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정영학 "검찰, 내 엑셀파일에 임의로 숫자 입력해 출력"
'이재명 배임'의 출발점 "평당 분양가 1500만 원 예상" 과거 진술 번복... 흔들리는 대장동 수사
대장동 사건 핵심 피고인 중 한명인 정영학 회계사가, 배임 혐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택지 예상 분양가'에 대한 과거 자신의 진술을 최근 법정에서 번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조사 당시 사실과 다르게 진술을 한 까닭은, 자신이 검찰에 제출한 USB의 엑셀파일에 검찰이 임의로 숫자를 입력하여 출력해 제시했기 때문이라며 "유발된 착오에 기한 진술"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검찰이 사실상 증거를 조작했다는 주장이어서, 사실로 확인될 경우 파문이 예상된다. 정 회계사 측은 "(검찰이 객관적 사실과 다른) 증거를 찾아서 가져오라고 여러 차례 요구한 바 있다"면서 "검찰의 기획 수사"라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 8일 또다른 핵심 피고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뇌물공여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데 이어, 정 회계사가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전면 번복하며 기획 수사를 주장함에 따라, 검찰의 대장동 관련 수사는 전체적으로 흔들리는 양상이다.
검찰 측은 정 회계사의 진술 번복 상황은 인정하면서도 그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정 회계사 측 변호인은 지난달 11일 대장동 사건 민간업자들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2부(부장 조형우)에 '변호인 의견서(21)'를 제출했다. 총 75페이지짜리 이 의견서의 부제는 '피고인 정영학의 기존 진술 중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라고 달렸다. <오마이뉴스>는 이 의견서를 입수했다.
"증거순번 704, 705는 검찰이 임의로 만든 것...기획 수사"

사건이 불거진 초기인 2021년 10월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정 회계사는 "대장동 택지 예상 분양가격을 평당 1500만 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으나, 공공의 이익이 많은 것처럼 모양새를 꾸미기 위해 평당 1400만 원으로 사업제안을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정 회계사 측 변호인은 의견서에서 "피고인(정영학)은 사업계획서 작성 과정에서 대장동 택지 예상 분양가격을 평당 1500만 원 내지 그 이상으로 예상하거나, 임대주택 부지(2차 이익)의 가액이 전체 개발이익의 50%를 상회하는 것처럼 외관을 갖추기 위하여 택지 예상 분양가격을 자의적으로 평당 1400만 원으로 축소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검찰 진술을 전면 뒤집었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2021. 10. 18.과 2021. 11. 21.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증거순번 705 시뮬레이션 엑셀파일 출력물'을 제시 받으면서 예상 분양가격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2015. 2. 26. 작성된 것으로 되어 있는 위 자료를 본 피고인은 2015년 당시 자신이 평당 1500만 원을 기준으로 사업성 분석을 하였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변호인은 의견서에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이후 아무리 되돌려 생각해봐도 대장동 택지의 예상 분양가격을 평당 1500만 원으로 계산한 기억이 없던 피고인은 혹시나 하며 검찰에 제출한 USB 파일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이 작성한 2015. 2. 26.자 사업성분석 계획서 엑셀파일에 택지 예상 분양가격을 평당 1500만 원으로 하여 사업성 분석을 한 흔적이 전혀 없음을 알게 있었고, '증거순번 705 시뮬레이션 엑셀파일 출력물' 및 '증거순번 704 수사보고'는 검찰에서 피고인이 제출한 엑셀파일에 평당 1500만 원의 숫자를 임의로 입력하여 별도로 사업성 분석 시뮬레이션을 한 다음 그 결과물을 출력한 자료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즉, 정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USB에 포함된 엑셀파일에는 평당 1400만 원으로 시뮬레이션 한 내용 밖에 없었는데, 검찰이 그 파일에 임의로 평당 1500만 원 시뮬레이션을 추가하여 문서로 출력, 자신에게 제시하며 물어봤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 정 회계사의 기존 진술은 "유발된 착오에 기한 진술에 해당하므로,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임의로 만들었다는 출력물은 검찰에 의해 증거로 법정에 제출되어 있다(증거순번 704, 증거순번 705).
또한 정 회계사 측은 "피고인에 대한 초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피고인이 대장동 택지 예상 분양가격을 평당 1400만 원을 초과하여 평당 1500만 원 또는 그 이상으로 예상했다는 증거를 찾아서 가져오라고 여러 차례 요구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검찰의 기획 수사는 객관적 사실관계보다는 미리 정해진 결론에 맞추어 증거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했다.
정 회계사 측은 다른 관련자들이 구속되는 상황에서 압박감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당시 구속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히 컸던 피고인은, 내용을 면밀히 살피지 않은 채, 수사기관이 질문하는 방향에 따라 진술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밝혔다.
3월 변호인 의견서 제출... 지난해 12월부터 법정에서 직접 과거 진술 번복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이러한 정 회계사의 진술번복은 3월 11일자 변호인 의견서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13일 법정 증언대에 선 그는 검찰 신문 때 "'(택지 예상 분양가를 평당) 1400만 원으로 해놓고 1500만 원으로 작성했다'고 한 부분은 (관련 자료를) 1500만 원으로 만든 기억이 없는데, (검찰이) 1500만 원으로 만든 자료를 제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뤄진 진술"이라고 증언했다.
사흘 뒤 12월 16일 열린 증인 신문에서도 김만배 측 변호인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김만배 측 변호인(이하 김) : "증인 입장이 변경된 이유가 무엇인가?"
정영학 (이하 정): "처음에는 1500만 원이라는 자료를 (검찰이 제시해서) 내가 만든 줄 알았다. 2015년 2월 26일 자료에 평당 1500만 원으로 돼 있어서 '내가 만들었구나' 해서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해당 자료는 내가 만든 자료가 아니었다. 그래서 (2024년 12월 13일 공판에서) 그 부분을 일단 말한 거다."
김 : "증인이 자료를 못 본 상태에서 진술을 시인했다는 것인가?"
정 : "(증거 순번) 705 자료는 내가 못 본 자료인데, 만들었다고 돼 있었다. (공사와 민간 분배) 50:50 근거가, 분명 내가 기억을 못 해서 그렇지, 내가 USB 일체를 검찰에 제출했는데, 거기에는 50:50 제안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 50:50 자료가 빠져 있었다."
김 : "증인은 검찰에 USB를 언제 제출했나?"
정 : "2021년 10월 1일이다."
김 : "검찰은 USB에 담긴 모든 자료를 이 사건 증거로 제출했나?"
정 : "다 제출하지 않았다. 저희(대장동 개발업자)가 계속 50:50으로 제안한 자료는 증거자료에서 다 빠져 있다."
이런 증언 이후 정 회계사 측은 보다 명확하고 자세하게 상황을 종합해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지난 21일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 후 기자와 마주친 정 회계사 변호인 이진석 변호사(법무법인 화우)는 의견서 내용에 대한 질문에 "적혀 있는 내용 이외에 저희가 따로 할 이야기는 없다"면서 "(의견서)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평당 1400만 원? 1500만 원? 이게 왜 중요한가

대장동 사업 초기 설계자로 평가되는 정 회계사가 2015년부터 평당 예상 분양가를 1400만 원이 아니라 1500만 원으로 예상했는지 여부는 대장동 재판, 특히 배임 혐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현재 정 회계사와는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관련 혐의에서 핵심이 배임이다.
대장동 사업 당시 이 전 대표가 시장이었던 성남시는, 평당 분양가 1400만 원으로 확정한 상태에서 시가 이익의 50%를 먼저 가져가는 방식(확정 이익)으로 민간업자들과 계약해 1822억 원을 벌었다. 그런데 막상 분양 때엔 부동산 호황기가 되면서 평당 평균 1600만 원대가 됐고, 민간업자들의 이익이 천문학적으로 커졌다. 만약 계약 때 평당 1400만 원이 훨씬 넘어설 것으로 미리 충분히 예측했다면? 정 회계사의 진술과 증거는 바로 이 부분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검찰은 이 전 대표 공소장에서 "피고인들(이재명 등)은 민간업자가 자의적으로 제시한 수치인 평당 1400만 원 가정이 객관적 근거를 갖춘 것인지, 감정평가 등 객관적 근거에 따른 예상 수익은 어떠한지 등에 대한 확인은 전혀 하지 아니하고, 객관적·합리적 예상에 따른 추가 개발이익에 대한 공사의 배당권 확보를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아니한 채 분양 예상가 상당의 확정 이익만 받기로 했다"면서 배임을 주장했다. 검찰이 계산한 배임액은 약 4895억 원에 달한다. 성남시가 그정도 더 벌 수 있었는데 일부러 포기하고 민간업자들에게 몰아줬다는 것이다.
"대장동 택지 예상 분양가격을 평당 1500만 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다"는 정 회계사의 기존 검찰 진술은 검찰의 배임 논리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전혀 없고 "평당 1400만 원의 예상 분양가격이 자의적으로 낮게 설정되었다고 볼 수 없음은 명백하다"는 정 회계사의 번복된 진술은, 정당한 사업 진행이었다는 이 전 대표 측 주장에 완전히 부합한다.
게다가 검찰이 초기부터 평당 1500만 원 증거를 찾아오라고 여러차례 요구했고, 급기야 검찰이 정 회계사가 제출한 증거에 손을 대서 1500만 원 진술을 유도했다는 주장은, 상황을 '검찰의 사건 조작 의혹' 차원으로 전환시킨다.

검찰 "전혀 근거 없는 주장... 법정에서 했던 말도 다 뒤집어"
정 회계사 주장에 대해 검찰 측은 전면 부인했다.
이 사건 수사와 공판에 모두 관여한 검찰 관계자는 "정씨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 얘기를 믿을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쨌든 본인이 종전 증언을 번복한 상황"이라면서도 "수사기관 진술이면 모르겠는데, 법정에서도 여러번 했던 얘기들을 다 뒤집는 말을 해서, 재판부가 현명하게 판단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영학은 누구인가... '수사 급물살' 녹취록 작성자... 홀로 구속 면해
정영학 회계사는 천화동인 5호 실소유자이자 대장동 개발사업의 설계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대장동 공판의 핵심 증거이자, 초기 수사가 급물살을 탈 수 있게 만든 소위 '정영학 녹취록'을 만든 장본인이다. 정 회계사는 지난 2021년 9월과 10월에 스프링 노트로 제본한 녹취록 8권, 녹음기, 녹음파일이 담긴 USB 등을 검찰에 자발적으로 제출했다.
녹취록에는 김만배와 남욱 등과 나눈 정관계 로비 정황과 수익금 배분 관련 논의 등이 담겼다. 2012년 8월 18일부터 2014년 12월 1일까지의 전반기 2년 4개월과 2019년 12월 23일부터 2021년 4월 27일까지 후반부 1년 4개월로 나뉜다.
녹취록 제공 때문인지 정 회계사는 다른 핵심 개발업자들이 모두 구속될 때 홀로 구속을 피했다. 이 때문에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형량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을 적용받기 위해 검찰 측과 협상하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다) 의혹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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