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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962개, 진짜 홈런왕 따로 있다

道雨 2007. 7. 26. 10:03

 

       통산 962개, 진짜 홈런왕 따로 있다

 

[오마이뉴스 이정래 기자] 배리 본즈(43·샌프란시스코)의 홈런에 메이저리그가 들썩이고 있다. 25일 현재까지 통산 753개의 홈런을 쏘아 올린 본즈는 두 개의 홈런을 더 추가하면 행크 애런의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인 755개와 타이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본즈는 베이브 루스(통산 713호)와 행크 애런을 넘어서게 된다.

그러나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을 받고 있는 본즈의 홈런 기록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여론은 본즈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본즈가 자신의 가치만큼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름조차 생소한 '잊혀진 홈런왕' 조시 깁슨에 비한다면 본즈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조시 깁슨은 통산 962개의 홈런을 때려낸 홈런왕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그는 잊혀진 홈런왕이다.

 

962개의 홈런을 때려낸 잊혀진 홈런왕 조시 깁슨

▲ 잊혀진 홈런왕 조시 깁슨.
ⓒ2007 미국 명예의전당 공식홈페이지

1911년 12월 미국 조지아주 부에나비스타에서 태어난 조시 깁슨은 피츠버그에서 성장했다. 유년시절 부터 야구에 남다른 재능을 가졌던 조시 깁슨은 1930년 니그로리그 홈스테드 그레이스에 입단을 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재능이 있는 선수라면 당연히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려야 했지만, 1887년 메이저리그의 인종분리 정책으로, 유색인종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은 불가능 했다. 결국 1947년 재키 로빈슨이 인종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전까지 재능 있는 많은 흑인선수들이 단지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니그로리그에서 프로생활을 해야 했다.

당시 홈스테드 그레이스의 주전포수가 손 부상을 당하자 이미 조시 깁슨의 재능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단장이 조시 깁슨에게 포수를 볼 수 있는지 물어보자 조시 깁슨은 자신있게 " 예! " 라고 대답을 했다. 그것으로 전설의 홈런왕 깁슨의 프로 입단 교섭은 마무리 됐다. 조시 깁슨은 다음날 바로 계약을 체결하고 프로무대에 뛰어 들었다.

프로 데뷔 첫 시즌부터 엄청난 장타력을 보여주던 조시 깁슨이 본격적으로 홈런타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니그로리그 최고의 팀 피츠버그 크로포드로 이적하면서 부터였다.

1931년 75개의 홈런을 기록한 조시 깁슨은 1932년 .467의 타율과 55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1934년에는 69개의 홈런을 기록했다고 알려졌다. '알려졌다'라고 표현을 하는 것은 당시 니그로리그에 대한 기록이 지금의 메이저리그처럼 체계적으로 관리되지가 못했기 때문에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조시 깁슨은 니그로리그에서 활약을 했던 17년간 무려 962개의 홈런을 때렸으며 통산 .373의 타율을 기록했다고 한다.(미국 메이저 명예의 전당은 깁슨이 800여개의 홈런을 때렸다고 기록해 놓았다.)

1930년대 당시, 1927년 뉴욕 양키스의 베이브 루스가 60개의 홈런을 친 것이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 기록이었고, 니그로리그에서는 조시 깁슨의 84개 홈런이 최고의 기록이었다. 비록 아무도 기록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조시 깁슨은 베이브 루스보다 무려 24개나 더 많은 홈런을 때려낸 것이다.

니그로리그와 메이저리그의 수준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에는 곤란하겠지만 1947년 이후 재키 로빈슨과 실제로는 50살이 넘어서 데뷔 한 것으로 알려진 '전설의 투수' 새철 페이지 등 니그로리그 출신 스타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니그로리그의 수준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실제로 많은 경기는 아니었지만 메이저리그와의 인터리그에서 조시 깁슨은 4할이 넘는 타율과 5개의 홈런을 때렸는데 특히 양키스타디움에서는 190m의 초대형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니그로리그는 결코 메이저리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메이저리그가 재키 로빈슨을 받아들이면서 흑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은 인종 차별 철폐도 중요했겠지만, 흥행을 위해 니그로리그 스타들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한 아쉬움을 남긴 조시 깁슨의 짧은 생애

사람들은 조시 깁슨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과연 베이브 루스의 홈런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조시 깁슨은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던 해인 1947년 1월 뇌종양으로 불과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조시 깁슨은 1943년 이미 뇌종양 판정을 받았지만 생계를 이유로 당시 의사의 수술 권유를 거부했다.

니그로리그를 지배했던 영웅이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전해져 내려올 뿐 900개가 넘는 홈런을 때렸고 통산 .373의 타율을 기록한 조시 깁슨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진한 아쉬움을 남긴채 35세의 짧은 삶을 살고 떠나간 전설의 홈런왕 조시 깁슨은 1972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흔히 역사에 '만약(if)'이라는 가정법을 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들 말하지만, 만약 메이저리그에 인종차별이 없었더라면 본즈는 조시 깁슨의 불가능한 홈런 기록에 도전해야 했을 지도 모른다.

25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인 버드 셀릭이 본즈의 홈런 신기록 도전 경기를 참관한다고 발표를 했다. 비록 여전히 약물 복용 의혹을 받고 있지만 유죄판결 이전까지는 일단 기록을 인정해주겠다는 입장이다. 본즈는 행복한 선수다. 적어도 조시 깁슨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