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코앞에 다가온 극우 파시즘

道雨 2025. 2. 13. 10:06

코앞에 다가온 극우 파시즘

 

내란 사태가 이제 준내전 상황으로 변했다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는 힘이다”.

 

조지 오웰이 파시즘과 전체주의 하의 광기와 언어유희를 이렇게 비꼬았다.

당시 그는 나치 하의 독일과 소련 전체주의를 빗대서 이렇게 말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지금 한국 이야기라는 것을 섬찟하게 알아챌 수 있다.

 

무장 군인의 국회 난입이 ‘질서유지’, 계엄이 ‘계몽’, 서부지법 파괴가 ‘성전’, 폭력배가 ‘애국자’, 그리고 내란 혐의로 구속된 대통령이 방어권 보장을 못 받는 인권침해 피해자가 되었다, 그래서 권리행사 못하는 약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국가인권위가 대통령 방어권 보장 요구를 의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언어의 장난을, 한국에서 가장 힘있는 국회의원,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집단인 판사 검사,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신문이 저지른다.

 
극우 폭력의 빗장 열리자, 쏟아져 나온 가치전도의 ‘개소리들’

이제 도대체 뭐가 진실이고 실제 일어난 일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름 붙이고 설명해야 할지 헷갈리게 되었고, 노골적인 거짓말, 일방적인 선전과 주장, ‘개소리’들이 큰 확성기 볼륨이 되어 온 국민의 귀에 들어온다.

법의 집행이 조롱거리가 되고, 헌법재판소가 파괴의 대상이 되었다.

어쩌면 전면전보다 더 무서운 개념과 가치의 전도, 사실상의 언어 내전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언어유희는 곧 광기와 혐오, 폭력과 학살이 난무하던 극우 파시즘 시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12.3 윤석열의 쿠데타는, 곧 이은 탄핵 국면에서 준내전적인 상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극우 폭력의 빗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역사상 이런 일이 처음인가?

아니다.

 

친일파가 반공투사로 둔갑했던 1945년 8.15 직후의 남한이 그랬다.

국제적으로는 히틀러와 무솔리니 집권 전야의 독일과 이탈리아가 그러했고, 1950년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미국이 그러했다.

폭력과 학살을 ‘애국’이라 했고, 전체주의적인 통제와 광기가 자유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다.

인격파탄자들이 최고 권력자가 되어, 특정 인종을 혐오의 대상으로 지목하여 가장 비극적인 대량 학살을 자행했던 암흑시대였다. 그래서 제2차 대전 중 7천만 명 이상이 전쟁과 학살의 희생자가 되었다.

 

1945년 8.15 이후 1953년까지 한반도에서는, 일제하 풍찬노숙하며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많은 지도자가, ‘빨갱이’가 되어 테러나 학살의 희생자가 되었고, 제주도와 호남 일대,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서 전투원이 아닌 민간인 수십만 명이 학살당하고, 남은 가족들도 평생동안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지금 대통령이 피해자가 되었고, 민주당이 내란세력이 되었다.

과거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것은 제노사이드의 기본 특징이다.

 

과거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영락교회로 집결하여 제주도에 내려가서는, 아름다운 섬을 적대와 학살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독일과 유럽 각국에서 심각한 혐오 차별을 받아오다가 대량 학살의 희생자가 되었는데, 지금 네타냐후가 지배하는 이스라엘은 가장 잔혹한 가해자가 되었다.

 


극우반공주의와 복음주의 기독교의 결합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기까지 흔드는 한국 태극기 부대의 행동은, 전 세계 어떤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반공주의가 복음주의와 결합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것이 설명된다.

반공주의와 복음주의 기독교는 논리구조가 동일하고, 공통의 적, 좌익을 적으로서 마주한다. 그런데 이런 ‘적과 나’의 이분법, 적에 대한 악마화, ‘십자군 운동’과 마녀사냥의 담론이 양 진영의 심리구조에 공통된다.

이 복음주의적 열광, 극우반공주의는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한국은 그 종속적 수출기지였다.

역사적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전쟁 전후 기독교 인사들은 수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학살의 가해자이기도 했다. 오제도 한경직 장도영 등 영락교회 출신 극우파 인사들은 모두 공산주의를 붉은 마귀(赤魔)로 부르면서 제거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들은 북한 공산주의를 ‘사탄’의 진영이라고 부르면서, 동족 학살을 윤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정당화하였다. 물론 당시 학살의 지휘명령자였던 조병옥과 이승만도 그런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런데 한기총의 조직, 서울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지지와 동조 속에, 전광훈이라는 새로운 선동가의 등장은, 과거의 부흥회 방식의 열광에다 혐오를 상품으로 돈을 버는 극우 유튜버들의 장사속과 맞물려, 최근 20년 사이에 한국 사회에 가장 주목할만한 현상이 댔다.

팬덤 정치와 온라인 대중화, 일베의 혐오주의 확산은, 모두 동시에 발생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현상이다. 이 자극적인 퍼포먼스에 열광하는 새로운 극우 군중들은 모두, 21세기의 불안이 그 밑거름을 깔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논리와 돈을 제공하는 세력은, 아마도 대형 교회의 장로 직위를 가진 한국 상층부 엘리트와 자본가들일 것이다.



중국은 적대해야 하고, 미국은 윤석열 구제하리라는 굳센 믿음

그럼 한국의 평범한 대중들이 갑자기 ‘십자군 전쟁’의 열광과 구국의 사명감에 휩싸인 이유는 무엇일까?

8.15 직후 반탁운동과 극우 테러를 자행한 극우 청년이나 서북청년단 단원들은, 아마 2, 3년 전 일제 말에는 분명히 온순하고 복종적인 신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극우 폭력단으로 돌변했는가?

그들이 사고무친 남한 사회에서 갖는 실업, 위기, 불안 고독을, 바로 우익 정치가들이 적절한 언어와 해석의 체계로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독립국가가 수립되면 처벌을 면할 수 없었던 친일파는, 반공주의가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강력한 언덕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공산주의의 피해를 입은 월남 청년들, 농지개혁이 되면 자기 재산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지주 출신들이 극우반공주의라는 현실 해석의 무기를 제공해 주고, 폭력과 학살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해 주었다.

반공주의와 복음주의 신앙에는 적대 외에는 아무런 논리가 없다. 그들은 이제 북한을 혐오 대상으로 삼는 것이 더 이상 설득력이 없으니, 이제 그 대상을 중국으로 옮겼다.

심지어 중국 공산주의 세력이 몰래 선관위에 들어와서 선거 조작에 개입했다 하고, 미국의 트럼프가 윤석열을 구제해 주러 온다는 내용도 돌았다.

 

그런데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인가?

중국은 공산당 일당 국가인 것은 맞지만, 중국은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국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오로지 미국의 국가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트럼프의 미국이 무슨 이유로 윤석열을 구제한다는 말인가?

반공과 복음주의 신앙 앞에서 논쟁과 설득은 거의 무의미하다.



청년들 귀에 여성들은 적, 이재명도 적이라고 속삭이는 자들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쓴 라이히는, 거대한 부를 가진 사람이 우파 정당의 편에 서 있다면, 그것은 다른 설명 필요없이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노동자가 우파 성향을 갖는다면, 그것은 정치적 명확성의 결핍, 즉 자신의 위치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극우 파시스트 권력자들은 힘겨워하는 청년, 노동자들에게 악마의 논리를 전한다. 그들의 고통의 구조적 원인은 슬쩍 감추고, 바로 당신 옆에 가해자가 있다고 속삭이면서 그들의 적을 지목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금융화로 인해 실업과 고용 위기 상태에 빠진 남성 청년들은, 여성들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되었다고 해석하고, 제조업 공동화로 실업 상태에 빠진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들은, 자기 동네에 들어온 이주자들 때문에 자신의 일자리가 없어졌다고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여성과 이주자가 적이 되어 버린다.

이번 서부지법 난동사건에서 청년들을 폭도로 나서게 만든 것은, 윤석열과 국민의 힘 의원들, 전광훈 등 기독교 선동가들이다.

이들에게는 이재명과 민주당이 ‘적’이다. 이재명이 적인 이유는, 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재명이 사퇴하면, 또 다른 민주당 후보가 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과 이재명 두 사람 모두 사퇴하라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언어의 유희, 노골적인 진실 은폐의 헛소리다.

백골단을 상징하는 흰색 화이바를 제대로 쓸 줄도 몰라서 비스듬히 머리에 걸치고 국회 기자회견에 나온 백골단 청년들의 역사에 대한 무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자신의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무지도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들을 선동해서 국회 기자회견장에까지 나오게 만든 김민전 의원이나 서부지법 난동사태에서 “곧 풀려날 것이다”라고 속삭인 윤상현 의원들의 죄과는 더욱 용서받기 어렵다.

 


극우 파시즘의 유일한 목표는 적 분쇄와 권력 장악

파시즘은 병이다. 그 병균은 온 국가와 사회를 좀먹고,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과거 유럽은 경제위기, 양극화, 대중들의 고용불안, 고립, 인종차별주의와 권위주의 문화 등의 토양 위에서 대중적 파시즘 운동이 먼저 형성되었고, 권력 상실과 자본축적의 위기에 놓인 극우 정치세력이 자극적 선동과 궤변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의 극우는, 언제나 대중보다는 봉건 군주와 같은 절대 권력을 꿈꾼 권력자들이 먼저 쿠데타를 감행하면, 불안하고 고립된 대중들이 마른 섶에 불이 붙듯이 그것에 복종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극우 대중들의 무지와 착오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불안과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적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쿠데타 내란을 감행한 이 병균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했듯이 “파시즘에는 일관된 목표나 일관된 정책이 없다. 유일한 목표는 반혁명뿐이다.”

모스코프스카는 “파시즘은 모든 좌익에 대한 십자군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좌익 세력이 그들에게 위협적인가 아닌가는 관심거리가 아니다.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은 좌익, 아니 극좌로 간주된다.

 

11일 권성동 국힘당 원내대표의 연설에서는 민주당, 이재명, 문재인이 수십 번 거론되었다. 지금 윤석열에게 면회를 가는 한국의 극우세력에게도 아무런 국가 목표나 이상이 없다. 민주당의 집권을 막는 일만이 그들의 지상 최대의 과제이고, 윤석열의 탄핵이 인용되면 그와 손절할 가능성이 크다.

 
생존의 위기 앞에 이성적 시민 모두 입 열고 행동에 나서야

이 병균이 온몸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으려면, 병균이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을 제거해야 한다. 심각한 불평등, 차별, 고독, 원자화, 그리고 지성과 공론의 실종이 그것이다. 결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과제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양당 어느 쪽이 당선되든 대선 이후가 더 두렵다. 그래서 지금 파시즘이라는 병균이 우리 몸에 스멀스멀 들어온 것을 아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대통령 탄핵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내란을 선동하고, 법치와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집단과 개인에게는 엄한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

이성적 시민은 침묵해서는 안 된다. 지식으로 밥을 먹고 사는 모든 법률인, 지식인, 언론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단체는 거리와 동네로 나가야 한다.

과거의 파시즘이라는 병균도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침묵 속에서 번성했다. 국가와 사회가 생존의 위기 앞에 놓였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mindle@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