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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다대포마라톤(풀코스) 참여기

道雨 2007. 6. 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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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다대포마라톤(풀코스) 참여기

                                                        오   봉   렬


  2004년 11월 21일 일요일.

  마침내 첫 마라톤 풀코스(42.195km) 도전의 날이 밝았다.

  지금까지 하프코스는 세 번을 뛰었다. 다대포 코스, 해운대 신시가지 코스, 광안대교 코스 등인데 첫 번째인 다대포에서의 실패(2002. 11. 24)를 제외하곤 작년에 뛴 두 번(3월, 10월)은 비교적 흡족한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올해는 풀코스에 도전하겠다고 진작부터 생각해 오던 터이었다.

  부산지역에서는 다대포 대회만 풀코스가 포함되어 있고, 다른 대회는 하프코스까지만 있다. 다대포 대회도 봄에는 하프까지만 있어서, 이번 대회가 풀코스를 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올해 들어서는 마라톤 대회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다른 일들이 겹쳐지고 또 체육대회도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무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 범진(둘째 아들)이 두 명의 이름으로 참여 신청을 했는데, 범진이는 서울에 가 있어서 연습을 거의 못 했고, 나는 10월 하순 들어서면서부터 달리기 연습을 시작했고, 11월에는 각종 모임도 자제하면서 몸 만들기에 나섰다.

  평소에는 1주일에 2-3회 정도 조기축구에 참석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라톤 선배들의 조언은 대회 전에 30km 정도의 거리는 뛰어봐야 한다는 것이 공통적이었고, 나도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D-4주일(10월 24일, 일요일)

  집에서부터 동백섬까지 뛰어가 동백섬을 다섯 바퀴쯤 돌고 다시 집까지 뛰어 돌아왔다. 동백섬을 한 열 바퀴 정도 돌고 오려고 마음먹었었으나 돌다보니 몇 바퀴인지 헷갈리고, 또 지치기도 하여 그만 돌고 해수욕장 따라서 난 길로 달렸다. 그러나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달리기가 어려워, 혹 걷기도 하면서 백사장에 설치된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 작품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전화기 모양, 객차 모양 등 여러 가지 설치미술 작품들이 있었고,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오늘은 약 10km 정도 달려본 듯 하다. 아침에 축구를 하는 덕분에 이 정도의 거리는 이제 수월하게(?) 뛸 수 있는 정도가 됐다.


D-3주일(10월 31일, 일요일)

  오늘은 좀 더 많이 뛰어보려고 마음먹었다. 동백섬을 계속 도는 것도 지루하므로 코스를 달리 잡아보았다.

  집에서 출발하여 큰 도로를 따라 기계공고 앞을 지나서 롯데아파트 앞을 지나 , 횡단보도를 건너 동부올림픽 옆으로 해서 요트경기장으로 갔다. 요트경기장 안을 한 바퀴 돌고 옆으로 나와 호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간간이 보이는 포장마차(차량)에서는 토스트나 오뎅, 커피 등의 냄새가 코를 자극하였다. 한화리조트를 지나 태풍 때 넘어진 배(지금은 바로 세워지기는 했지만 바닥에 잠겨있는 듯 보였다) 옆을 지나 어민 식당 앞을 거쳐 동백섬을 한 바퀴 돌았다. 동백섬(입구와 안)에서도 강냉이, 군밤, 번데기 등의 냄새가 허기를 동하게 하였다. 동백섬을 돌아 나와서 다시 호안도로를 따라 돌아가야 하는데 허기지고 지쳐서 달리기가 싫었다. 그래서 어민식당에 가서 집으로 전화를 해서 집사람더러 차를 타고 어민식당으로 오라고 하였다. 어민식당에서 장어구이를 주문해서 둘이 먹었는데, 너무 과식을 해서 나중에 배탈이 나서 오히려 컨디션이 나빠졌다.


D-7일(11월 14일)

  며칠 전에 서울에 있는 범진이에게 메일을 보냈다. 달리기 연습과 식이요법 등에 관한 것이다. 다음날 회신이 왔는데 달리기 연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마라톤대회 당일 새벽 1시쯤 부산역 도착할 예정이라 한다. 연습이 안된데다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어떻게 뛸런지 약간 염려된다.

  지난 주 일요일에는 달리기 연습을 못했다. 이제 연습할 기회는 오늘뿐이어서 한 30km정도 달려보려니 생각했다. 통상 대회 1주일 전에 30-35km 정도의 거리를 달려서 자기의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가게 한 뒤에 다시 에너지원을 보충하는 것이 좋다 하였다. 마치 밧테리를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충전하는 듯이.

  오늘의 코스는 지난 번과 같이 하였다. 그렇지만 지난 번 보다 더 많이 달렷다. 동부올림픽에서 요트경기장으로 호안도로로 동백섬으로, 다시 돌아 나와서 호안도로로 요트경기장으로, 다시 호안도로로 동백섬으로 돌고 집까지 뛰어갔다. 내 딴에는 약 30km 쯤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집에 돌아와 시간을 보니 하프코스 정도 뛴 것 밖에 안되었다.

  이젠 할 수 없다. 이제부터는 식이요법의 도움을 받고 컨디션 조절을 하는 수밖에. 그리고 지난주부터 체력 보강차원으로 보약을 복용해온 것에 위안을 삼고.


D-5일(11월 16일)

  아침에 축구하러 나갔다. 이틀 전 달리기 연습한 것이 다리가 근육이 뭉친 것 같다. 약간 불편한 느낌이지만 견디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다리가 풀리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조금 많이 뛰어다녔다. 식사는 평상시대로 했다.


D-3일(11월 18일)

  역시 아침에 축구하러 나갔다. 다치지 않도록 또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무리하지 않도록 하였다. 식사는 탄수화물의 양을 늘리려 하였다. 밥의 양도 늘리고, 국과 찌개 등에 감자가 많이 포함되었다.


D-2일(11월 19일)

  아침에 축구하러 나갔다. 간단히 몸을 푸는 정도로 하였다. 내일은 축구도 쉬고 잠을 푹 자도록 해야겠다.


D-1일(11월 20일)

  요즘 늘 잠이 부족한 탓에 피로한 느낌이 있어 오늘은 아침에 축구를 쉬고 늦게까지 잠을 잤다. 감자국(여러 번 먹으니 지겹다) 등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고, 대체로 휴식하면서 하루를 지냈다.

  저녁에 가게에서 이온음료수와 오예스, 실장갑 등을 사고, 내일 달릴 때 입을 옷에 배번을 붙였다.

  시간 측정용 칩은 다른 때와 달리 배번 뒷면에 붙이게 되어 있었다. 운동화 끈에 매는 것 보다 편리하게 되었다.

  우리는 첫 도전이라 완주에 목표를 두고 시간은 5시간 내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안내서를 보니 가장 늦은 페이스메이커가 4시간 40분으로 나와 있어 내일 이를 따라가리라 마음먹었다.

  조금이라도 잠을 많이 자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 누웠다. 자명종은 6시에 맞춰져 있다. 범진이는 새벽 1시넘어  집에 도착한 듯 싶은데 바로 잠을 자지 않고 컴퓨터 만진다고 미적대고 있다. 저렇게 쉬지도 않고 제대로 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잔소리될까 싶어 그냥 두었다.


D일(11월 21일)

  드디어 대망의 풀코스 도전의 날이 밝았다. 자명종보다 일찍 일어나진다. 내가 밥먹고 씻는 등 준비를 마칠 때까지 범진이는 최대한 늦게까지 자도록 하였다. 7시까지는 식사를 완료하고 7시 30분쯤 출발하려고 계획했지만, 김밥 사는 등 늦어지는 바람에 , 8시가 거의 다 되어서 출발하였다. 집사람은 돌아올 때 운전하라고 함께 가자 하였는데 공진이까지 응원차 따라나서니 온 식구가 함께 나들이 가는 듯 하였다. 같은 동네의 중학생 한 명(10km참가자)까지 태우고 모두 5명이 다대포로 향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도로는 비교적 한산하여 9시가 안되어 다대포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백사장의 주차장엔 벌써 차가 만차라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겨우 인근 학교의 운동장 끝자리에 주차시키고 용변과 준비운동 등을 마치고 출발지점으로 이동하였다.

  비교적 쌀쌀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였지만 마라톤 열기는 뜨거웠다. 백 개도 넘어 보이는 수많은 동호회 텐트가 쳐 있고 이미 많은 마라톤 참가자들이 출발지점에 모여서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온 학생은 연고 일행이 있는 텐트를 찾아갔다.

  1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 그리고 그 숫자에 못지 않는 응원객(가족, 대회 관계자, 자원봉사자 등)들로 다대포는 이른 아침부터 활기에 넘쳐났다. 상공에는 헬리콥터가 떠서 출발을 재촉하고 있었다. 집사람과 공진이의 응원 속에 우리는 출발선으로 내려가 4시간 40분짜리 페이스메이커(2명) 옆에 자리잡았다. 작은 풍선 3개를 머리 위에 달고 형광색 상의 등에 4시간 40분이라고 써 있었다. 이들만 따라 달리면 4시간 40분대에 들어올 수 있겠다 싶었다.

  드디어 출발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참가자와 가족들의 함성과 함께 힘차게 출발하였다. 범진이와 나는 페이스메이커 옆과 뒤에 바짝 붙어서 달렸다. 다대포 해안을 따라 바다 경치를 보며 달리면서 2년 전 조명성, 범진이와 함께 하프코스 달릴 때 생각을 했다. 그 때도 상당히 추웠고, 주차시킬 곳 찾느라 늦어져 제대로 준비운동도 하지 못한 채 뛰어야만 했었다. 그 때에 비하면 바람은 많이 불지만 덜 춥고 준비운동도 제대로 해서 컨디션은 좋은 듯 했다.

  페이스메이커는 여유있게 주위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달리고, 나는 그들 옆에 달리며 귀를 기울인다. 4시간 40분대의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풀코스 첫 도전인 경우가 많은 듯 하였다. 하프코스가 1시간 50분대 되는 사람은 풀코스 4시간 20분대를 따라가도 될 듯 하다는 말도 들렸다. 그리고 지금처럼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달리더라도 중반 이후에는 페이스메이커를 추월하여 달려야 기록 단축이 된다고 하였다.

  첫 번째 음료수대에서 우리는 페이스메이커보다 앞서 나가게 되었다. 페이스가 너무 늦은 감도 있고 페이스메이커도 음료수 마시느라고 뒤처져 있어 우리는 일행보다 앞서 달리게 되었다. 목표가 5시간이라고 얘기했지만 내심으로는 4시간 30분 정도면 들어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기에 집사람에게는 4시간 20분 경부터 골인지점에 나와 기다리라고 했던 터였다.

  날씨가 쌀쌀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땀도 나지 않았다. 전에 하프코스 뛸 때는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팔꿈치가 시리면서 가렵고 어깨도 아프고, 옆구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숨도 차고 했었는데 오늘은 그런 증상이 없었다. 비교적 컨디션이 좋은 듯 하였다. 출발하기 전에 소변을 봤는데도 너무 긴장한 탓인지 또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면서 땀을 흘리다 보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하며 계속 달렸다.

  우리의 페이스가 너무 늦다보니 곧 하프코스 선수들이 우리를 추월하였고, 또 조금 있다 10km 선수들이 우리를 추월하면서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를 추월하는 사람들보고 “왜 그렇게 빨라. 5km가?” 하고 농담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번 대회는 5km가 없고, 10km, 하프코스, 풀코스의 3종목만 있다.

  낙동강 하구언으로 올라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전에는 여기에서부터 숨이 차면서 조명성에게 처져서 혼자 달렸던 곳이다. 오늘은 여기도 쉽게 통과했다. 낙동강하구언을 달리는 중인데 앞에서는 하프코스 선수들 중 선두가 벌써 반환점을 돌아서 달려오고 있다. 혹시나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싶어 얼굴을 쳐다보며 달렸다.

  하구언을 다 건너 명지쪽으로 달려갈 때 드디어 아는 이름(등에 소속과 이름이 씌여 있어서)이 오른 편 뒤쪽에서 내 옆을 추월해 지나갔다. 작년 해운대 환경마라톤(하프코스)에서 내가 페이스메이커 겸 목표로 삼아 달렸던 여자(그때 쓴 마라톤참여기에 언급했었던), ‘효원마라톤클럽 최*숙’, 바로 그녀였다. 비록 얼굴도 모르지만(뒷모습만 줄곧 봤기 때문) 반가웠다. 또 한번 페이스메이커 삼아볼까 생각했지만 우리보다 약간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그러더니 하프코스 반환점을 돌아버린다. 아하! 하프코스였구나. 그래서 우리보다 늦게 출발해서 이제야 뒤에 쫓아왔구만. 풀코스를 뛰어도 충분할 듯한데... 아쉽지만 우리는 하프코스 반환점을 지나서 계속 달렸다. 하프코스 반환점을 지나니 달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10분의 1로 확 줄은 듯 하다. 우리 앞에 달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대부분 페이스 메이커를 쫓아 달리다 보니 중간에는 적은 탓이다. 명지 벌판에 직선으로 놓인 길로 들어섰다. 약간 지루한 코스라 할 수 있다. 앞에는 같은 소속(태종대 마라톤클럽?)의 4명이 사이좋게 함께 얘기하며 여유있게 달리고 있다. 그들을 추월하여 달리는데 앞에 두 사람이 각기 한쪽 손목에 끈을 매고 함께 붙어서 달리고 있다. 아마도 시각장애인과 보조자인 듯 싶었다. 옆에 함께 달리며 물어본다.

  “몸이 불편하신 분인가요?”  보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뛰셨네요. 열심히 뛰세요”  인사하고 그들을 지나쳐 갔다. 또 조금 달리니 등 번호가 40001번인 사람이 달리고 있다.

  “번호가 1번이시네요.”

  “예”

  “번호 좋습니다.”

  범진이가 페이스가 약간 처지는 듯 하여 속도를 약간 늦추는 동안에 40001번은 앞서 달려가고, 조금 전의 태종대 마라톤 클럽 사람들도 우리를 지나쳐 가면서 격려의 말을 건네준다.

조금 더 달리다 보니 앞서 가던 40001번이 다리를 절고 있다. 아마 쥐가 나는 듯 손으로 허벅지 부분을 두드리며 영 불편한 모습이다. 아직 절반도 안됐는데 벌써 쥐가 나다니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얼핏 3사관학교에서 무장구보할 때 쥐가 나서 대검으로 장딴지를 찔러 피를 흘리면서도 완주했던 한상규 동기생 생각이 났다. 그때 정신력이 훌륭하다고 표창을 받은 것으로 기억된다. 무통사혈침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40001번에게 몸 추스르라는 격려의 말을 건네면서 지나쳐갔다. 풀코스 선두는 반환점을 돌아 벌써 우리 앞에서 달려오고 있다. 이들은 아마도 2시간 30분대의 사람들이리라. 혹시나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싶어 달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으나 아는 얼굴은 없었다.

  명지를 지나니 삼성자동차공장이 나타났다. 삼성자동차가 부산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신호공단지역에 들어섰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교통이 한산하다. 교통정리 해주느라 많은 경찰관들이 쌀쌀한 날씨에 수고를 해 주고 있었다.

  반환점은 아직도 멀었나? 가도 가도 보이질 않는다. 이러다가 경남지역(진해?)까지 갔다오는 것은 아닌지? 도로의 교통표지판에 진해가 자주 나타난다. 가덕도 들어가는 입구 표지판도 나타났다. 다리 건널 때마다 경남 땅이 아닌가 표지판을 살피게 된다. 드디어 반환점을 돌아서 달려오는 사람들이 제법 무더기로 보인다. 이제야 반환점에 다 와 가는가 보다. 생각해보니 일요일에 내가 달리기 연습한 거리는 하프코스 만큼도 안된 듯한 생각이 든다. 한동안 더 달렸는데도 반환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와, 생각보다 머네.’ 약간 초조해지기도 하고 달리는 것이 지루해지기도 한다.

  드디어 반환점에 도달했다. 다행히(?) 경남 땅은 아닌 것 같다. 반환점을 돌고 나니 새롭게 힘이 솟는 듯 하다. 우리 뒤를 쫓아 반환점에 이르고자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은 지치는 것도 없이 잘 달려지는 듯 하다.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도 지나갔다. 우리보다 약 1km정도는 뒤에 있는 듯하다. 40001번도 만났다. 한동안 안보이기에 포기했는가 생각했던 2인조(시각장애인과 보조자)도 상당히 뒤쳐진 곳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대단한 분들이다.

  음료수와 간식을 주는 곳마다 들러서 마시고 먹고 했더니 오줌보가 점점 차오는 듯 하다. 바람불고 싸늘한 날씨 탓에 땀도 나지 않으니 소변이 많이 생기는가 보다. 주유소 옆을 지나치면서는 화장실에 갈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달리는 페이스를 잃을까 염려되어 계속 달렸다. 약간 힘이 든다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풀코스라서 그런지 주변에 여자선수는 거의 없는데 앞에 두 남녀가 나란히 뛰고 있다. 남자는 약간 지친 듯 자세가 흐트러진 모습인데, 여자는 하나도 지치지 않은 듯 자세도 바르게 잘 뛰고 있으며, 더욱이 달리는 모습이 뒤에서 보니 상당히 리드미컬하게 춤을 추고 있는 듯이 느껴질 정도로 예쁜 모습으로 보였다. 상당히 먼 거리를 뛰어왔는데 전혀 지치지 않은 모습이라니 저 여자는 아마 상당한 베테랑인 듯 하다. 그들을 앞에 두고 한동안 달려왔는데, 음료수 마시는 곳에 이르러 그들이 걷는 바람에 우리는 그들을 추월해 달리게 되었다.

  약 30km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무릎에 약간 무리가 오는 듯 하다. 범진이도 조금씩 페이스가 처진다. 지금까지는 오줌마려운 것을 제외하면 불편하거나 아픈 곳 없이 잘 달려왔는데 이제부터가 고비인가 보다. 역시 30km이상 뛰어봐야 한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직 완주할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범진이가 다리에 근육이 자꾸 경련이 생긴다고 해서 우리는 달리는 것을 중지하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역시 범진이가 서울에서 지내면서 연습이 덜 된 탓일 것이다. 어제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것도 그렇고.

  잠시동안 걸으면서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가 오면 뒤따라가자 하였다. 한동안 사람들이 우리를 추월하여 지나갔다. 2년 전 하프코스 뛸 때 경험했듯이 달리다 걸으면 다시 달리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좀 힘들고 페이스가 늦더라도 계속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잠시 후 페이스메이커와 일련의 무리들(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뛰는 사람들)이 다가왔기에 우리도 그들을 따라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100여 미터도 달리지 못하고 범진이가 못 따라 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또 함께 걸었다. 명지 벌판을 지나고, 명지대교를 지나서 을숙도를 바라보며 걸었다. 부자가 함께 걷고 있으니 자원봉사자 아주머니가 걱정스러운 듯이 괜찮으냐고 묻는다. 우리 뒤 얼마쯤에 낙오자를 위한 앰블런스가 따라오고 있었다. 범진이 보고 저거 타고 오라고 했더니 걷더라도 완주하겠단다.

  을숙도 문화회관이 길 건너편에 보였다. 기왕에 걷는 터, 화장실에나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식을 많이 먹고 찬 음료수와 물 등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뱃속도 불편하였다. 범진이에게는 먼저 가라고 이르고 찻길을 건너 문화회관 화장실에서 방광과 대장의 것을 대 배설하고 나니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듯 하였다. 참, 마라톤 하면서 이렇게 중간에 화장실 가는 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사실 오늘같은 날씨에서는 내 체질상 하프코스 정도는 중간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도 뛸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되고, 풀코스도 물만 한 두 번 정도 마시면 될 듯한데, 오늘 먹고 마시는 것(양갱,초코파이,바나나,게토레이,물 등)에 너무 욕심을 낸 탓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노.

  용변보고 도로를 건너고 하느라 한 10여분은 손해본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몸은 가벼워 다시 뛰기 시작했는데 바로 코 앞에 범진이가 있다. 먼저 가라고 했는데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 딴에는 먼저 가기가 미안했었나 보다. 다시 뛰어가는데 또 몇 십 미터 못 가서 걷고 만다. 더 뛰면 평생 다리를 못 쓸 것 같은 느낌이라면서 걸어버린다. 만 원짜리라도 한 장 주머니에 넣고 오지 못한 걸 후회했다. 택시라도 태워 보낼 것인데...  2인조(시각장애인과 보조자)가 우리 옆을 지나쳐 힘겹게 달려가며 격려의 말을 전한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다.

  하구언을 지나 해안도로에 들어섰다. 경찰관이 도보길로 가라 한다. 시간이 너무 늦다 보니 교통통제가 더 이상 안되는가 보다. 한참을 걸어 35km 지점에 도달했다. 범진이는 나보고 자꾸 먼저 가라고 한다. 자기는 걸어서 가겠다고. 이대로 계속 걸어서 가다가는 목표한 5시간은 커녕 6시간도 더 걸릴 것 같았다. 집사람과 공진이는 이미 결승선에 나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범진이가 힘들기는 하겠지만 여기서부터는 혼자서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범진이에게 내가 먼저 갈테니 걷다가 힘들면 앰블런스나 경찰차를 타고 오라고 하곤 자식을 사지에 남겨 두고 혼자 떠나는 비정한 아버지가 된 마음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35km지점을 지난 곳이므로 이제 불과 7km 정도 남은 거리니, 웬만하면 뛸 것이라 생각했는데, 진짜 고통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동안 걷다보니 다리가 앞으로 나가지지가 않고, 무릎은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는 듯 하고, 물집이 생기는지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했으며 숨도 차는 듯 하였다. 점점 극한의 고통에 다가오는 듯 하였다. 보도로 뛰다 보니 일부는 트랙공사를 해놓아 무릎과 발이 편한 곳도 있었지만, 일부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을 지날 때는  고통이 더 심하였다. 걷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속도지만 그래도 계속 달렸다. 진짜 마라톤에서 극한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고 싶기도 하였다. 그래야만 마라톤 완주해봤다는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10여 미터 앞에서 힘겹게 달려가는 사람들을 좇아서 계속 걷다시피 하면서 달렸다. 앞에는 뛰다 걷다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내 뒤에도 몇 사람이 따라 오고 있었지만 몇 명 되지 않고 거리도 많이 떨어져 있다. 내 앞에 시야에 보이는 사람도 몇 안될 정도로 늘어진 상태이다.

  ‘걷고 싶다.’

  ‘안 돼, 계속 달려야 돼.’

  ‘너무 무릎이 아프고 힘도 없어.’

  ‘그래도 달려야 돼. 걸으면 다시 달리기가 더욱 힘들어.’

  ‘발바닥도 많이 아파, 물집이 생긴 것 같아.’

  ‘그래도 참아. 이제 거의 다 왔잖아. 결승선이 저 앞이야’

  수십 번의 갈등 속에 그래도 끝까지 달리자는 생각이 조금 우세했다. 마음 속으로 노래하면서 춤추는 것을 생각해본다. 고통을 조금이라도 잊을까 해서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가득 슬픔뿐이네~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오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르을 타고 오 오오오.....’

  달리는 내 발의 박자에 맞춰 속으로 노래하며 달리니 고통도 잊고 약간 기운이 나는 듯도 하다.

  힘들게 힘들게 걷다시피(그래도 걷지는 않았다) 달리다 보니 저 앞에 결승선이 보인다. 다행히 진행진이 아직 철수하지는 않았는가 보다. 보도에 있는 사람들이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준다. 마지막 힘이 솟아오름을 느끼며 피곤하지 않은 듯 그럴듯하게 폼을 잡으며 달린다.

  결승선 약 100여 미터 앞에 이르러 보도에서 다시 차도로 들어섰다. 인도에 가까운 1개 차로를 늦게 들어오는 선수들을 위해 교통 통제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 결승선까지는 이제 아무도 없고 나 혼자 뿐이다. 결승선 몇 미터 앞에서 집사람과 공진이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약 5시간 동안 달려온(한참동안 걷기는 했지만) 마라톤 풀코스, 첫 도전의 마지막 종점이다. 오늘 아침 출발선에서부터 지금까지 달려온 중 가장 멋진 자세로, 또한 가장 힘이 가득찬, 전혀 지치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그렇게 결승선을 힘차게 밟았다. 결승선 근처의 많은 사람들이 완주를 축하하는 격려의 말과 박수를 보내주었다. 온갖 고통과 갈등을 이겨내고 결승선 통과할 때의 그 기분을 어떻게 글로 표현하랴!

  칩을 반납하고 완주기념메달 등을 받고 쉬면서 범진이가 오기를 기다렸다. 혹 차(앰블런스나 경찰차)를 타고 올는지도 몰랐으나, 범진이 성격상 걸어서라도 완주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마중 나가 봤더니 앞에서 공진이와 함께 걸어오고 있다. 결승선 가까이까지 그대로 걸어와 마지막 지점에서 달리는 폼만 잡고(사진 찍기) 결승선을 통과했다.

  범진이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잠시 뒤에 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등번호 40001번 선수였다. 반환점에 이르기도 전에 쥐가 나던 사람인데 결승선까지 완주를 해낸 것이다. 바로 이 1번 선수가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이 되었다.

  집사람이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이 울렸다. 나의 첫 마라톤 풀코스 기록 5시간 2분 58초를 알려주는 문자 메시지였다. 참 기술이 발전하였음을 새삼 느낀다. 골인한지 1시간도 채 안 됐는데 기록이 개인통보되다니...

  동네에 도착해 범진이와 나는 바로 목욕탕으로 가고 공진이에게 목욕도구와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도록 하였다. 4층까지 올라갔다 올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차에서 내리는데도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뻣뻣하여 영 불편했다. 목욕탕에서는 몸이 벌벌 떨리는 듯 하였다. 온탕 속에 들어가서도 물이 따뜻하지 않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래도 목욕을 하고 나오니 다리가 약간 편해진 듯도 하다.

  목욕을 마치고 가족이 모처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목욕탕 옆에 있는 식당에 가니 김진세 동기생이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옆 자리에 앉는데, 창주(친하게 지내는 이웃)네 식구가 들어온다. 창주도 얼마전에 수능보느라고생하였다. 창주네와 자연스럽게 합석하여 맥주와 소주를 주고 받았다. 김진세 동기생 가족들이 먼저 가고 난 후 좀 있으니 정종덕 동기생이 아들과 함께 들어온다. 창주네 아버지와도 테니스 관계로 서로 아는 사이이기도 하다.

  창주네와 우리의 두 가족 6명(공진이는 다른 일로 빠지고)은 식사를 마치고 노래방에 갔다. 오랜만에 술도 마시고 아이들(범진, 창주)의 새로운 노래 솜씨에 감탄하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와 또 창주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의미있는 하루가 되었다.


D+1일

  하루가 지났다. 다리의 상태가 좋지 못하여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다. 점심 먹으러 갈 때  계단을 내려오는데 나와 범진이 모두 바로 딛지를 못하고 왕팔자 걸음으로 딛어야 하는 것이 꼭 포경수술 받고 난 뒤 걷는 걸음걸이 그대로였다.

  이번 주는 아침의 축구도 못할 것 같다. 무릎이 영 무리가 되는 듯 하여 쉬어야만 할 듯 싶다.

  김삼득 동기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라톤 완주 축하한다고. 신문에 이름이 실렸다고 한다. 그래서 국제신문을 들춰 보니 완주자 명단이 실렸다. 나는 5시간 02분 58초, 범진이는 5시간 30분이 조금 넘었다.

  풀코스 완주자가 대략 1천여 명되는데 범진이는 꼴찌에서 세 번째였고, 나는 끝에서 대략 30번째쯤 되었다.


마라톤 후기

  위와 같이 천신만고 끝에 풀코스를 통과하기는 했으나 중간에 많이 걷기도 하고, 애초 목표했던 5시간도 넘었고 하여 이번의 도전은 절반의 성공에 머물렀다고 자평한다. 비록 ‘마라톤 풀코스 완주’라는, 내 나름대로 설정한 인생의 목표 몇 가지(현재까지는 3가지를 정해 놓았다) 중의 하나는 달성했다고는 하겠지만, 마라톤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끝까지 뛰지 못하고 중간에 많이 걸었던 것은 완주라고 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년에 다시 풀코스에 도전하여 완주(중간에 걷거나 쉬지 않고 끝까지 달림)해보고 싶다. 그때는 더 연습도 충실히 하고, 간식에 대한 욕심도 버리고, 기록도 이번보다는 많이 단축시켜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마라톤대회는 축제의 장이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 아니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주변의 사람 모두가 완주하기를 바라고 격려해주는 응원자이자 동료인 것이다. 아마 가장 많은 숫자의 인원과 동호회가 참가하는 경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 다대포 마라톤에서 완주하도록 성원해준 집사람과 공진이, 친구들, 그리고 조기축구회 사람들 등 모두에게 감사하고, 특히 서울에서 생활하며 제대로 연습도 못한 채 참여하여 다리에 쥐가 나도록 달리고, 평생 다리를 못 쓸 것 같은 고통을 이겨내고 완주한(비록 걸어서 들어왔지만) 나의 작은 아들 범진이가 자랑스럽고 고맙기 그지 없다.

  “범진아!  비록 이번에는 아픈 너를 놔두고 혼자 가버린 비정한 아버지가 되었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그때는 꼭 함께 결승선을 넘을 수 있도록 하자꾸나.”

 

 

 

* 윗 사진은 윗 글을 쓰고 난 다음해인 2005년도에 부산마라톤풀코스를 완주하고 받은 기념메달입니다.