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미 "국방비 8% 감축"…마침내 '케넌의 충고' 따르나

道雨 2025. 2. 28. 11:41

미 "국방비 8% 감축"…마침내 '케넌의 충고' 따르나

 

펜타곤 관료주의, '군살' 제거 중심…12년래 최대 폭

향후 5년 계획대로 이행하면 20% 이상 감축 예상

헤그세스 "예산 재조정 해 본토 방어, 첨단전력 투자"

바이든 '군사주의' 청산, 외교 복원 움직임과 맞물려

비대한 국방예산 '중독'된 주류사회 강한 반발 예고

대러 외교 개시 이어 중국에도 군사적 화해 제스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5년 동안 매년 국방예산 8% 감축을 공언했다. 한해 500억 달러 상당이다. 물론 미국이 군사 강국의 지위를 포기한 건 아니다. "군사력 약화는커녕 전투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장담이다. 우선순위 조정에 불과하다는 설명. 군살을 줄인다고 하지만, 국방예산 감축은 상당한 의미를 던진다.

 

 *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13일 브뤼셀의 나토본부에서 열린 국방장관 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25.2.13. AP 연합뉴스 

 

 

 

국경안보·아메리카 아이언돔에 집중

 

뉴욕타임스와 월스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은 2013년 감축 이후 최대 규모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거대 국방예산에 중독된 탓인지, 놀랍게도 어떤 레거시 미디어도 긍정적 측면을 평가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아젠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지역구 방위산업 일자리 영향을 비롯해 연방 상하원 의원들의 반발을 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4년 동안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일관되게 추진했던 '군사주의'에 비춰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은 분명 새로운 신호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외교로 선회한 것과 맞물려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18일 주요 골자가 공개된 '헤그세스 메모'는

△국방예산 매년 8% 감축

△중동 및 유럽 주둔 미군 사령부 감축

△핵무기 현대화, 버지니아급 잠수함, 공격용 드론, 함선, 미사일 방어, 사이버 안보 등 17개 분야는 감축 대상에서 제외

△국경 안보와 '아메리카 아이언돔' 프로그램 등 트럼프 대통령의 국방 우선순위 부문에 집중 투자

△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 중심으로 군 장성과 해군 제독 일부 해고 등을 골자로 한다.

메모는 헤그세스가 국방부와 군 수뇌부에게 내린 지시로, 구체적 실행 방안을 보고토록 했다.

 

관심은 단연 국방예산 감축에 쏠린다. 감축 규모와 속도에서 미국 국방 전략의 전환을 의미하며, 의회 통과 과정에서 다소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 감축은 의회의 예산안 한도 위기를 겪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3년 예산통제법에 따라 시행했던 예산감축과 비교하면 동기와 대상,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국방예산은 8500억 달러(약 1218조 원). 계획대로 이행된다면 20% 대의 감축이 예상된다.

공화, 민주당을 막론하고 정치권은 현 예산 수준 또는 증액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트럼프의 방침에 정면으로 맞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서 연설을 마치고 주한미군 장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19. 6. 30. 연합뉴스

 

 

 

예산안 사기-낭비-남용과 작별

 

국방 문제에 관한 트럼프의 신조는

△미국이 동맹국의 방위를 위해 과도한 부담을 해왔고,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켜 미국 젊은이들을 위험지역에 보냈으며,

△국경을 비롯해 미국 본토 안보가 불안해졌다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헤그세스는 지난 20일 펜타곤 연설에서 "트럼프의 대선공약인 '힘을 통한 평화'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구현하려는 게 예산 재조정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전투력 약화 우려에 대해 "예산의 사기-낭비-남용을 줄임으로써 군대를 재건하고, 전사(warrior) 정신을 복원하며, 억제력을 다시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살상 프로그램에 역사적으로 과소 투자했다"라면서, 군살 제거 부문은 비살상 부문임을 강조했다. 살상 프로그램은 미군의 대응능력을 의미한다.

 

예산안의 '사기-낭비-남용'은 정부효율부(DOGE)를 주도하는 일론 머스크의 주문이다.

헤그세스는 "군 사령부와 수뇌부의 군살을 최대한 줄여 다른 분야에 투자할 재원으로 삼겠다"라면서 "감축이 아니라 기존 재원을 재조정, 재투자해 미국민을 지키는 군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버트 살레스 국방부 차관 대리는 19일 성명에서 "우선순위에 예산을 배정하고, 전쟁 억제와 승전이라는 국방부의 핵심 임무에 다시 초점을 맞출 상쇄 목록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의 DEI 이니셔티브와 기후변화 프로그램 등을 "우리 군의 발목을 잡는 불필요한 지출"로 지목했다. 국방부는 21일 민간인 직원 5400명에 대한 해고에 착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역대 행정부가 키워온 DEI 부문의 예산과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건 비판의 여지가 다분하다. 궁극적으로 미군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128개의 군기지를 두고 있는 미국의 기후변화 외면 역시 우려를 자아낸다.

 

지역적으로 유럽 주둔 미군 사령부를 감축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역할 증대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미국이 줄인 만큼 (필요하면) 유럽이 채우라"는 말과 다름없다.

중동이 포함된 것 역시 미군의 직접 개입을 줄이겠다는 의도를 내보인다. 이 대목에서 미국이 그동안 유럽과 중동에서 수행했던 군사적 역할이 과연 해당 지역 안보 및 평화에 도움이 됐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포함된 인도·태평양 지역 사령부를 감축 대상에서 제외한 건, 그만큼 이 지역 안보를 심상찮게 평가한다는 방증이다. 상당 부분 바이든 군사전략의 결과이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첫 번째 세션을 마친 뒤 회의장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2024.11.18. AFP 연합뉴스 

 

 

 

바이든 '선군정책'과 대비

 

바이든 행정부는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대만이 될 수 있다"라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비한 연합훈련의 횟수와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한·미·일, 미·일·필리핀, 미·일·호주 등 이른바 '격자무늬 동맹'이라는 말이 나온 연유다.

미국 주도 대규모 연합훈련은 역으로 중국과 러시아 또는 중러의 대규모 연합훈련을 초래하면서, 되레 안보 불안의 요소가 됐다.

 

러‧중 정상은 작년 5월 공동성명에서 미국의 격자형 소그룹 결성과 대규모 연합훈련을 두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위협의 원천은 미국"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내에서도 "(바이든이) 선군(Military First) 정책으로 아시아를 화약고로 만들고 있다"(안보전문가 밴 잭슨)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유럽에서도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스테디패스트 디펜더 연합연습을 비롯해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훈련을 벌였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는 외면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에 에이태큼스를 비롯한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공격을 허용하면서, 핵전쟁의 위기를 끌어올렸다.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정확히 반대다.

우크라 전 종전을 위한 미‧러 간 정상외교에 이미 착수했고, 중국과도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가 벌이는 관세전쟁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헤그세스는 지난 13일 나토 국방장관회의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에 대해 태평양 지역 동맹과 파트너들과 강력하고 실제적인 억제력을 구축할 필요를 인정했다. '중국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 미국의 우선순위인지, 또 미국이 기대하는 인도태평양 4개국(IP4, 한‧미‧일‧호주)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물은 NHK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강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강조해 왔다"라면서 "우리는 중국과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지 않으며, 중국과 분쟁을 추구하지도 않는다"고 단언했다.

직접 바이든 시대의 대규모 연합훈련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 군사적 대치가 완화될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세계가 바이든의 4년 동안 보지 못한 장면이기도 하다.

 

* 미국 전략폭격기 B-52H가 19일 청주 공군기지에 정착해 있다. 한·미 연합훈련이 아닌 계제에 미 전략자산이 국내 공군기지에 착륙한 것은 처음이다. 2023.10.19. [국방부 제공] 연합뉴스
 
* 17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 태평양함대 전함들이 중-러 연합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2023.7.17. TASS 연합뉴스 

 

 

 

"전쟁보다 거래가 낫다"

 

트럼프는 유세 때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되풀이 강조해 왔다. 동맹국 지도자를 몰아세우면서,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만 손을 내민다는 비판이 나올만하다.

그러나 "전쟁보다 거래가 낫다"라는, 트럼프의 가치관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헤그세스가 거듭 강조했듯이 '사업가이자 협상가'인 트럼프의 군사전략이 강조하는 핵심 지역은 바로 미국 본토이다. 실현 의심되지만, 아메리카 아이언돔 역시 공격용 군비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예산 감축이 과연 글로벌 안보 위협의 감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적어도 바이든 시대의 군사주의를 청산할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미국의 비대한 국방예산은 멀리 한국전쟁 발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오랜 관행이다.

미국의 소련 전문가 조지 케넌은 "미국은 이미 세계 부의 50%를 갖고 있기에, 국방예산 증가 없이 소련과의 비대칭을 유지만 해도 된다"며 '소련 봉쇄(containment)'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해리 트루먼 행정부는 그러나 한국전을 빌미로 국방예산을 최고 3배까지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안보회의(NSC)-68 보고서를 승인했다. 폴 니츠 당시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이 작성한 비밀문서. 냉전과 냉전을 빌미로 미국 군산복합체의 유착이 시작된 원점이다.

 

케넌의 예측대로 소련은 전성기에도 미국 국력의 40%를 넘지 못했다.

소련은 미국에 군사적으로 패배한 게 아니었다. 경제적, 사회적 내부 모순 탓에 붕괴했다.

 

그러나 미국의 비대한 국방예산은 탈냉전시대에도 계속됐다. 베트남전에서 우크라전까지 근육질의 군사력을 과시해 온 기반이 됐다. 우크라전 초기 미국 내에서 케넌주의자와 니츠주의자 간의 토론이 새삼 부각됐던 이유다.

 

트럼프는 사업가이자 협상가의 관점에서 미국 주류사회의 오랜 관행을 깨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면서, 실제론 수많은 분쟁에 개입해 온 자유민주주의 국제질서는, 작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끝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에서도 군사적 대치 대신 타협을 선호했다. 최소한 새로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돌출 결정' 덕분에 세계가 평화로워진다면, 망외의 소득이 아닐 수 없겠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담은 '2024 공화당 정강' 중 '힘을 통한 평화'의 요지문. 미국 본토 방위를 국방의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진호 에디터gino777@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