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한국형 파시즘과 신극우 운동이 낳은 괴물 '1·19 폭동'

道雨 2025. 1. 24. 16:17

한국형 파시즘과 신극우 운동이 낳은 괴물 '1·19 폭동'

 

 

 

한국형 파시즘의 뿌리와 뒤틀린 폭력의 긴 역사

1987년 민주화 이후 거리로 나선 아스팔트 우파

각종 혐오의 반동적 혼합물과 디스토피아적 믿음

보수우파 기득권 카르텔의 중심에 자리잡은 극우

쿠데타 실패 후 추악한 민낯 드러난 극우의 위기

장차 부활할 극우에 양비론 벗어나 함께 맞서야

 

친윤석열 극우 세력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1·19 폭동은 많은 이들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줬다. 폭도들은 경찰과 기자들을 집단 폭행했고, 차량과 기물을 파손했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중국인이냐'고 겁박했고, 자기들끼리도 서로 '프락치'라고 지목하며 폭행을 벌였고, 결국에는 법원을 침탈하고 점거해서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이번 폭도들이 대부분 청년(남성)들로 보인 것도 섬뜩한 부분이었다. 현장에서 손가락으로 '일베' 이용자라고 인증하며 사진을 찍는 청년도 보였다.

특히 폭동에 참가한 한 극우 청년이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스스로 흥분에 도취해 흐느끼면서 '이게 바로 혁명'이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은 섬뜩하기만 했다.

 

일부에서는 폭동 참가자들이 서로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CCTV 관제실로 가서 증거 인멸을 시도하는 등, 조직적으로 행동한 것을 지적하며, 단순히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된 폭동이라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선동 속에서 극우가 결집하며, 곳곳에서 비이성적인 광란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윤석열이 체포된 날 저녁에 공수처 앞에서 한 50대 남성이 분신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것은 윤석열, 국민의힘, 전광훈 목사와 극우 유튜버들이 불러낸 죽음이었다. 이들은 '종북좌파'에 맞서 '자유우파'들이 봉기할 것을 선동하면서, 어떤 행위도 "국민 저항권"이라며 정당화했다.  

 

*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런 상황과 장면들은, 영화 <조커>에서 아서 플렉이 생방송 중의 살인으로 경찰에 체포되니까 흥분한 군중이 일으킨 폭동 장면을 연상케 했다. 또 최근에 개봉한 영화 <시빌 워>에서, 내전을 일으킨 대통령 쪽의 군인이 '당신은 어느 쪽 미국인이냐?'라면서, 총을 갈겨 사람들을 죽이는 소름 돋는 장면도 떠오르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윤석열의 12.3 쿠데타가 전 세계적인 네오파시즘 득세의 일부였음을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다. 1930년대 히틀러 나치즘의 형태나 양상과 비교하면서, 오늘날의 파시즘을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은 크게 실수하는 것이다. 파시즘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항상 서로 다른 형태로 등장해 왔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지적했다. 

"파시즘은 히틀러와 무솔리니 이전에도 존재했고, 분명한 형태로 혹은 가면을 쓰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 살아남아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결국은 수용소 체제를 향해 가게 된다."

 

지난해 작고한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도 "이 나라 사람들이 식민 지배의 비애와 굴욕을 경험한 것은 불과 60년 전의 일이다. 해방 후에는 학살과 내전의 비극을 겪었고, 군정에 의한 폭력은 불과 15~16년 전까지도 계속되었다. … 지금도 사회의 곳곳에, 또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길한 징후가 존재한다"라고, 한국 사회에서 파시즘의 위험을 지적한 적이 있다.

 

즉, 파시즘은 정해진 형태가 있거나, 완성된 형태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진행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하고, 한국도 결코 그 위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우리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지지하던 사람들 중의 일부가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검찰-언론의 '연성 쿠데타'가 12.3 강성 쿠데타로 이어지더니, 이제 백골단과 폭동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 폭동 속에서 기자들까지 집단 폭행을 당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한국형 파시즘은 군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시절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해방 후에 이승만 정권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제주도 4.3 학살을 저지른, 극우 반공적 서북청년단 등은 파시스트 행동대의 전형이었다.

이런 요소는 만주군 출신의 박정희가 일본의 군국주의적 모델을 그대로 가져와, 군사독재를 확립하는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물론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오랜 군사독재와 일당독재 동안에, 한국형 파시즘은 대중적 운동보다는 국가가 주도하는 전체주의의 형태로 나타났다.

대중 운동으로서 신극우의 등장과 발전은, 역설적이지만 1987년 민주화 항쟁이 낳은 결과였다. 이제 더 이상 국가기구의 위로부터 억압과 통제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된 기득권 세력은 거리로 눈을 돌렸다.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등은 모두 1980년대 말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들이 본격적으로 '아스팔트 우파'로 발전한 것은 노무현 정부 중반부터였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과 전경련 등을 통해서 이들을 정치적, 재정적 지원하며 육성하는데 큰 관심을 보였다. 그 결실은 박근혜 정부가 촛불혁명으로 붕괴하고 나서부터 나타났다.

 

그때부터 극우 '태극기 부대'는 더욱 거리로 쏟아졌고,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매주 광화문에서 집회와 행진을 하면서 몸집을 불려 나갔다. 

특히 2019년 소위 '조국 사태’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이것의 본질은 촛불혁명에 대한 반혁명이고, 검찰-언론의 연성 쿠데타였다. 

이준석이 '공정'과 '반페미니즘'을 무기로 청년 남성들 속으로 파고들어 간 것도 이 시기였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말기에는 광화문을 장악한 태극기부대와 함께, '페미니즘은 정신병'을 외치며 강남역을 행진하는 신남성연대같은 청년 극우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국 사태'를 통해서 우파의 지도자로 떠올라 국민의힘 대선 후보까지 된 윤석열은, '태극기부대'와 '청년 극우'들을 모두 통합해서 관리하며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다.

윤석열이 대선 운동 막바지에 SNS에서 "멸공"과 "여성가족부 폐지"를 올리며 지지층을 결집한 것은, 이것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극우 유튜버들과 극우 단체들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대통령 시민사회수석실과 긴밀히 소통하며 협력했다. 실패한 12.3 쿠데타 이후, 이제 윤석열은 필사적으로 이들에 의존하면서 폭력과 파괴를 선동하는데 올인하고 있다. 

 

* 폭동이 지나간 처참한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들의 행태는, 어떻게 가짜뉴스와 혐오 선동이 폭력과 테러로 발전하게 되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극우 유튜브와 언론, 포털 댓글 등을 통해서, '중국과 연결된 이재명과 종북좌파가 부정선거를 자행하며 나라를 망치고 있고, 평화적인 계엄으로 그것을 막으려던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적 탄핵에 직면해 있다'라는, '대안적 진실'을 꾸준히 전파해 나갔다.

 

이런 논리와 정보를 끝없이 접하던 우파 지지자들 내부에서 확증 편향이 강해지고, 다른 목소리는 갈수록 사라지게 됐다.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지지자들의 생각은 확신과 신념으로 변해갔고, 그들 내부에서도 극단적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그럴수록 '이재명과 종북좌파'에 대한 혐오는, 증오를 넘어서 살기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해 왔다.

 

반면에 윤석열은 박해받는 순교자처럼 묘사되면서, 엄청난 동일시와 감정 이입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사이비종교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인데, 실제로 지금의 극우 운동은 개신교 극우주의나 일부 이단 종파들과도 연결돼 있다.

전광훈 목사 같은 카리스마적 우익 지도자는 종교적 광신과 극우 정치를 기괴한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한국형 파시즘인 신극우 운동에서, 반중국 인종주의, 반공주의, 여성혐오, 소수자 혐오, 무슬림 혐오, 시장지상주의에 폭력과 혐오가 뒤섞인 반동적 혼합물, '탄핵 기각으로 돌아온 윤석열이 제2의 건국을 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믿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더 넓은 보수우파와 분리될 수가 없다.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도 최근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아스팔트 보수' 세력은 눈에 보이는 지지집단이다. 그 뒤에는 전현직 고위공무원·군장성·교수·언론인 등의 거대한 수구기득권 세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에 폭동으로까지 발전한 극우 운동은 최상목 권한대행, 대통령실, 국민의힘, 족벌언론들의 방조와 직간접적 지원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 지금의 신극우 운동은 개신교 극우주의나 이단 종파와도 연결성이 지적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보수우파 기득권 카르텔의 중심에 극우 세력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재벌-족벌언론으로 연결된 기득권 카르텔은,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를 낳는 정책을 통해서도 극우 운동의 조건을 뒷받침했다. 그것은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찬 사람들을 만들어냈고, 극우 운동은 그들에게 혐오와 폭력이라는 배출구를 제시하고 있다.

 

즉 보수우파 기득권 카르텔이 쥐구멍을 만들었고, 그 쥐구멍에서 극우 운동이라는 쥐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우리는 지금의 극우 폭동이 그들의 승리와 전진을 보여준다고 혼동하거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금 상황은 극우 운동의 패배, 고립, 분열을 나타내고 있다. 그 지도자인 윤석열은 쿠데타 시도에 실패한 후 체포되고 구속된 상황이다.

 

함께 손잡고 윤석열 정권을 만들었던 한동훈, 이준석 등의 정치인과 족벌언론들은, 윤석열과 선을 긋고 포스트 윤석열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극우 유튜버들은 이런 한동훈, 이준석 등을 진작부터 증오하고 공격해 왔다.

단지 극우만이 아니라 폭넓은 보수우파와 일부 중도층의 지지까지 필요한 대선이 다가올수록, 그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

 

극우 운동과 극우 유튜버들 내부에서도 갈등과 분열, 이합집산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극우의 자책골이 된 '백골단' 사태 당시에, 신남성연대는 '청년들의 자발성과 순수성을 해치고 폭력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주도자들을 맹비난했다.

이것은 윤석열을 지키겠다는 극우 청년 돌격대의 주도권을 노린 두 세력의 다툼으로 보인다.

 

이 갈등은 윤석열이 버티다가 체포되는 상황에서, 신혜식(신의한수), 배인규(신남성연대) 등이 막상 관저 앞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또 다른 극우 유튜버들이 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구독자와 조회수를 차지하려는 선명성 경쟁과 주도권 다툼은, 윤석열 구속 영장이 발부된 후 일부 극우들이 서부지방법원을 침탈해 폭동을 일으키는 데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윤석열과 국민의힘뿐 아니라 극우 유튜버들의 대부분도 이 폭동을 적극 옹호하지는 못하고 있다.

통제를 벗어난 폭동은 '백골단'보다 더한 극우의 자책골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 참가자들은 강력한 처벌을 피하지 못할 듯하다.

'윤석열 지지율이 50%를 넘어섰고 국민 저항권이 발동됐다'라는 말을 믿고 날뛰었던 극우 지지자들에게 '현타'가 오고 있다.  

 

*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다시 폭동을 일으키자는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의 글 

 

 

 

윤석열 탄핵과 형사 처벌이 뒤집히지 않는다면 극우 운동은 당분간 고립, 분열될 가능성이 높고, 그럴수록 더욱 극단화할 수 있다.

 

다만 2021년 의사당 폭동 이후 4년 만에 다시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된 미국과, 2022년 대선 패배와 쿠데타 실패 이후에 망명했던 보우소나르가 다시 힘을 회복하고 있는 브라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쿠데타에 실패한 윤석열이 지저분한 발버둥을 치면서 그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버린 극우 운동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 다시 부활할 위험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12.3 쿠데타에 이어서 1·19 폭동까지 발생한 이후에 ,한국 정치에 대한 기존의 모든 분석, 평가, 접근은 근본적으로 다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노알라'라고 혐오하던 일베가, '대깨문'과 '조빠' 혐오의 펨코로 이어져, 이제 '문재인 사형과 찢재명 구속'을 외치는 극우 폭도들이 성장하는 동안, 양비론이나 펴면서 방관하던 이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 언론들은, 2019년 가을 조국몰이 때 광화문에 결집해 스스로 '10월 항쟁'이라고 선언한 극우의 위험성을 외면했다.

 

당시에 극우에 맞서서 수십만의 시민들이 '검찰 개혁', '언론 개혁'을 외치면서 서초동에 모여서 촛불을 들었지만,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광화문도 서초동도 가지 말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 속에 허우적댈 뿐이었다.

그것은 지난 대선에서도 '윤석열이든 이재명이든 다를 게 없다'라는 태도로 이어졌고, 결국 윤석열에게 득이 됐다.

 

윤석열이나 전광훈이 사라져도, 극우 운동은 또 다른 지도자를 세우며 부활을 노릴 것이고, 이번 12.3 쿠데타와 1·19 폭동보다 더한 아수라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멸공봉을 든 백골단'은 '응원봉을 든 키세스 시위대'를 이길 수 없었다.

폭력과 혐오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극우 파시즘 운동과 그 기반이 되는 기득권 카르텔 모두에 함께 맞서야 한다.

 

 

 

 

전지윤 편집위원misotolen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