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전체주의 꿈꾸는 극우 대중운동이 쏘아올린 신호탄

道雨 2025. 1. 22. 10:16

전체주의 꿈꾸는 극우 대중운동이 쏘아올린 신호탄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체제’ 막아내야

 

 

어처구니 없는 12·3 계엄 사태를 분쇄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회복을 낙관했다. 12월 14일에 국회가 윤석열을 탄핵하자 민주주의는 완전히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이어진 윤석열의 버티기와 선동으로 극렬 탄핵 반대 세력이 연말부터 결집하기는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추가 임명되어 완전체를 갖춘 마당에 이제 윤석열이 체포되기만 하면, 출구가 없는 한국의 극우 세력은 확실히 기가 꺾여 체념할 것이었다.

서부지법에서 광란극 벌인 세력의 정체

잘못된 예측이었다. 윤석열의 체포에 이은 구속 국면에서 한국 극우 세력은 더 노골적으로 폭력성을 드러내며 상상 이상으로 결집하고 있다. 국민의힘마저도 극렬 윤석열 지지층에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1월 19일 서부지방법원에서 벌어진 윤석열 지지자들의 폭력과 난동 사태는 극렬한 소수가 이끄는 극우 대중운동의 출현이다.

 2021년 1월 6일 미 의사당에 폭도가 난입했을 때 미국 사회는 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며칠 간 “분노한 백인 노동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했다”는 부정확한 보도가 범람했다. 얼마 후 미 FBI가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다. 난입한 폭도 중에 소외된 노동자 계층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전직 군인, 전직 공무원, 교사, 기업체 임원과 같은 전문직이 상당수였고, 올림픽 수영 3관왕인 스포츠 스타도 있었다. 먹고 살 만하고 정치나 사회에 불만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폭도라니!

법원 난입 폭도들을 옹호하는 주변 세력들

이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긴 분석 기사에서 “우리가 모르는 빅 텐트가 쳐졌고 거기에 중산층이 몰려 들었다”고 탄식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중산층들이 한때 누렸던 영광과 자부심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분노가 폭도로 돌변한 배경이었다. 연방 검찰은 폭동을 선동한 트럼프 대통령을 내란죄로 수사해야 한다고 했으나 그마저도 공화당의 반대로 흐지부지 넘어갔다. 이 당시만 해도 4년 후에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리라고 예상하는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1월 19일에 윤석열이 구속되자 미국의 의사당 난입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문제는 아직도 한국 사회가 법원에 난입한 폭도가 어떤 사람이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난입한 폭도는 대다수가 2030 청년들이다. 이들이 학력이 낮고 소득이 없는 실패한 인물들이라는 근거는 없다. 법원 난동사건이 벌어진 이튿날 경찰에 연행된 86명을 무료로 변호하는 변호인단이 빠르게 조직되었고, 이들을 위한 모금 운동이 극우 유튜버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경찰서마다 다니면서 이들을 면회하며 격려했다. 그들은 폭도가 법원에 난입한 이유에 대해서도 “경찰이 유도했다”며 경찰에 책임을 전가하는 정교한 논리를 개발하여 SNS로 확산시켰다. 윤석열은 난동이 벌어진 바로 그날 오후에 변호인을 통해 말로는 “평화적 방법의 의사 표현”을 주문했지만 경찰에 ‘관용적 자세’를 촉구했다.

 참으로 기민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기가 살아난 시위대는 이튿날인 20일에 헌법재판소로 몰려갔다. 휴일이라서 굳이 갈 이유도 없었는데 스스로 멈추질 못하는 거다. 윤석열 탄핵 반대 시위 초기에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군중들이 이제는 지도자와 우호 세력을 거느린 체계적인 조직으로 진화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여론조사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근소하게 앞지르고 있다는 데이터를 쏟아냈다.

체포 당시의 윤석열 동영상으로 일체화된 독재자와 극렬 시위대

트럼프가 흑인 시위에 총기를 난사한 백인 남성을 순교자라며 변호한 것처럼 법원에 난입한 청년들을 자유투사로 미화하는 극우 유튜브가 연일 설치고 있다. 윤석열이 체포되던 1월 15일. 희미한 조명 아래서 촬영된 윤석열의 동영상 메시지를 다시 보라. 그는 임박한 공수처와 경찰의 체포에 불안해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중국 개입과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이 한껏 고조시킨 의분을 여유로운 표정에 실어서 전달하는 독재자의 풍모다. 비루하게 대통령 노릇을 하느니 차라리 투사가 되어 한국 사회를 폭파해 버리겠다는 기세가 느껴진다. 놀랍게도 이 순간이 윤석열과 광장의 극렬 시위대들이 일체화하는 순간이다. 이 동영상은 그동안 정치·사회 영역에서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던 외로운 늑대들에게 일종의 황홀경, 혹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켰다. 그 기세가 폭발한 광란의 현장이 19일 새벽의 서부지법이었다.

 
독재와 전체주의는 분명 다르다. 독재가 권력이 힘을 앞세워 시민의 자유를 박탈하고 통제하는 체제라면, 전체주의는 자발적 대중운동을 통해 시민이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감시하는 체제다. 윤석열의 12·3 계엄이 독재를 향한 거대한 도박이었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극우 대중운동은 명백히 전체주의를 지향한다. 단지 지금의 한국에서 전체주의 운동이 아직 초기에 머무른 이유는 이념이 없기 때문이다. 주술과 무속, 음모론,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멸시, 또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막연한 반감 정도로 대규모 대중운동을 조직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 사회는 유대인 사회나 이민자 집단과 같은 배제할 특별한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독자적인 극우 정치세력이 등장하기에는 공허한 망상과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대신 이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보수 정당을 숙주로 하여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대안 매체를 통해 반민주당, 반이재명을 표방하는 교두보를 구축하려는 초기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서부지법 폭동과 같은 사건, 즉 무언가 서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극우세력 퇴출 위해 민주세력 연합과 연정의 정치 도모해야

윤석열은 존재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정치적·사법적으로는 윤석열을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윤석열 현상’은 제거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윤석열은 대통령직보다 지금 한국 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그 자신에게 더 존재감을 느끼며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극우 대중운동을 통해 기사회생을 꿈꾸며 더 깊은 망상으로 빠져드는 만큼 한국 사회는 깊은 분열과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는 높은 통합을 달성할 수 있는 더 강한 민주주의, 더 진정성 있는 소통과 협력, 그리고 담대한 연대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당과 정파를 초월한 새로운 다수파 연합, 즉 연합과 연정의 정치를 도모할 때가 되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 탄핵에 찬성했던 합리적 보수를 최대한 포용하고 협력해야 한다. 극우 세력을 한국 정치에서 퇴출시키기 위한 폭넓은 연합을 모색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극우세력이 정치를 흔드는 이스라엘과 같은 처지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레베츠키와 지봇 교수가 말하는 ‘극단적인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체제’다. 이스라엘과 인도, 헝가리, 폴란드에서 그런 체제가 한순간에 다가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종대 매의눈jdkim2010@naver.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