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 헌재 결정문이 명판결인 이유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 인용 결정 이후, 온라인에서 헌재 결정문을 베껴 쓰는 ‘필사 챌린지’가 유행이라고 한다. 시나 소설에 등장하는 명문을 베껴 쓰듯, 결정문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쓰거나, 아예 통째로 필사한다는 것이다.
“(판결문 쓸 때) 정말 어려운 것은 재판 그 자체, 즉 삼단논법의 논리 상식에 따라 실체법이 정하는 구성요건인 법률사실을 확정하여, 이를 소전제로 하고 여기에 대전제인 법령을 적용하여, 결론으로서 그 법령이 정하는 법률 효과의 존부 및 내용을 판단하는 작업이다.”
사법연수원 교재 ‘민사실무 2’(2004)에 나오는 판결문 작성 요령이다.
잘 쓴 판결문의 조건으로 논리적 사고와 법률적 지식을 강조한다. 하지만 ‘논리’와 ‘법률’로만 구성된 판결문은 일반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무미건조한 법리만 따진 판결은 더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법 이론 선진국’ 미국은 법률가에게 일찌감치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다.
‘미국 증거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법학자 존 위그모어는 1908년, 법률가에게 추천할 책으로 문학 작품만 100권을 추천했다. 위그모어는 그 이유에 대해 ‘법률가는 자신이 담당한 사안이 일반적 사상과 문학 작품 속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숙지해야 할 특별한 직업적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이런 기조는 1970년대 미국 법조계에서 활발했던 ‘법과 문학’ 운동으로 이어졌다.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법도 문학도 선행 작가(판사)들의 누적된 창작에 부가한 역사적 결과물’이라고 했다.
판결문은 앞서 내려진 무수한 판례뿐 아니라 사상, 제도, 전통, 관습 등이 집적된 결과물이다. 법도 문학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공동체를 가질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 흔적을 담아야 한다(안경환 ‘미국에서의 법과 문학운동’ 1998). 따라서 잘 쓴 판결문에는 그 시대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담겨 있다.
헌재 결정문에 칭찬이 쏟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헌재는 시민들의 저항으로 지켜낸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114쪽에 이르는 결정문은 그 자체가 훌륭한 ‘헌법 교과서’다.
윤석열의 내란 의도(독재체제 수립)가 빠지는 등 일부 아쉬운 대목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 헌법의 가치를 보통 사람들의 언어로 설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명판결문’이다.
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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