌변한 것은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습니다. 어느 정권 아래서든 그들의 전략적 목표는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무소불위의 무기를 활용해, 검찰 권력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번 변신은 윤석열이 더는 검찰의 이익 지키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전술 변화일 뿐입니다. 어떤 가치보다도 검찰조직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영악한 둔갑술입니다.
‘살권수(살아있는 권력 수사)’와 같은 검찰의 현란한 말장난에 더 이상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참에 검찰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검찰의 권한을 문민통제 아래 두는 방향으로 검찰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야 합니다. 인공지능(AI)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면 인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것처럼, 문민통제를 벗어난 검찰권 행사는 언제든지 주인을 물어뜯는 흉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변하는 척하다 도루묵 된 허술하고 사악한 언론
언론의 그간 행태를 보면, 검찰 못지않은 윤석열 내란의 공범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윤석열이 대선 토론회 때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왔을 때부터 언론이 철저한 검증보도를 했다면, 민주공화정을 왕정처럼 유린하는 극악무도한 대통령은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집권한 이후에라도 거부권 남발과 시행령 정치를 따끔하게 비판하고 견제했다면, 내란을 꿈꿀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가 뭔 짓을 해도 비위 맞추기만 해온 언론이 있었기에 그의 간도 겁 없이 커졌을 겁니다.
언론도 12.3 내란 사태 이후 짐짓 변화하는 시늉을 하고는 있습니다. 검찰의 변화가 교묘하고 영악하다면, 언론의 변화는 허술하고 사악합니다. 내란 수괴를 비롯한 내란 세력에 정면으로 칼을 들이대는 모습을 보이는 검찰과 달리, 언론은 잠시 정색하고 비판하는 척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양비론의 방패 뒤에 숨어 이전의 악행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내란 초기, 언론단체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언론에 ‘내란 세력의 스피커’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자, 잠시 듣는 척을 하더니,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12월 14일 이후부터는 <조선일보>를 필두로 하는 우파 언론 카르텔이 대놓고 내란 세력의 ‘헛소리’를 그대로 중계방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객관 보도와 균형 보도를 내세우면서 찬반양론을 동등하게 전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내란 세력의 논리를 비판도 검증도 없이 확산하는 부역질을 하고 있습니다. 흡연이 폐암의 주요 원인이라는 게 정설인데도, 그렇지 않다는 설을 동등하게 보도함으로써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정설을 무력화하는 것과 똑같은 짓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띄는 수법이 ‘따옴표 기사’를 통한 여론조작입니다. 법리에도 논리에도 맞지 않는 내란 세력의 요설을 따옴표로 묶어 사실 보도인 양 전하는 방식입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익명의 발화자를 동원해 그의 말을 따옴표로 전하는 것입니다. 기자가 자신의 주장을 마치 실제 인물이 한 것처럼 ‘한 변호사’, ‘한 법관’ ‘한 전문가’, ‘한 당국자’의 입을 빌린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기사 작법입니다.
지금처럼 중대한 내란 국면에서는, 양비론과 따옴표 기사는 아예 배척하는 게 상책입니다.
쭉정이 모아 폐기까지 하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몫
이번 사태와 관련해 <조선일보>가 양비론과 따옴표 기사를 통한 여론조작의 선두에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조·중·동’이라는 보수우파 언론 카르텔에서 마침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이탈 조짐을 보이는 터인지라, 조선일보의 독보적인 행보가 더욱 도드라집니다.
이정환 전 <미디어오늘> 사장은 <조선일보>가 <동아일보> <중앙일보>와 달리 “혼란과 대립을 강조하면서 내란 범죄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전선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인 것처럼 프레임을 뒤섞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격동의 시기는 알곡과 쭉정이를 분별해 주기는 하지만, 분리 처리 작업까지 해주지는 않습니다. 결국 알곡은 알곡대로 모아 거두고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모아 폐기하는 것은, 사람이 나서 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제 깨어 있는 시민이 나서 그 일을 이뤄내야 할 차례입니다.
무소불위의 검찰권은 시민의 통제권 안으로 집어넣고, 여론조작 언론은 깨끗하게 폐기 처분하는 작업을 이번 기회에 완수하지 못하면, ‘제2, 제3의 내란’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오태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실장ohta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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