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道雨 2025. 2. 13. 09:16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공개변론이 한창이다. 묘하게 갈리는 진술 때문에 불안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헌법재판소 결정에 영향을 줄 만한 문제는 없었다.

계엄 요건이 전혀 충족되지 않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비상계엄 포고령 1호에 국회 활동 금지를 명시했으며, 이 조항에 따라 실제로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했다. 포고령 1호는 문서로 남아 있고, 실시간 중계로 국회 난입을 지켜본 국민이 증인이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헌법·법률 위반 중 이보다 중대한 경우가 또 있을까?

여기에 이견을 낼 수 있는 양심을 가진 ‘법률가’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문제는 12·3 계엄 사태 이후의 정치지형의 변화다. 많은 사람들이 ‘극우 정치’ 또는 ‘극우 포퓰리즘’이 기세를 부리고 있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보수정치는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통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 점에서 유럽과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유럽과 미국의 극우 포퓰리즘은 다양한 변종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다른 인종이나 이주자에 대한 혐오, 타 종교에 대한 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에 기반하며, 민족주의, 국수주의, 보호주의, 반세계화 경향을 보인다.

기존의 (정치)엘리트들이 다수 국민의 진정한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반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이들의 선동은 기본적으로 ‘우리’와 ‘그들’을 분리한 뒤, 그들을 ‘적’으로 만들어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그들에게 전가하는 식이다.

부분적으로 진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허위인 교묘한 ‘가짜뉴스’, 그리고 이를 뉴미디어를 이용해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정치선동가의 존재가 필수적 요소다.

 

한국의 보수정치는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지지했고, 엘리트주의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서구의 신극우와는 거리가 있었으나,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조금 다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발언으로 상징되는 여성에 대한 공격은, 소수자 혐오를 대선 캠페인에 활용한 최초의 사례였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이러한 고도의 선동을 이끌어갈 만한 정치적 역량도 기술도 없었기에 국정에 반영하지는 못했다.

대선 캠페인을 주도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혐오정치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정치인이었으나, 탈당하여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해졌다.

 

한국의 보수는 계엄 사태 이후 극우 포퓰리즘이라는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더 이상 그들은 자유시장경제나 법질서를 강조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심지어 경제성장에 있어서도 특별히 유능함을 보이지 못한다.

이제 그들이 기댈 언덕은 서구식 극우 포퓰리즘뿐이고, 그것이 이번 계엄 사태 국면에서 전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위헌적·불법적 계엄을 정당화할 방도가 없어 억지로 들고나온 부정선거론은, 어차피 길게 갈 수 있는 이슈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정선거론이 중국인 혐오로 연결되면서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부정선거의 배후에 중국인이 있고, 입법부·행정부·사법부·언론이 모두 중국 자본에 먹혔다고 한다.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이 다시 등장하고, 실업급여 반복 수급 문제, 건강보험 부정수급 문제, 영주권자 참정권 문제도 터져 나왔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집회에서 “중국인들이 탄핵소추에 찬성한다고 나선 바로 이것이 탄핵의 본질”이라고 말했고, 유상범 의원은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급기야 윤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 불법선거가 사실 중국과 크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 혐오는 서구의 극우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패턴과 매우 닮아 있다. 윤석열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선동의 방법은 그대로, 대상을 바꿔가며, 중국인에서 이주자, 난민,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등에 대한 혐오로 진화해나갈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과 유럽의 극우가 진화해나간 것처럼 말이다.

 

극우 포퓰리즘의 발호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전세계에 수없이 많지만,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지를 제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화끈한 해결책이 있었다면 세계가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을 테다.

극우를 합리적 보수와 분리하여 고립시키고, 동전의 양면인 좌파 포퓰리즘과도 단절해야 한다는, 대략적인 그림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탄핵될 것이고, 내란죄 우두머리로 중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사태로 한국에서도 극우 포퓰리즘이 본격적으로 발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