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충격…반도체 대미 몰빵 투자 부메랑 되나
엔비디아 납품 삼성·SK하이닉스 주가 급락
트럼프 몽니에 보조금 지급 불확실성도 커져
보조금 축소되면 대미 투자 실익 사라질 수도
트럼프 행정부 맞춤형 외교 전략 절실한데
12·3 내란 사태로 정부 대응 사실상 올스톱
삼성전자 반도체 영업이익 두 분기 연속 하락
중국의 인공지능(AI) 개발업체인 딥시크가, 긴 설 명절 연휴를 끝내고 문을 연 한국 증시를 강타했다. 딥시크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SK하이닉스가 장을 열자마자 11% 넘게 하락했고, 삼성전자도 3% 이상 급락하며 거래가 시작됐다.
딥시크가 오픈AI 등 미국 기업들의 데이터를 도용하고,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했다는 의심이 제기되며,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의심이 사실로 밝혀지면, 딥시크 현상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사양의 싼 반도체로 AI를 구동한 딥시크의 신기술이 혁신인 것은 분명하다. AI 산업에 어떤 식으로든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의미다.
미국 이어 한국 증시 강타한 ‘딥시크’
한국 반도체 기업의 주가 급락은 예상됐던 일이다. 설 연휴 기간에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딥시크 충격에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엔비디아에 HBM 납품을 앞두고 있다. 블룸버그는 31일(현지시간)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5세대 HBM 공급 승인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딥시크 충격 외에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무부 장관 지명자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인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장담할 수 없다고 밝힌 것도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다.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딥시크’ 같은 혁신 기업이 나왔다는 것은 곱씹어 생각해 볼 문제다.
영국 BBC 방송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라는 도전과 중국 정부 전폭적 지원의 결과라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놨다.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AI 기술은 비용 대비 수익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모으고, 학습시키는데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이 필요한데, 수익을 낼 수 있는지는 아직도 불확실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자금력이 풍부한 기업들이 AI 산업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딥시크의 등장은 이런 AI 기술과 시장 판도를 바꿀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딥시크는 오픈AI의 최신 AI와 비슷한 성능을 보유한 모델을 훈련하는데 550만 달러가량 투자했다고 밝혔다. 저사양 반도체로도 AI 성능을 높일 수 있는 혁신 기술을 개발해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투입한다. 비싼 반도체 칩을 사용하고, 데이터를 모으고 훈련하는데도 천문학적 돈이 투입된다. 딥시크는 이런 태생적 단점을 극복한 것이다.
딥시크의 혁신 한국 반도체에 기회일 수도
만약 딥시크 주장이 맞는다면, AI 기술과 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저비용으로 개발할 수 있어, AI 적용 범위와 시장이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선순환 고리를 형성하며, AI 관련 신기술 개발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과 이에 따른 공급망 재편 요인을 배제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에 이런 판도 변화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AI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AI를 구동하려면 저사양이든 고사양이든 메모리 반도체는 필수품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 치중한 외교를 펼치면서, 한국 기업들도 대미 투자를 늘려왔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기 위해 370억 달러 이상 투자하기로 했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AI 메모리용 패키징 공장을 짓기 위해 38억 달러 넘게 투자할 계획이다.
반도체 보조금 불확실성 키우는 트럼프 행정부
한국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결정한 이유는, 미국 정부가 보조금과 세액 공제, 저리의 대출 등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인건비와 기반 시설 사용료, 직원 복지 등 생산시설의 운영비가 많이 든다. 중국은 물론 한국과 비교해도 부담이 크다. 미국 정부의 지원이 끊긴다면 ‘빛 좋은 개살구’ 꼴이 될 수 있다.
대만의 TSMC를 설립한 모리스 창도 언론 인터뷰에서, 생산 비용 측면만 보면 미국에 공장을 짓는 건 난센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정부에서 최종 계약까지 끝낸 반도체 보조금 지급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산업과 무역 정책을 총괄하는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하워드 러트닉는 29일(현지시간)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내용을 검토하기 전에는 보조금 지급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약속한 보조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 기간 중 언론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했던 보조금 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받기로 한 보조금은 각각 47억 4500만 달러와 4억 5800만 달러다. 투자액에 비례해 산정된 금액이다. TSMC 등 이미 보조금을 받은 반도체 기업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에 딴지를 걸어도, 이미 지급하기로 한 결정이 철회될 확률은 높지 않다.
더욱이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지역은 공화당이 강세를 보이는 곳이다. 보조금 지급을 철회하거나 축소해 투자가 지연되면, 해당 지역 경제와 고용 창출에 악영향을 미친다.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의원도 반대할 게 분명하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기업들이 소송을 걸 수도 있다.
AI와 반도체 산업 전략 다시 짜야 할 때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 보조금 지급을 연기하거나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외교적 대응이 절실한 시기인데, 12·3 내란 사태로 대통령 대행 체제인 한국 정부는 사실상 할 수 없는 게 없다.
한국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윤석열 파면과 새로운 정부 출범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맞춰 반도체를 포함한 산업 전략을 다시 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지난해 영업이익이 32조 7260억 원으로 전년보다 398.34% 증가했다고 31일 공시했다. 매출은 300조 8709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2% 증가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연간 매출도 111조 1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조를 넘었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 DS 부문 영업이익은 2조 9000억 원에 불과해, 2분기 6조 원대 중반까지 상승한 뒤, 3분기에 이어 4분기까지 두 분기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도 15조 1200억 원에 머물렀다. 영업이익률이 높은 HBM 납품이 지연된 결과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8조 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연간 영업이익 역시 23조 4000억 원이 넘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보다 8조 원 이상 더 번 것이다.
딥시크 등장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등으로, 앞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은 더 커질 것이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다.
대미 몰빵 투자가 올바른 전략인지 냉정하게 점검하고,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의 중심이 된 AI 시장의 판도 변화를 잘 읽어야 한다.
장박원 에디터jangbak6219@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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