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부동산 양극화와 종부세 트라우마

道雨 2025. 6. 20. 08:55

부동산 양극화와 종부세 트라우마

 

 

 

지인은 50년 된 아파트에 산다. 집 앞 현관 천장에 덮개 없이 덩그러니 형광등이 달렸다. 바퀴벌레가 출몰해 밤잠을 설친 적도 잦았다.

낡은 아파트엔 지상 주차장만 있다. 빈틈없이 빼곡히 주차된 차들은 하나같이 고급 외제 차다. 주차 요원은 능숙한 솜씨로 방문객 차량까지 발레파킹해 줬다.

이곳은 오랫동안 강남의 부를 상징한 압구정 현대아파트다.

 

지난해 봄 지인 집을 찾아갔을 때, 한강변을 접한 지인이 사는 동의 아파트는 80억원에 거래됐다. 호가가 크게 뛰어 이제 115억원이 넘는다.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재지정과 재건축 기대감이 겹쳐 매물은 자취를 감췄다.

이곳은 보통 사람에게 현실감 있게 와닿지 않는 또 다른 세계다.

 

필자가 사는 서울 외곽 30년 된 아파트 단지들은, 4년 전 고점을 찍은 뒤 2억원가량 가격이 하락한 상태에서 여전히 옆걸음하고 있다. 매물은 수북이 쌓였다. 실수요자조차 관망세가 우세하다.

 

 

지인이 사는 아파트와 필자가 사는 곳의 평당 가격 차이는 8배다. 강남을 동심원으로 거리가 멀수록 그 배수는 더 커진다. 근래 들어 격차는 더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엊그제 한국은행이 펴낸 ‘주택가격 양극화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4년 이후 서울 집값이 112.3% 오를 때 전국 평균은 42.9%에 그쳤다. 서울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는 중국과 일본, 미국 등 주요 7개국 중 가장 심하다.

 

 

하향 안정 추세를 이어가던 부동산이 바닥을 치고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 진앙도 강남이다.

대선 전 뜬금없이 토허제를 해제한 ‘오쏘공’(오세훈이 쏘아 올린 공)의 실책이 기름을 부었다. 토허제를 재지정했지만, 불길은 순식간에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으로 번졌다. 서울 외곽과 수도권으로까지 확산할 조짐을 보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불길이 더 번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극심하게 양극화한 자산으로서 부동산에 맞춤한 정책도 함께 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이재명 정부는 과거 민주당 정부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계산으로 읽히기는 하지만, 너무 소극적으로 비친다.

이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초고가 아파트 가격상승 억제 중심에서 중산층,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공급 중심의 주거 정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또 후보 시절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폐지 또는 완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 게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 정부의 실패를 떠올리게 하는 종부세는 대선 때 금기어가 되었다.

 

 

종부세 트라우마는 거센 반발과 과도한 논란 그리고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 노무현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값 폭등이 종부세 탓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두 정부에서 이미 집값이 한창 급등한 뒤 사후 조치로 종부세 도입과 강화가 이뤄졌다.

물론 시장의 안정 수단으로서 종부세에 과도한 기대를 거는 것도 위험하다. 좀 더 근본적으로 종부세는 양극화한 부동산 시장에서 조세 형평성 강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인이 사는 아파트 단지 집주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종부세를 낸다. 올해는 전년보다 오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건이 동일(개인, 1인 소유, 1주택, 60세 미만, 1년 보유 등)하다고 가정할 때, 종부세는 문재인 정부 말기보다 약 450만원 늘어난 3500만원 안팎 추정된다. 같은 기간 집값은 거의 2배인 50억원이나 올랐다.

100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수천만원의 종부세를 매기는 게 과하다고 볼 사람도 일부 있겠지만, 자산이 50억원 불어날 때 세금은 겨우 수백만원 늘었다면 선뜻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마술이 가능했던 이유는, 윤석열 정부에서 종부세를 누더기로 만든 탓이다. 집값은 뛰었는데, 세율과 공시가격, 공정시장가액 비율 등을 낮추고, 공제액과 공제율은 높이는 등, 다층적으로 세 부담을 낮췄다.

 

종부세가 도입된 이듬해 국세청이 펴낸 ‘세금에 대한 오해 그리고 진실’이란 책자에 지금도 유효한 말이 나온다.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유세 부담의 정상화는 부동산을 보유하고 그 이익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때보다 양극화가 더욱 심각해진 지금, 비싼 아파트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 형평성을 꾀할 수 있도록, 약화한 종부세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가 더 심화하고 새 정부가 부동산 불평등을 방임한다는 메시지를 주게 된다.

 

 

 

류이근기자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