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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아시아드 바다 하프마라톤 참여기

道雨 2007. 6. 8. 22:48

 

 

 

         통일 아시아드 바다 하프마라톤 참여기

                                                                     -  오   봉   렬 -


  2003년 10월 5일 일요일 09시 30분, 진행자의 카운트다운에 뒤이은 마라톤 참여자들의 함성과 함께, 광안대교를 달리는 통일아시아드 바다 하프마라톤은 시작되었다.

  이번 하프마라톤의 코스는, 올림픽공원에서 출발하여 동백섬을 한바퀴 돌고 수비사거리에서 신시가지쪽 고가도로로 올라가 광안대교를 건너 동명정보대 입구(반환점)를 돌아서 다시 광안대교를 건너오는 코스로서, 광안대교를 오르내리는 것이 약간 힘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바다를 조망하며 부산의 명물 광안대교 위를 달리는 비교적 좋은 코스이다. 작년 봄에 있었던 광안대교 개통기념 달리기 대회 때는 10km 코스에 참여했었다.

  내가 하프코스를 뛴 건 이번이 세 번째이다. 작년에 다대포마라톤에서 처음으로 하프코스에 도전했는데, 경찰에 근무하는 조명성 동기생과 함께 뛰었지만, 다리 근력부족으로 후반부에는 걷는 구간이 제법 많이 있었고, 금년 봄의 해운대 환경마라톤 하프코스에서는 어느 정도 준비한 덕분으로 범진이와 함께 걷는 일이 없이 성공적으로 완주하였다.

  이번에는 평소에 달리기 연습도 거의 없이 아침에 축구하기 전 운동장 몇 바퀴 도는 것으로 대신하였고, 더욱이 혼자 등록을 한 탓에 함께 달리며 의지할 사람도 없었기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범진이는 고3으로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어 등록하지 않았다.

  대회 당일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에 하늘엔 구름이 끼어 있어 달리기 하기엔 아주 적당한 기후조건이었다.


@ D-5일(2003. 9. 30) 이전

  나는 혼자 달리는 것이 재미가 없어서 평소에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 상황은 여전하였다. 다만 아침에 조기축구회에 나가서 미니축구를 하는 것으로 달리기 연습을 삼노라 생각했다. 봄부터 매주 1-2회 정도(비가 오지 않을 경우)는 조기축구에 나가 축구를 했다. 축구를 하기 전 국군도수체조 등으로 몸을 풀고, 운동장을 몇 바퀴 돈 뒤에 축구를 했는데 그것이 체력 유지에 많은 도움이 된 듯 하다.


@ D-5일(2003. 9. 30)부터 D-1일 (2003. 10. 4)

  별도로 달리기 연습을 하지 않는지라 이번 주에는 매일 아침 조기축구에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야 5일밖에 안된다(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9월 30일(화요일)과 10월 1일(수요일)에는 수영구에서도 1명씩 축구에 참석하였다. 달리기 연습도 할 겸 되도록 많이 뛰려고 했다.

  10월 2일(목요일)은 영진복지관에 진료를 하러 가는 날인데도 축구를 하러 갔다. 오전에 영진복지관에서 약 50명 가까운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침을 놓아드리고, 저녁 때는 식사모임이 있었지만 달리기를 생각해서 술은 먹지 않았다.

  10월 3일은 개천절로 공휴일이다. 이날 아침에는 공휴일이라 그런지 축구회원들이 많이 나왔다. 축구 중 발목을 채여 타박상을 입었다. 달리기에 지장이 있을 까 염려가 되기도 하였다. 다른 때보다 조금 더 오랫동안 축구를 하고, 경주에 몇 군데 답사를 다녀왔다.

  10월 4일 토요일 아침에는 미니축구 후 대교(눈높이) 사람들과 모처럼 큰 골대로 축구하였다. 근래에 큰 골대로 축구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매일 축구를 하니 몸이 피곤하기도 하고, 허리도 시큰하고 무릎도 뻑뻑한 느낌이어서 무리가 되지는 않는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잠이 부족해서 피곤이 더한 듯 싶다.

  토요일 저녁에는 이발을 하고, 셔츠에 번호표를 붙이고 운동화에도 칩을 매달아 내일을 준비하였다.


@ D일(2003. 10. 5)

  어제 저녁 모처럼 일찍 잠을 잔 덕분에 피곤이 많이 가셔졌다. 그러나 몸이 썩 개운치는 않아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다. 타박상을 입은 발목과 뻑뻑한 느낌의 양쪽 무릎에 한방파스를 붙였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스포츠음료를 여러 잔 마신 후 옷차림을 준비하고 집사람과 함께 나섰다. 달리기 복장으로 행사장으로 향하는 동네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달리기 연습도 하지 않고 하프마라톤에 참여하니, 집사람은 걱정된 듯, 너무 힘들면 중간에 그만 두라고 한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약 15분 전인데 벌써 출발선에 많은 사람들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정준식 동기생도 뛴다고 했는데, 너무 사람들이 많아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정준식이는 1시간 30분대로 뛴다니 내가 쫓아가기는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냥 나 혼자 알아서 뛰리라 마음먹었다.

  진행자의 카운트다운과 참여선수들의 함성과 함께 출발하였다. 나는 중간 쯤에 섞여서 뛰었다.

  출발해서 이삼백 미터쯤 뛰었을 때 나에게 행운이 찾아 왔다. 지난 봄의 해운대 환경마라톤 때 우리 앞에서 뛰면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했던 그녀의 파란 유니폼과 이름이 눈에 띄었다. ‘효원마라톤클럽 최*숙’. 동료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시간대가 비슷한 것 같으니 이 사람을 쫓아서 끝까지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완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샘솟는 듯 하였다. 환경마라톤 때 첫 번째 난코스로 선정했던 동백섬 일주도 쉽게 달려나갔다.

  그런데 얼마 달리지 않아 오른쪽 고관절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축구할 때도 자주 삐었던 곳이라 염려가 되기도 하였지만 달리기를 멈출 정도는 아니다.

  수비사거리에 도달했을 때 음료수대가 있었는데 나는 별로 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물을 마시려고 멈추다보면 페이스가 흩어지기 때문에 나는 가급적 물을 마시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냥 지나치는 듯 해서 좋다 싶었는데 갑자기 물을 받으러 가는 바람에 나도 앞 쪽에서 물컵을 받아 달리면서 물을 마시다 사래들기도 하였다. 그녀는 내 뒤쪽에서 물을 받아 마시느라 늦는 것 같았기에 나는 그냥 계속 달려나갔다. 조금 있으면 쫓아오겠거니 생각하고. 어쨌든 나보다는 마라톤에 관록이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달리기가 끝날 때까지 나는 다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더 달리다 보니 왼쪽 어깨가 아파온다. 전에도 달릴 때면 곧잘 있던 증상이라 그러려니 하며 달린다. 내 목뼈가 시원치 못해 그런 듯 싶다.

  조금 더 달리다 보니 페이스메이커가 커다란 파란 풍선을 끈으로 허리에 매달고 내 옆을 지나쳐 달려간다. 풍선에 적힌 시간을 보니 ‘하프코스 1시간 50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두 번째 맞는 행운이었다. 지난번에 1시간 58분대였으니까 잘하면 이 풍선을 쫓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 까지는 몰랐는데 혼자 뛰는 경우 이러한 페이스메이커를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풍선 페이스메이커 아이디어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풍선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첫 번째 난코스는 수비사거리에서 신시가지 가는 터널 쪽으로 난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걷는 사람도 생기고, 나를 추월해 가는 사람도 생기고, 어쨌든 나는 풍선을 바라보고 뒤처지지 않도록 달렸다. 고가도로 위 터널 근처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 광안대교 쪽으로 달려나갔다. 광안대교 현수교까지는 계속되는 오르막길로서 (두 번째 난코스) 풍선을 쫓아가기가 약간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쫓아 갔다.

  왼쪽으로 바다가 확 트여 있는데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대마도가 비교적 선명하게 보인다. 대마도가 잘 보인다는 기쁨에 역사적 편린을 가슴에 새겨보며 힘을 내어 달렸다.

  마라톤대회 때는 사진을 찍는 사람(사진사)도 많이 있다. 지난 환경마라톤 때 범진이와 함께 달리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집에 걸려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이한 사진사가 다 있다. 광안대교 위에 고가크레인을 설치해 놓고 그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참 아이디어도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사진이 찍혔는지 모르겠다. 마라톤대회를 주관한 곳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자기가 찍힌 사진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사진만을 주문하면 되니까 편리하다.

  광안대교 위를 달리다 보니 가오리연(꼬리연) 하나와 방패연 하나가 하늘 높이 날고 있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연날리기 대회를 하면 수 많은 연들을 감상하며 즐겁게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광안대교에서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페이스메이커 풍선을 따라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이 코스가 지난 환경마라톤대회코스(신시가지를 도는 코스)보다 더 힘들 것이니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1시간 50분은 내게는 아직 무리인 것이다. 동명정보대 입구에 반환점이 설치되어 있었다. 페이스메이커는 이미 내 앞에서 한참 멀리 달아난 뒤이다. 이제는 할 수 없다. 내  페이스대로 뛰는 수밖에.

  다시 광안대교로 접어들면서 바나나 한 개를 받아 허겁지겁 먹으며 달렸다. 물이 없어 목이 막힌다. 안먹어도 되는데 괜히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달리다보니 다행히도 괜찮아진다. 광안대교의 오르막길(갈 때는 상판인데 돌아올 때는 하판이니 높이가 낮아 다행이다)이 세 번째 난코스이다. 허리가 시큰해오면서 자꾸 구부려지려고 한다. 몸이 피곤할 때 느끼는 증상이다. 의식적으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계속 달린다.

  현수교 주탑이 있는 곳에 이르니 이제 거의 다왔다는 생각이 든다. 완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더욱 커진다. 시간도 1시간 50분에서 2시간 사이가 될 듯 싶다. 왜냐 하면 2시간 페이스메이커 풍선은 아직 내 뒤에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뛰는 앞 쪽에서 우리쪽으로(반대 방향으로) 뛰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번호표를 보니 하프코스 뛰는 사람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완주해 놓고 자기 동료들을 응원하러 온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물병도 하나씩 들고...이것이 바로 동료애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된다. 군대에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에게서 전우애가 싹트듯이.

  광안대교도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출발점이 눈 앞에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나도 힘이 난다. 힘들게 달려온 사람들도 마지막 도착점에서는 더욱 힘이 나는 듯 하다.

  도착점에 들어와서 칩을 반납하려고 광장에 갔는데 칩 반납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도착점 뒤 길에서 받는다고 하여,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칩을 반납하러 다시 큰길로 내려갔다. 다른 사람들도 칩 반납하는 곳을 못 찾아서 불평들을 하였다.

  큰길로 내려서니 혼란의 도가니였다. 지금까지의 경우를 보면 넓은 곳에서 칩을 반납받고 완주기념메달과 음료 및 빵 등을 주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칩은 따로 반납받고 기념메달은 다른 데서(좁은 공간) 주니 혼잡과 무질서의 극치였다. 뒤에서 밀치는 사람들 때문에 앞에 있는 사람들은 다칠까 염려되었다. 기념메달을 사람들 머리 위로 몇 개씩 던지기도 하여 분노를 자아냈다. 결국 나는 기념품과 음료수 등을 받는 것을 포기하고 집사람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였다. 21km를 넘게 2시간을 달려와 물 한 잔 얻어먹지 못하고, 다칠 것을 염려해 메달도 포기해야만 하였다.

  옥의 티였다. 이렇게 혼잡할 줄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진행팀의 미숙함이 너무도 어리석게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의 축제의 장이 분노의 장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기분이 좋았다. 완주했다는 기쁨이 다른 모든 불만스러운 것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내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도록 도움을 준 효원마라톤클럽의 최*숙, 파란풍선의 페이스메이커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특히 마음속으로 성원해준 나의 가족과 동료 후배 등 여러분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렇게 해서 나의 세 번째 하프마라톤도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며 끝맺음을 하게 되었다. 내년에는 풀코스에 도전해볼 생각인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함께 뛸 사람이 있으면 더욱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