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2003년 부산 해운대 환경마라톤(하프코스) 참여기

道雨 2007. 6. 8. 22:45
 

 

  2003년 부산 해운대 환경마라톤(하프코스) 참여기

                                                                  -  오  봉  렬  -

 

 


 ‘2003년 세계 물의 해’와 ‘물의 날(3월 22일)’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서, ‘아람배 PSB 해운대 환경마라톤’이라는 비교적 긴 이름의 마라톤 대회가, 우리가 사는 해운대에서 열리게 되었다. 풀코스는 없고 하프코스, 10km, 5km의 3종목으로 이루어지지만, 아직 풀코스에 도전하기 어려운 나로서는 우리 동네에서 열린다는 것이 반가워, 나와 공진이 이름으로 하프코스에 참가 신청을 하였다(범진이는 빠지겠다고 해서 나와 공진이만 신청함).


 작년 가을의 다대포마라톤(하프코스)에서 연습이 없이 뛰었다가 고생을 많이 한지라, 이번에는 연습을 충분히 하고 뛰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생각대로 충분한 연습은 하질 못하였다. 지난 년말부터 과도한 음주 및 무절제한 몸관리, 집안 행사 등으로 마른기침이 계속되는 등 컨디션이 좋지 못하여, 1주일에 한 번 아침에 축구하는 것(마스크를 쓰고 하기도 했다)을 제외하고는 3월 중순까지 전혀 달리기 연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에 취약점으로 지적되었던 하체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 방안에서 걷는 기구를 사다 놓고 짬짬이 걷기운동을 하였다. 조깅화도 가벼운 것으로 새로 준비했다.

 공진이가 얼마 전에 축구하다가 발톱을 부상당해 마라톤을 하기 곤란하다고 하여, 지난번 다대포 마라톤 때 같이 뛴 경찰 친구에게 같이 뛰자고 해 두었다.


 D-6일(2003. 3. 17. 월요일)

 오늘 대회 때 쓸 물품들(칩, 셔츠, 번호표, 팜플렛 등)이 도착했다. 팜플렛을 한참동안 뒤적이며 출발시간, 코스 등을 확인하였고, 참가자 명단에 아는 사람이 있나 찾아보았다. 이름을 알만한 사람들이 몇 명 눈에 띈다. 아는 사람 명단만 봐도 반가운 마음이 든다. 허옥경 해운대구청장 이름도 들어있다.

 이제 1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지금까지도 달리기 연습을 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그저께(토요일)는 동기생들 모임이라 늦게까지 술마시며 보냈고, 어제(일요일)는 ‘자기사랑’(해변도서관 주부독서회) 팀과 경주 불국사 근처와 외동지역 문화유산을 답사하였다. 빗속에 우산을 받쳐들면서까지 열심히 따라와 준 분들이 고마웠다. 답사 일행 중에도 이번 해운대마라톤(하프코스)에 참여한다는 사람이 있어 반가웠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연습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 밤 11시쯤 집을 나섰다. 집에서 동백섬까지 뛰어갔다 오기로 마음먹었다. 동백섬까지 가는데 약 2km 정도 되니까 동백섬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약 5km는 뛰는 셈이므로 어느 정도 연습이 되리라 생각하였다.

 약 500m도 달리기 전에 약간 숨이 차기 시작한다. 속도를 약간 줄이며 계속 뛴다. 다행히 횡단보도 신호가 나를 도와주는 듯, 내가 도착할 때면 파란 불이라 쉬지 않고 계속 뛸 수가 있었다. 그랜드호텔 옆을 지나기도 전에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것은 그전부터 경험해 본 것이라 그냥 뛴다. 어느 정도 지나면 어깨 아픈 증상은 소실될 것을 아는 때문이다. 조선비치호텔 앞에서부터는 오르막이다. 속도를 늦추지만 걷지는 않고 계속 뛴다. 한밤중인데도 걷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들을 지나쳐 가면서 한바퀴 돈다. 혹 아는 사람이 없나 얼굴을 쳐다보기도 하지만 모두 낯선 사람들이다. 첫날부터 많이 뛸 수 없어 한 바퀴만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도 횡단보도 한 군데서 잠시 쉬었을 뿐 계속 뛰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는 않고 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오른쪽 발등을 보니 땀띠 같은 것들이 많이 솟았다. 한쪽만 그런 것으로 보아 피부병이나 식중독 같지는 않다. 아마 한 달 쯤 전에 축구하면서 오른 쪽 정강이 안쪽을 채여 지금까지 어혈이 남아 있는데 이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D-5일(2003. 3. 18. 화요일)

 어제 달리기 연습했다고 다리가 약간 무겁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축구장으로 갔다. 운동장을 5 바퀴 뛰고 나서 다른 팀에 섞여서 축구를 했다.

 점심시간에는 영진복지관 한방진료 자원봉사자 간담회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축구와 달리기를 권유하였다.

 어제의 달리기와 오늘 아침의 달리기 및 축구로 약간 무리가 된 듯하다. 대변 볼 때 출혈이 있었다. 특히 무릎이 시원치 못한 것 같아 약간 걱정이 된다.


 D-4일(2003. 3. 19. 수요일)

 어제 좀 많이 뛰었다고 아침까지 무릎이 좋지 않다. 오늘은 해운대구한의사회 월례회도 있어서 신경이 많이 쓰이고 술 먹을 일도 걱정이다. 가급적 술을 피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월례회에 나갔다.

 ## 원장과 ** 원장 이름을 팜플렛에서 봤길래 마라톤 신청했느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 원장은 이번에 너무 연습을 못해 뛰지 않을 예정이라고 하였다. 평소에 저렇게 달리기 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이 못뛴다고 하다니 의아한 생각이 들며, 내가 너무 무리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긴다.

 월례회 식사 중에도 맥주 1-2잔으로 용케 넘어갔다. 가급적 마시지 않으려고 한 것이 유효했다.

 월례회 마치고 집에 와서는 동백섬을 뛸까 하고 생각했지만 무릎이 좋지 않아 무리가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또 내일 아침에 축구해야 되니까...


 D-3일(2003. 3. 20. 목요일)

 잠을 좀 설쳤다. 자면서 오른쪽 발등이 가려워 손으로 자꾸 긁게 되었는데, 또 좁쌀같은 것이 많이 돋아났다. 어찌된 놈인지 생겼다 없어졌다 한다. 요즘들어 축구하기 전날은 오히려 잠을 설치게 된다. 오늘도 일찍 눈이 떠졌다. 잠도 일찍 깬 김에 운동장을 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운동장에 오니 신도시조기회(축구팀) 인원이 몇 명 나와 있다. 운동장을 한 바퀴만 돌고 그들과 함께 미니축구를 한 후, 다시 다른 팀에 섞여 축구를 했다. 달리기 연습하는 셈 치고 비교적 많이 뛰었다.

 저녁에는 피곤해서 달리기를 쉬었다.


 D-2일(2003. 3. 21. 금요일)

 아침에 달리기를 할까 생각했으나 잠을 설쳐 그만두었다. 새벽에 눈이 떠져서는 잠이 안오기에, 잠시 책을 보다 다시 잠이 든 후에 그만 늦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밤 11시 가까이 되어서 달리기 연습하러 나섰다. 오늘은 동백섬을 5 바퀴쯤 돌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츄리닝도 여름용의 얇은 것으로 바꿔 입고 나섰다. 지난 월요일에 연습을 해서 그런지 오늘은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 숨차는 것도 한결 덜해서 달리기가 좋았다. 동백섬 입구에 있는 토끼 방사장에 토끼들이 나와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지난 번에는 달리기만 생각하다보니 이놈들을 볼 여유가 없었는데, 오늘은 달리기가 좀 편해져서 토끼들 노는 것이 눈에 보이는가 보다. ‘그런데 이놈들이 이 한밤중에 잠은 안자고 뭐하러 나와있나?’ 하다가는 토끼가 야행성인 것을 생각하곤 그러려니 한다.

 동백섬을 반 바퀴도 돌지 않았는데 배가 아프다. ‘찬 기운이 들어오면 배가 아프다더니 옷을 얇게 입어서 그러나’ 생각하곤 그래도 쉬지 않고 계속 뛴다. 한 바퀴만 돌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리막길이 되면서 배 아픈 것이 사라진다. 한 바퀴 더 도는데 또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안되겠다 생각하고 두 바퀴만 돌고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약 6km 쯤은 뛴 것이니 얼마간 연습이 됐겠지 하곤 위안해본다. 작년에 하프코스 뛰기 전에 한 번도 연습 안한 것에 비하면 그래도 훨씬 낫다는 생각에 약간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였다.


 D-1일(2003. 3. 22. 토요일)

 어제 동백섬을 두 바퀴 돌고 왔어도 몸은 지난 번보다 좀 낫다는 생각이 든다. 웬만하면 중간에 걷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마라톤의 목표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중간에 걷는 일 없이 완주하는 것이다. 다대포보다 언덕길이 많아 더 힘들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시간은 줄이기가 어렵다고 보지만 잘 하면 완주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함께 뛰기로 했던 경찰 친구놈이 낮에 전화해서는 못 뛸 것 같다고 한다. 이유는 “전쟁(이라크전)도 났고......”

 친구가 저녁 함께 먹자는 것도 내일 마라톤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사양했다.

 진료를 마치고 나서 집사람과 함께 탁구장에 갔다. 집사람도 다음주 일요일(3월 30일)에 탁구 시합에 참가한다고 해서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고, 나도 내일에 대비해 몸을 풀어야 겠고 겸사겸사 약 2시간 동안 탁구를 했다. 집사람이 그동안 우2동 사무소에서 탁구를 배워 많이 늘었다. 이제 나랑 막상막하가 됐다. 탁구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연양갱, 오예스(고탄수화물 음식이라고 하길래) 등을 사서 내일에 대비했다.


 범진이도 며칠전에 축구하면서 무릎이 다 깨어져 상처가 크게 났다. 저녁 먹으면서 범진이에게 “네 친구 중에 하프코스 뛸 사람 없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뛰겠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같이 뛸 사람이 없다고 하니 제딴에는 걱정이 되었는가 보다. 어쨌든 나로서는 같이 뛸 사람(더군다나 아들놈이니)이 생겼으니 안심이다.

 마라톤 출발시간이 9시이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5시경(달리기 4시간 전)에 일어나고, 아침식사는 탄수화물 위주로 6시경(달리기 3시간 전)에 하는게 좋겠다고 팜플렛에 씌어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야 되는 것도 부담이다. 날씨가 추울 듯해서 주최측에서 준 셔츠는 제껴두고 반팔 티셔츠에다 번호표를 붙이고, 조깅화에 칩도 미리 끼워 묶어 놓았다. 범진이도 축구 유니폼에다 번호표를 붙이고, 비교적 가벼운 운동화에 칩을 묶었다. 손이 시릴 것을 대비해 실장갑도 미리 사다 준비해 놓았다.

 집사람도 내일 함께 가기로 하였다. 우리 옷과 짐을 보관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옷 보관소가 있지만 맡기고 찾는데 시간도 걸리고 추위에 오래 노출되면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달리기 직전에 츄리닝을 벗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작년에는 허리쌕에다 차 열쇠 · 물병 등을 휴대하고 뛰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올해는 최대한 가볍게 하기 위해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 뛰기로 하였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12시 좀 지나 잠자리에 들었다.


 D일(2003. 3. 23. 일요일)

 드디어 D-day가 왔다. 마음에 약간 흥분이 되는지 잠은 좀 설친 듯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좋다.

 권장 시간(5시)보다 약 한 시간 정도 늦은 6시쯤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일어나 대충 씻고 방안에서 맨손체조를 하며 몸을 풀었다. 3사관학교에서 배운 국군도수체조이다. 군대생활을 접은 지가 벌써 15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난 국군도수체조를 즐겨 한다. 축구하기 전에도 항상 국군도수체조로 몸을 풀고, 방안에서 집사람과 함께 가끔 같이 하기도 한다. 집사람도 좌우가 헷갈리지만 제법 따라 한다. 오늘은 나 혼자 체조를 했다. 범진이는 늘 잠이 부족한 상태(고3이니까)라 깨우지 않고 그냥 두었다.

 역시 권장시간 보다 한 시간 정도 늦은 7시 경에 숭늉물에 밥을 말아 익은 김치로 간단히 식사를 했다. 그리고 어제 준비한 고탄수화물인 연양갱과 오예스를 한 개씩 먹었다.

 가방에 연양갱, 오예스, 귤 등을 넣어 준비하고, 달리기 복장 위에 츄리닝을 걸치고 3명(나와 범진이, 집사람)이 8시 15분 경에 집을 나섰다.

 주차시키고 올림픽공원 출발지점 근처에 도착하니 하프코스 출발하기 약 20분 전이다. 약간 시간이 있는 듯하여 오늘 지원나오기로 되어 있는 스포츠한의학 팀을 찾아보려 했는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고 그냥 출발하게 되었다.

 출발 10분쯤 전에 겉옷을 벗어 집사람에게 맡기고, 범진이와 간단히 몸을 풀고 나서, 무리하지 말라는 집사람의 당부를 들으며 출발선에 모여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하프코스 참가자 중의 거의 맨 뒤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범진이가 장갑을 옷에 넣어두고는 안 끼고 나와서 내가 한쪽을 주어 둘이서 한쪽씩만 끼게 되었다. 땀을 씻기 위해서이다.


 드디어 출발의 신호가 울리고 우렁찬 함성과 함께 달려 나갔다. 하프코스, 5km, 10km 순서대로 출발하였다.

 범진이에게 “내 걱정하지 말고 네 맘껏 뛰라”고 얘기했는데도, 제 딴엔 내가 염려되었는지 그냥 내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같이 뛴다. 고맙고도 기특한 생각이 든다. 혼자 뛰는 것 보다는 보조를 맞춰 같이 뛰는 사람이 있으면 훨씬 덜 힘들다.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된다.

 한화콘도를 지나도록 어깨 아픈 증상이 없다. 이것도 연습한 효과인가 보다. 날이 추울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만큼 춥지 않아 달리기에 좋았다. 다대포 때는 한참(5km 이상)을 달릴 때 까지 손이 시리고 팔꿈치가 가렵고 했는데 전혀 그런 증상도 없다. 땀도 별로 나지 않는다.

 공중에는 헬리콥터가 떠 있다. 아마 마라톤대회 모습을 항공촬영하는 것이겠지. 그런데 헬리콥터의 요란함 때문인지 갑자기 이라크전 생각이 났다. 한 쪽에선 전쟁이고 또 여기서는 마라톤 축제라니, 아이로니컬하기도 하고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곧 달리기로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셔츠의 등쪽에 ‘악양 건달회’라 쓰인 재미있는 이름의 단체 참가자도 보이고, ‘효원마라톤클럽’이라고 쓰인 파란 셔츠도 눈에 띈다. 아마도 부산대학교에 근무하는 듯...


 첫번째 난코스인 동백섬에 접어들었다. 약간 오르막이라 숨이 차고 속도가 처진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예의 그 토끼들이 모두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듯 밖에 돌아다니는 놈이 없다. 동백섬을 한 바퀴 돌고 그랜드호텔 쪽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벌써 돌아오는 사람이 보인다. 다시보니 10km 참가자이다. 앞에 10km 반환점 표지판이 보인다. 여러 사람 속에 섞여 뛰다보면 못 보고 지나칠 듯도 하다. 아닌게 아니라 조금 더 가니 10km 참가자가 반환점을 못보고 지나쳤는지 저 앞에서 우리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코스 안내 및 통제를 확실하게 해 주지 못한 탓이라 생각된다. 어쨌든 우리는 벌써 5km는 뛴 셈이니 힘이 나는 듯하다. 뛰는 중에 범진이가 물을 잡아 건네준다. 아직은 물을 먹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들의 성의가 고마워 한 모금 마시고 돌려주었다. 조금 더 뛰던 중 범진이가 자원봉사자(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에어파스를 뿌려준다)에게 파스를 뿌려달라고 한다. 나는 속도를 더디하고 기다려 주었다가 다시 같이 뛴다. 왼쪽 발목이 약간 아프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 뛸 수는 있을 것 같은 상태인가 보다.


 두번째 난코스, 삼성빌딩 앞 고가교이다. 여기는 높이도 제법되고 길이도 길어 훨씬 속도가 처진다. 벌써 걷는 사람도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천천히지만 걷지 않고 계속 뛴다. 우리가 제법 여러 사람들을 추월해서 지나갔다.

 장산역을 지나 앞으로 계속 달려가고 있는데 벌써 반환점을 지나 신시가지를 한 바퀴 돌고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니 벌써...” 하며 모두 놀란다. 저 사람들은 아마도 1시간 10분대의 사람들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계속 뛴다.


 비로소 커브길을 돌아 다시 성심병원 쪽 방향으로 뛴다. 세번째 난코스로서 경사는 작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이라 숨이 차고 속도도 늦어진다. 지금까지 달려온 곳 중 최대의 어려움에 직면한 듯하다. 앞에 예의 파란 셔츠 ‘효원 마라톤클럽 최**’라고 쓰인 옷이 보인다. 여자이다. 별로 힘들이지도 않게 잘 뛴다. 이 사람을 목표로 하고 뒤처지지 않게 애써서 쫓아간다. 곳곳에서 차량통제 때문에 경찰이나 자원봉사자들도 어려움이 많은 듯하다.

 성심병원 근처에서 이마트 까지는 내리막길이라 속도를 약간 빨리 하여 달렸다. 중동 지하철역을 지나면서부터 다시 오르막길(네번째 난코스)이다. 그리고 하프코스 중간지점(?) 간판이 있고 칩의 체크를 위해 밟아야 할 것도 있었다. 대동아파트 상가 근처까지 계속되는 오르막길이다. 길가에서, 또 서 있는 차량 안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응원하는 그들과 손바닥을 맞추며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서로의 기를 전달하려는 듯이, 달리는 사람과 응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합쳐지는 듯 하다.

 다시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아까 지났던 커브길(교차로)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가게 된다. 많이 뛰었다. 그래도 돌아가는 길이라 한결 마음이 가볍다. 아마 3분의 2는 뛰었을 것 같다. 아까 오는 길에 보았던, 우유팩을 가져오면 재생 화장지를 주는 행사장에서 경쾌한 음악과 함께 활발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치어리더들이 힘을 돋구어 준다. 범진이가 다시 물을 집어준다. 범진이는 달리면서 물을 먹다보니 코로 들어갔는가 보다. 달리던 다리를 멈추면 더욱 힘들기 때문에 달리면서 물을 마시는 요령도 잘 터득해야 할 것 같다.


 아까 지나온 고가교(두번째 난코스)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반대쪽에서 넘어가는 길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난코스이다. 걷는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이번에도 우리는 천천히나마 계속 뛰었다. 우리가 추월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앞에서 달리던 ‘효원.....’도 인라인 자원봉사자로부터 에어파스 도움을 받는다.

 고가교를 건너서 아쿠아리움을 지나서 이제는 바닷가로 접어들었다. 돌로 된 길이라 발의감촉은 좋지 않지만 바닷가 모래사장을 옆에 두고 달리는 맛이 색다르다. 앞에 사진 찍는사람이 있어서 범진이와 나란히 달리며 두 사람을 함께 찍으라고 소리쳤다. 사진사가 찍었다는 듯 손짓을 한다.

 다시 동백섬에 접어들었다. 마지막 여섯 번째 난코스이다. 올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돈다. 오르막길이라 우리 앞에 달려가던 ‘효원 마라톤클럽 최**’도 여기서는 많이 힘든가 보다. 우리가 그녀를 추월하였다. 동백섬을 내려와 평평한 길을 달린다. 동백섬 입구 네거리에서 버스 운전사와 교통 및 코스 통제 보조를 하던 자원봉사자가 욕설을 주고 받는다. 축제의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들이다. 이미 예고된 행사이고, 예고된 교통 통제인 줄 안다면 아량으로 받아들일 만도 한데 곳곳에서 교통통제 문제로 실랑이하는 경우가 많이 보였다. 앞으로 지속되는 축제로 자리매김되려면 이러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해야 할 것 같다.


 한화콘도를 지나 요트경기장 앞을 지났다. 다대포 마라톤 때에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걸었던 지점(거리로 17km 쯤 되는 곳)에 해당하는 듯 싶다. 그래도 오늘은 달릴 수 있다. 어느덧 수영2호교 앞을 지나는데 언제 쫓아왔는지 ‘효원.....’ 그녀가 우리 앞을 달리고 있다. 그녀에게 처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쫓아갔다. 드디어 마지막 코너를 돌아 직선코스, 나는 그녀를 추월하기 위해 속도를 내어 달렸다. 범진이도 약간 숨이 차는 듯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 드디어 그녀를 추월하여 우리가 먼저 결승선에 달려 들어왔다. 물론 범진이와 나는 동시에 들어왔다. 그렇게 범진이와 나는 두 번째 하프코스를 완주했고, 나는 걷는 일 없이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기분좋게 달성하였다.


 결승선에 들어온 후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칩을 반납하고, 주최측에서 준 김밥과 바나나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옆의 사람에게 시간을 물으니 11시 5분이란다. 그렇다면 2시간 쯤 걸린 것 같다.(나중에 기록을 확인하니 1시간 59분 19초이고, 순위는 732위였다.) 다대포보다 코스가 어려운데 완주하고 시간도 단축되었다니 기분이 좋아 힘든 것도 잊어버리겠다. 나머지는 싸들고 집사람이 기다리는 곳(주차장)으로 갔다.

 집에 와서 목욕하고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저녁 때 눈을 뜨고 나니 머리가 많이 아프다. 평소에도 낮잠을 자면 머리가 아프곤 했다. 저녁을 먹고나서는 정상의 상태로 돌아왔으나 다리는 약간 무겁다. 무릎에서 열이 나는 듯한 느낌도 들고......

 그래도 야간에 TV뉴스 보고, 무인시대까지 보고 푹 쉬었다.


 D+1일(2003. 3. 24. 월요일)

 다리가 무겁기는해도 작년처럼 어기적거릴 정도는 아니다. 작년에는 발바닥에 물집도 생기고, 다리도 사용이 불편할 정도로 완전한 패잔병의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다리를 풀어야 하는데, 무릎에 열은 없어 다행이지만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아 오늘은 달리 운동하지 않고 푹 쉬었다. 내일 아침에 조기축구에 나가 봐야겠다고 생각하였다.


 D+2일(2003. 3. 25. 화요일)

 새벽 꿈 속에 8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났다. 꿈의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오랜만에 뵙게 되니 괜시리 눈물이 났다. 잠을 약간 설쳤지만 기분은 좋다.

 아침 일찍 축구장에 나가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조기회 팀에 섞여 미니축구(처음에는 5명씩, 나중에는 6명씩)를 했다. 나도 3골을 넣었으며 우리편이 8:0으로 이겼다.

 축구로 다리를 푼 셈이다.



                       마라톤 후기


 이번의 하프코스 도전은 결과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하체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 걷는 기구를 사다가 짬짬이 연습을 했고, 쿠션이 좋고 가벼운 조깅화를 구입하여 무릎의 부담을 덜었으며, 매주 축구를 통해 체력과 심폐기능을 유지토록 하였다.

 그리고 충분치는 않지만 두 번, 집에서 동백섬까지의 왕복 및 동백섬 일주로 5-6km 정도의 달리기 연습을 했다.

 그리고 마라톤 당일에는 최대한 보온에 힘써 근육을 보호하고, 몸에 지닌 것이 일체 없이 최대한 가볍게 하여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였다.

 또 본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운좋게도 우리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준 ‘효원 마라톤클럽 최임숙’(실명을 밝혀도 되나?)이라는 여자분이 있었기에 지치지 않고 완주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모르는 분이지만 항상 건강하게 늘 마라톤과 함께 하시길 빌어 마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큰 역할을 한 1등공신, 사랑하는 나의 작은 아들 범진이에게 고맙고 다정한 마음을 전하며, 고3으로서 고생하는 범진이가 건강하게 이 해를 잘 보내고 대학도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본다.


 범진아!

 오늘처럼 마라톤 완주하는 의지로 노력한다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3년 3월 25일



                                          

 

 

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